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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그라미 원 Oct 18. 2024

손자가 대접한 할아버지 생신 식사


손자가 대접한 할아버지 생신 식사          



어제 아버지의 생신은 미수였다.

「미(米)」자를 분해(分解)하면 팔십팔(八十八)이 되기 때문에 미수(米壽)는 「여든여덟 살(88세)」의 다른 이름이다.

88세의 '쌀 미'는 글자를 쪼개 의미를 부여했지만, 밥을 잘 드시고 건강해지라는 뜻도 담겼다고 한다.

미수연은 여든여덟 살 되는 해에 베푸는 잔치인데, 옛날에는 평균 수명이 짧아 70세의 고희연, 77세의 희수연, 88세의 미수연 등의 장수 축하 잔치를 크게 벌였다.

동생들은 미국에 살고 있어서 함께 못하고, 이번 미수연은 가족끼리 조용히 식사했다.          



백세시대라고 해도 아버지에게 88세까지 사신 것은 큰 의미가 있다.

나에게 할아버지도 이북에서 6·25 때 아버지와 피난을 나오셔서 몇 년 후에 고혈압으로 인한 뇌졸중으로 돌아가셨다고 한다.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흥남부두에서 영화 <국제시장>에 첫장면에 나오는  '메르디스 빅토리'호를 타고 피난을 오셨다.

아버지는 지금 내 나이 때에 풍으로 쓰려지셔서 처음에는 거의 몸의 절반이 움직이지 않았으나 스스로 포기하지 않은 재활 의지력과 하나님의 도움으로 지금은 완전히 정상이 되셨다.

60대에 들어서는 식도암으로 큰 수술을 하셨지만, 그 이후 어머니의 정성스러운 내조로 지금도 건강하게 지내고 계신다.

75세에 미국으로 이민 가셨다가 10년 만에 한국에 돌아오신 지 2주 만에 후진하는 차에 치이는 교통사고를 당하셔서 3개월 이상을 병원에 계시다가 회복 중에 계시고, 그 이후로 다리가 불편하셔서 지팡이를 짚고 걸으신다.

이러한 과정들을 잘 이겨내시고 88세 생신을 건강하게 맞으신 것이 너무 감사하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손자인 아들에게도 특별하다.

우리가 라오스에 나가 살다가 아들이 미국에 가서 고등학교와 대학 졸업까지 학교에 다녔다.

고등학교는 할아버지 친구가 세우시고 운영하셨던 학교에서 기숙사에서 지내며 다녔다.

라오스에서 홈스쿨을 하고 있을 때 할아버지 친구께서 아들의 이야기를 들으시고

“내가 자네 손자는 책임지고 키울 테니 나에게 보내.”라고 하셔서 할아버지 찬스로 미국에서 학교를 다녔다.    

      

대학은 부모님이 손자를 위해 미국으로 이민을 가 계신 동안 할아버지 집 근처 대학에 다니며 할아버지 집에 함께 살면서 다녔다.

코로나 기간에는 학교 구내식당도 전혀 운영을 안 할 때 할머니가 싸주시는 도시락을 먹으며 학업을 마쳤다.

아들이 군대에 갔다가 다시 복학할 때는 할아버지가 손자를 위해 차를 사주기도 하셨다.

초등학교까지는 부모와 함께 살았지만 그 이후에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보살펴 주셨고, 대학 생활도 할아버지 할머니 집에 있으니, 방학마다 기숙사에서 나와 갈 곳이 없을 걱정도 없었다.          



그런 손자가 이제 결혼도 하고 어엿한 직장인이 되어 할아버지 생신에 저녁 식사 대접을 한 것이다.

마침 지난달에, 해외에서 일하던 아들이 갑자기 한국에 본사로 와서 일하게 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식사는 부모님 댁에서 멀지 않은 프랑스식 레스토랑에 가서 양갈비가 포함된 코스 요리를 먹었다.

어제 아버지는 몇 번이나 어머니에게 "저녁에 손자가 식사 대접한다구?"라고 물으셨다고 한다.

자녀 된 내가 대접하는 것보다, 직접 데리고 돌보았던 손자가 생신에 대접하니 내 마음도 뿌듯하다.

손자가 잘 자라서 어엿한 직장인이 되어 생신에 대접을 하는 자체가 부모님께 큰 선물일 것이다.

아버지가 인생에 많은 역경을 이기시고 건강하게 생신을 맞으신 것도 감사하고, 손자인 아들이 할아버지 생신에 대접한 것도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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