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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만 길이 아니다 (5)

인생을 담은 한 접시

by 동그라미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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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만 길이 아니다 (5)


제5부: 인생을 담은 한 접시


결승전 당일.

스튜디오는 관객들로 가득 찼다. 조명이 밝아지고, MC가 등장했다.

"여러분, 드디어 흑백요리사 시즌 3 결승전입니다!

왼쪽, 중식의 거장 황민욱 셰프! 오른쪽, 파리에서 온 한식의 재해석자 김영훈 셰프!"

관객들이 박수를 쳤다.

황민욱과 영훈이 서로를 바라봤다. 두 사람 모두 긴장한 표정이었다.

MC가 봉투를 열었다. "결승전 주제는... '자신의 인생을 담은 한 접시'입니다! 제한 시간 3시간!"

영훈은 망설임 없이 재료를 집었다. 묵은지, 돼지 목살, 무, 대파, 된장, 고춧가루.

옆에서 황민욱은 랍스터, 전복, 송이버섯 등 고급 재료를 준비했다.

"영훈 씨, 김치찌개로 가시는군요."

황민욱이 말했다. 영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제 인생의 시작이자 끝입니다."

황민욱의 표정에는 자신의 요리가 결국은 우승할 것이라는 자신감의 미소가 흘러나왔다.

영훈은 묵은지를 썰며 과거를 떠올렸다.

3년간의 공시 실패. 어둠 속에서 길을 잃었던 그때. 할머니의 김치찌개 한 그릇이 자신을 살렸던 그 순간.

칼질을 하며 눈물이 핑 돌았다. 하지만 참았다. 지금은 집중해야 할 때였다.

육수를 우려냈다. 12시간이 아니라 3시간 안에 깊은 맛을 내야 했다. 영훈은 압력솥을 사용했다. 동시에 묵은지를 볶아 감칠맛을 극대화했다.

돼지 목살은 수비드로 완벽하게 익힌 후, 표면만 바삭하게 튀겼다.

플레이팅. 영훈은 하얀 깊은 접시를 선택했다. 육수를 먼저 붓고, 그 위에 묵은지를 예술적으로 배치했다. 돼지고기는 얇게 썰어 꽃잎처럼 올렸다. 마지막으로 쪽파 기름과 통깨를 뿌렸다.

완성.

시간 종료 10초 전이었다.

"시간 끝!"


심사 시간.

황민욱의 요리가 먼저 나왔다. '인생의 항해'라는 제목의 요리였다.

랍스터와 전복을 활용한 호화로운 중식 코스. 플레이팅은 배 모양으로, 인생의 여정을 표현했다.

심사위원들이 맛을 봤다.

"완벽합니다. 기술적으로 흠잡을 데가 없어요."

"미슐랭 3 스타 수준입니다."

황민욱이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이제 영훈의 차례.

영훈은 떨리는 손으로 접시를 올렸다. '위로의 김치찌개'라는 제목.

심사위원들이 숟가락을 들었다.

첫 번째 심사위원이 한 숟갈 떴다. 입에 넣었다.

눈을 감았다.

5초간의 침묵.

그리고 눈을 떴다. 눈가가 붉어져 있었다.

"이건... 이건 그냥 김치찌개가 아닙니다."

그러면서 다시 지그시 눈을 감고 독백처럼 말한다.

“위로라...”

두 번째 심사위원도 고개를 끄덕였다.

"황민욱 셰프의 요리는 완벽했습니다. 하지만 김영훈 셰프의 요리에는 무언가 영혼이 담겨 있어요. 기술을 넘어선, 진심이 있습니다."

세 번째 심사위원이 말했다.

"이 요리를 먹으면서, 제 어머니가 해주시던 밥이 생각났습니다. 그때의 따뜻함, 그때의 위로. 이 요리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마음을 따듯하게 하는 그런 힘이 느껴지네요."

심사위원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두 분 모두 훌륭했습니다. 황민욱 셰프는 기술적으로 완벽했고, 김영훈 셰프는 맛뿐 아니라,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느껴집니다."


긴 침묵.

"하지만 요리의 본질은 무엇입니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 기준에서..."

심사위원장이 영훈을 바라봤다.

"흑백요리사 시즌 3의 우승자는... 김영훈 셰프입니다!"

스튜디오가 폭발했다. 관객들이 일어나 박수를 쳤다.

영훈은 그 자리에 서서 눈물을 참았다. 하지만 참을 수 없었다.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황민욱이 다가와 영훈을 껴안았다.

"축하해요, 영훈 씨. 당신이 이길 자격이 있어요."

"감사합니다, 셰프님..."

영훈의 목소리가 떨렸다.

우승 인터뷰.

MC가 마이크를 건넸다. "영훈 씨, 우승 소감 한 말씀해 주세요."

영훈은 눈물을 닦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가장 먼저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은 분이 계십니다."

카메라가 영훈의 얼굴을 클로즈업했다.

"저는 고등학교 졸업 후 3년 동안 공무원 시험만 준비했습니다. 세 번 다 실패했고, 제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영훈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그때, 저를 살린 건 화려한 칭찬도, 거창한 계획도 아니었습니다. 평소 자주 가던 할머니 백반집의 김치찌개 한 그릇이었습니다."

관객들이 조용해졌다.

"할머니는 저를 공무원 준비생이 아닌, 그저 고생하는 한 청년으로 봐주셨습니다. '오늘은 공짜니까 먹고 다시 힘내'라고 말씀해 주셨죠."

영훈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때 저는 깨달았습니다. '공시만 길이 아니다.' 인생에는 수많은 길이 있고, 제 길은 사람들의 마음을 진심으로 위로하는 요리를 만드는 것이라는 것을요."

영훈은 카메라를 똑바로 바라봤다.

"할머니 백반집은 지금 문을 닫으셨지만, 저는 할머니의 그 따뜻한 정신을 잊지 않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영훈이 깊게 고개를 숙였다.

"할머니, 정말 감사합니다. 할머니가 제 인생을 바꿔주셨어요."

스튜디오가 박수로 가득 찼다. 많은 관객이 눈물을 흘렸다.

MC도 눈시울을 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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