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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만 길이 아니다 (6)

위로의 밥상, 새로운 시작

by 동그라미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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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만 길이 아니다 (6)


제6부: 위로의 밥상, 새로운 시작


우승 다음 날, 영훈의 핸드폰은 쉴 새 없이 울렸다.

최고급 호텔 총 주방장 제안, 대형 외식업체 스카우트, 프랜차이즈 사업 투자 제안, 방송 출연 섭외.

하지만 영훈은 모두 정중히 거절했다.

"죄송합니다. 제게는 다른 계획이 있습니다."

영훈은 우승 상금 3억과 지금까지 모은 돈을 들고, 할머니 백반집을 찾아갔다.

여전히 문은 닫혀 있었다.

영훈은 부동산을 통해 건물주를 수소문했다. 그리고 마침내 할머니의 연락처를 알아냈다.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세 번 울렸다.

"여보세요?"

낯선 여성의 목소리였다.

"안녕하세요, 저는 김영훈이라고 합니다. 혹시 백반집 하시던 할머니 아시나요?"

"아, 네. 저 할머니 손녀예요."

"할머니는 어떻게 지내세요?"

긴 침묵.

"... 할머니는 지금 요양원에 계세요. 작년에 중풍이 오셔서요."

영훈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주소 좀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할머니 뵙고 싶습니다."

경기도 용인, 실버타운 요양원.

영훈은 꽃다발과 과일 바구니를 들고 요양원에 들어섰다.

복도를 지나 할머니 방 앞에 섰다. 손이 떨렸다.

노크를 했다.

"들어오세요."

손녀의 목소리였다.

문을 열었다. 휠체어에 앉아 계신 할머니가 보였다. 예전보다 많이 야위셨지만, 눈빛은 여전히 따뜻했다.

"할머니..."

영훈의 목소리가 떨렸다.

할머니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영훈을 알아보는 데 몇 초가 걸렸다.

"...영훈이?"

"네, 할머니. 저예요."

영훈은 할머니 앞에 무릎을 꿇었다.

"할머니, 그동안 못 찾아봬서 죄송해요. 저... 요리사 됐어요. 흑백요리사에서 우승도 했어요."

할머니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영훈아... 네가... 진짜 네 길을 찾았구나."

할머니의 주름진 손이 영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할머니가 자랑스럽다..."

영훈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할머니의 무릎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

"할머니, 감사해요. 할머니가 제 길을 열어주셨어요. 할머니가 아니었으면 저 여기 없었을 거예요..."

할머니도 눈물을 흘렸다.

한참을 그렇게 있었다.

영훈은 손녀에게 물었다.

"백반집 자리, 지금 어떻게 됐어요?"

"아직 비어 있어요. 세입자를 구하고 있는데..."

"제가 사고 싶습니다."

손녀가 놀라 영훈을 바라봤다.

"네?"

"할머니 백반집 자리에, 제가 새로운 식당을 열고 싶어요. 할머니의 정신을 이어받아서요."

손녀가 할머니를 바라봤다. 할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영훈이한테 줘라. 그 아이가 이어갈 자격이 있어.“


3개월 후.

영훈은 우승 상금과 모든 재산을 털어 백반집을 매입하고, 정성껏 리모델링했다.

낡은 간판은 그대로 두었다. 대신 그 옆에 새 간판을 달았다.

'김치찌개와 콩소메 - 할머니의 마음을 잇는 집'

인테리어는 현대적이지만 따뜻했다. 나무 테이블, 부드러운 조명, 한쪽 벽에는 할머니의 옛날 사진과 함께 이런 문구가 걸려 있었다.

"거기만 길이 아니다. 다시 힘내."

오픈 당일.

줄이 식당 밖까지 이어졌다. 흑백요리사 우승자의 식당이라는 소문이 퍼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영훈은 화려한 요리 대신, 소박한 메뉴를 선보였다.

할머니 김치찌개 (9,000원)

할머니 집밥 정식 (12,000원)

김치 콩소메 수프 (13,000원)

된장 크림 리소토 (15,000원)

가격은 부담 없었다. 영훈은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위로를 전하기 위해 이 식당을 열었기 때문이었다.

첫 손님이 들어왔다. 대학생처럼 보이는 청년이었다. 눈가에 다크서클이 짙었다.

"김치찌개 주세요."

영훈은 정성껏 김치찌개를 끓였다. 할머니가 가르쳐준 방식 그대로, 프랑스에서 배운 기술을 더해서.

