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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도전, 소설
23화
카페 오마카세(5)
서로 보듬다
by
동그라미 원
Dec 3. 2025
카페 오마카세(5)
서로 보듬다
아무 문제 없이 승승장구하는 사람보다 닥친 많은 문제와 싸워가며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이 훨씬 많다.
그러나 문제에 해답을 주려는 사람은 많아도 조용히 들어주며 스스로 답을 찾을 때까지 기다려주는 사람은 별로 없다.
사실 판단이나 답을 주려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있다면 어떤 문제도 견디며 이길 수 있다. 혁진에게 카페를 통해 돈을 버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힘겨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차 한잔을 통해 그들을 위로하는 것이다.
개점 6개월 후.
카페 오마카세는 이제 하루 평균 30명의 손님이 찾는 작은 명소가 되었다.
물론 스타벅스나 이디야처럼 북적이는 카페는 아니었다. 하지만 혁진은 그것을 원하지 않았다.
혁진이 원한 것은 진정으로 마음이 필요한 사람들이 찾는 공간이었다.
어느 날 저녁, 혁진은 카페 문을 닫고 혼자 앉아 자신의 인생을 돌아봤다.
경영학 전공자로서 탄탄한 커리어를 쫓았지만, 회사의 부도와 실직, 그리고 힘겨웠던 구직 생활과 대리운전 알바 경험.
그 속상했던 순간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경험들.
하지만 이제 혁진은 깨달았다.
그 모든 고난이, 지금 카페를 찾아오는 이들의 마음을 이해하는 깊은 공감 능력이 되었다는 것을.
혁진은 노트에 적었다.
'나는 실패한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준비 중이었다.'
'내가 겪었던 모든 고통이, 이제는 누군가를 돕는 힘이 되었다.'
그로부터 1년 후.
카페 오마카세는 지역 신문에 소개되었다.
"감정을 메뉴로 만든 독특한 카페, 카페 오마카세. 이곳에서는 커피 대신 차를 마시며 마음의 위로를 얻는다."
기사가 나간 후, 더 많은 사람이 찾아왔다.
하지만 혁진은 카페를 확장하거나 프랜차이즈를 만들 생각이 없었다.
"여기는 공장이 아니에요. 마음을 나누는 곳이에요."
어느 날, 1년 전 유방암 진단을 받았던 그 여인이 다시 찾아왔다.
"사장님, 기억하세요?"
혁진은 그녀를 알아봤다. 하지만 이제 그녀의 얼굴은 달랐다. 창백하지 않았고, 눈빛에 생기가 있었다.
"물론이죠. 어떻게 지내셨어요?"
"항암 치료 끝났어요. 이제 많이 좋아지고 있어요!"
여인의 목소리에 기쁨이 가득했다.
"정말 수고 많으셨네요!"
그녀는 혁진에게 말했다.
"사장님 덕분이에요. 그날 여기서 차 한잔 마시고, 제 마음을 털어놓지 않았으면, 저 아마 포기했을 거예요."
"아니에요. 스스로 이겨내신 거예요."
"그날 차 한잔과 마음껏 울었던 시간이 저에게는 큰 힘이 되었어요. 진심으로 감사해요."
혁진은 그녀의 일이 마치 자기 일처럼 기뻤다.
그날 밤, 혁진은 카페 창가에 앉아 밖을 바라봤다.
창밖에는 가로등 조명이 은은하게 오가는 사람의 빛이 되어 주었다.
'나는 세상에 필요한 사람이 될 준비가 되었는지 끊임없이 고민했었지.'
과거의 질문이 떠올랐다. 그리고 이제 혁진은 그 답을 알았다.
나는 완벽한 정장을 입은 직장인이 되지 못했다. 높은 연봉을 받는 임원이 되지 못했다. 성공한 사업가가 되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따뜻한 차 한잔과 침묵의 경청으로 사람들의 외로움과 고통을 보듬는 카페 오마카세의 주인이 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진정으로 세상에 필요한 존재가 되는 것이었다.
혁진은 미소 지었다.
카페 벽에 걸린 액자의 글귀를 다시 읽었다. "여기는 당신의 쉼터입니다."
그리고 혁진은 스스로에게 말했다. '그래, 여기는 내 쉼터이기도 해.'
며칠 후, 혁진은 카페에 새로운 공간을 만들었다.
작은 게시판이었다. 제목은 "마음의 편지함".
손님들이 익명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 다른 손님들이 답장을 쓸 수 있는 공간이었다.
첫 번째 편지가 붙었다.
'저는 오늘 회사에서 해고 통보를 받았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어요. 너무 불안합니다.'
다음 날, 그 아래에 답장이 붙었다.
'저도 2년 전에 회사가 부도났었어요. 그때 정말 힘들었지만, 지금은 새로운 일을 하며 살고 있어요. 당신도 괜찮아질 거예요. 조금만 버티세요.'
또 다른 답장.
'힘내세요. 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 우리 모두 함께 힘든 시간을 이겨내고 있어요.'
게시판은 서로의 고통을 나누고, 서로를 위로하는 글들로 점점 채워졌다.
혁진은 그 모습을 보며 깨달았다.
카페 오마카세는 단순히 차를 파는 곳이 아니었다.
이곳은 '마음 오마카세'였다.
사람들이 자신의 마음을 맡기고, 위로를 받고, 서로를 보듬는 공동체였다.
1년 더 지난 후.
카페 오마카세는 2주년을 맞았다.
혁진은 작은 기념행사를 열었다. 그동안 카페를 찾았던 손님들을 초대했다.
암을 이겨낸 여성도 왔고, 취업에 성공한 남자도 왔다.
이혼 후 홀로 아이를 키우던 싱글맘도, 우울증을 이겨낸 대학생도 왔다.
그들은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며 웃고, 울었다.
"저는 여기서 다시 살 힘을 얻었어요."
"저도요. 혁진 사장님 덕분이에요."
"아니, 우리가 서로 덕분이죠."
혁진은 그들을 보며 행복했다.
'이게 내가 꿈꿨던 공간이야.'
사람들이 서로의 고통을 나누고, 서로를 위로하고, 함께 성장하는 공간.
그날 밤, 모두가 돌아간 후.
혁진은 혼자 카페에 앉아 차 한잔을 마셨다.
창밖으로 거리가 보였다. 사람들이 바쁘게 오가고 있었다.
문득, 예전 구청에서 일할 때 만났던 김칠순 할아버지가 떠올랐다.
"아무도 날 찾지 않아요. 난 이제 쓸모없는 사람이에요."
할아버지가 했던 말. 그때 혁진은 할아버지에게 말했었다.
"아니에요, 할아버지. 제가 있잖아요."
그리고 지금, 혁진은 깨달았다.
자신도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되었다는 것을. 외로운 사람에게, 힘든 사람에게, 절망한 사람에게.
"제가 있잖아요."라고 말할 수 있는 존재.
혁진은 차를 다 마시고 일어났다. 그리고 카페 벽의 액자를 다시 한번 바라봤다.
"괜찮아요. 당신은 잘하고 있어요."
혁진은 그 말을 자신에게도 해주었다.
"괜찮아, 혁진아. 너도 잘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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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인생 2막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살면서 깨닫고 어려움을 극복한 마음들을 글을 통해 함께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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