김치찌개가 나갔다. 청년이 한 숟가락 떠서 입에 넣었다.

청년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맛있어요... 엄마 밥 같아요..."

영훈은 조용히 미소 지었다. '맞아, 이거야.'

저녁 무렵, 특별한 손님이 왔다.

휠체어를 탄 할머니와 손녀였다.

"할머니!"

영훈이 달려가 할머니를 맞았다.

"영훈아, 네 식당 보러 왔다."

영훈은 할머니를 가장 좋은 자리로 안내했다. 창가 자리, 햇볕이 따뜻하게 들어오는 곳이었다.

"할머니, 이제 제가 만든 밥 드세요."

영훈은 주방으로 들어가 특별한 김치찌개를 만들었다.

할머니가 가르쳐준 그 맛, 파리에서 배운 기술, 그리고 영훈의 진심을 모두 담아서.

김치찌개가 완성되었다. 영훈은 직접 상을 차려 할머니 앞에 놓았다.

할머니가 숟가락을 들었다. 손이 떨렸지만, 천천히 한 숟가락 떠서 입에 넣었다.

눈을 감았다.

긴 침묵.

그리고 눈을 떴다. 눈가가 젖어 있었다.

"영훈아... 이 맛이야. 이게 바로... 진짜 위로의 맛이야."

할머니가 영훈의 손을 꼭 잡았다.

"고맙다, 영훈아. 네가 내 마음을 이렇게 이어줘서."

영훈은 눈물을 참으며 고개를 숙였다.

"아니에요, 할머니. 제가 더 감사해요. 할머니가 제 인생을 바꿔주셨어요."

그날 저녁, 식당은 따뜻한 온기로 가득 찼다. 손님들은 밥을 먹으며 웃고, 이야기하고, 위로받았다.


6개월 후.

'김치찌개와 콩소메'는 서울에서 가장 예약하기 어려운 식당이 되었다.

하지만 영훈은 확장하지 않았다. 프랜차이즈 제안도 모두 거절했다.

"이 식당은 돈을 벌기 위한 게 아닙니다. 위로를 전하기 위한 거예요. 규모를 키우면 그 마음이 희석될 것 같아요."

영훈은 매월 마지막 수요일 오전, 식당 문을 닫고 대신 음식을 정성껏 준비해 근처 무료 급식소에 가서 노숙자, 독거노인, 어려운 청년들에게 무료로 밥을 제공했다.

"요리는 기술이 아니라 마음입니다. 그 마음을 나누는 게 제 역할이에요."

어느 날, 한 청년이 식당을 찾아왔다.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눈빛이 흔들리는 청년이었다.

"저... 김치찌개 주세요."

영훈은 청년을 자세히 봤다. 뭔가 익숙한 느낌이었다. 마치 과거의 자신을 보는 것 같았다.

김치찌개를 끓이며 영훈은 청년에게 물었다.

"요즘 힘든 일 있어요?"

청년이 고개를 들었다. 놀란 표정이었다.

"어떻게...?"

"얼굴에 다 쓰여 있어요. 저도 그런 적 있었거든요."

청년이 잠시 망설이다 말했다.

"저... 공무원 시험 준비하는데요. 세 번째 떨어졌어요. 이제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영훈의 가슴이 철렁했다. 꼭 과거의 자신 같았다.

김치찌개가 완성되었다. 영훈은 정성껏 상을 차려 청년 앞에 놓았다.

"천천히 드세요. 그리고 이거 오늘 공짜예요."

"네? 왜요?"

"그냥요. 제가 받은 위로를 돌려드리는 거예요."

청년이 숟가락을 들어 김치찌개를 떴다. 한 숟가락 입에 넣었다.

뜨거운 국물이 목을 타고 내려갔다.

청년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맛있어요... 이상하게 눈물이 나요..."

영훈은 청년 옆에 앉았다.

"괜찮아요. 울어도 돼요. 저도 그랬거든요."

청년이 영훈을 바라봤다.

"셰프님도요?"

"네. 저도 공무원 시험 세 번 떨어졌어요. 그때 정말 죽고 싶었어요. 근데 이런 김치찌개 한 그릇이 저를 살렸어요."

청년의 눈이 커졌다.

"진짜요?"

"네. 그리고 깨달았어요. 거기만 길이 아니라는 걸요."

영훈은 청년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분명 다른 길이 있을 거예요. 꼭 공무원이 아니어도, 당신이 잘할 수 있는 게 있을 거예요."

청년은 김치찌개를 먹으며 한참을 울었다. 영훈은 그저 옆에 앉아 있어 주었다.

밥을 다 먹고 나서, 청년이 일어나며 말했다.

"셰프님, 감사합니다. 덕분에... 숨 좀 쉴 수 있을 것 같아요."

"천천히 생각해 보세요. 그리고 힘들면 언제든 다시 오세요."

청년이 깊게 고개를 숙이고 식당을 나갔다. 뒷모습이 조금은 가벼워 보였다.

그날 밤, 영훈은 식당을 정리하며 카운터에 할머니와 찍었던 사진을 바라보았다.

'할머니, 저 잘하고 있죠?'

할머니는 사진 속에서 여전히 따뜻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영훈은 깨달았다. 성공이란 화려한 명예나 돈이 아니라, 자신이 받은 따뜻한 위로를 세상에 되돌려주는 것이라는 사실을.

할머니가 영훈에게 그랬듯이, 이제 영훈이 다른 누군가에게 그러고 있었다.


1년 후.

'김치찌개와 콩소메'는 단순한 식당을 넘어, 하나의 상징이 되었다.

힘든 사람들이 위로받으러 오는 곳. 길을 잃은 사람들이 새로운 방향을 찾는 곳.

영훈은 매일 아침 김치찌개를 끓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그리고 매일 저녁, 마지막 손님을 배웅하며 이렇게 생각했다.

'오늘도 누군가에게 위로를 전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어느 날, 영훈에게 한 통의 편지가 왔다. 1년 전 식당을 찾았던 그 청년으로부터였다.

편지를 열었다.

'셰프님, 안녕하세요.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작년에 공무원 시험 떨어져서 찾아갔던 사람입니다.

그날 셰프님이 해주신 말씀 덕분에, 저는 새로운 길을 찾았습니다. 공무원이 아니라, 제가 정말 하고 싶었던 일을요. 지금은 작은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매일이 행복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제가 선택한 길을 걷고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낍니다.

셰프님의 김치찌개처럼, 저도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는 책을 만들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셰프님이 제 인생을 바꿔주셨어요.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 당신의 김치찌개를 기억하는 사람 올림'

영훈은 편지를 읽으며 눈물을 흘렸다.

'이거구나. 이게 바로 내가 하고 싶었던 거야.'

영훈은 편지를 소중히 간직했다. 그리고 카운터에 놓인 할머니 사진에게 말했다.

"할머니, 저 제대로 하고 있죠? 할머니가 저한테 해주신 것처럼, 저도 누군가에게 그러고 있어요."

사진 속 할머니는 여전히 따뜻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몇 년 후.

영훈의 식당은 여전히 한 자리에서, 한결같이 운영되고 있었다.

유명 셰프가 되어 방송에 나오는 대신, 영훈은 매일 주방에서 김치찌개를 끓였다.

돈을 많이 버는 대신, 영훈은 힘든 사람들을 위로하는 마음으로 식당을 운영했다.

프랜차이즈를 만드는 대신, 영훈은 단 하나의 식당을 지켰다.

영훈의 삶은 화려하지 않았다. 미슐랭 3 스타를 받지도, 세계적인 셰프가 되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길을 걸었다. 누군가의 마음을 진심으로 위로하는, 그런 요리사로.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했다.

사람들은 물었다.

"왜 더 크게 하지 않아요? 이렇게 유명한데."

영훈은 항상 같은 대답을 했다.

"크기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 진심이 중요하죠. 저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진심을 담아 밥을 주고 싶어요. 규모를 키우면 그게 어려워질 것 같아요."

영훈의 머리에는 어느새 흰머리가 섞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눈빛은 여전히 빛났다.

매일 아침, 식당 문을 열기 전, 영훈은 벽에 걸린 문구를 바라봤다.

"거기만 길이 아니다. 다시 힘내."

그리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맞아, 거기만 길이 아니야. 나도 그랬으니까.'

영훈은 앞치마를 두르고 주방으로 들어갔다.

오늘도 김치찌개를 끓이며, 누군가의 마음을 위로할 준비를 했다.

할머니가 자신에게 그랬듯이.

자신이 그 청년에게 그랬듯이.

이제는 자신이, 다른 누군가의 위로가 되어 주는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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