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brunch
브런치북
새로운 도전, 소설
22화
카페 오마카세(4)
불안할 때 한잔
by
동그라미 원
Dec 2. 2025
카페 오마카세(4)
불안할 때 한잔
우리는 자라면서 인정을 받을 때 안정감을 느끼도록 길러져 왔다.
어려서는 부모로부터의 인정, 학창 시절에는 선생님과 친구로부터 인정, 보통 사회의 첫발을 내딛으면서 취업에 성공 여부가 인정받는 기준이 되곤 한다.
그래서 취업을 앞두고, 또 여러 번 실패를 경험한 사람은 긴장하게 되고 불안도 커지게 된다.
다음 날 오후.
정장 차림의 젊은 남자가 들어와 2번, '불안할 때 한잔'을 주문했다.
"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혁진은 그를 자세히 봤다.
초조하게 다리를 떨고 있었다. 손으로 머리를 자주 쓸어 넘겼다. 시계를 계속 확인했다.
'많이 불안한가 보다.'
혁진은 루이보스 블렌딩을 준비했다.
루이보스는 신경을 안정시키고 깊은 평온을 가져다주는 효과가 있다. 여기에 캐모마일을 조금 섞어 진정 효과를 더했다.
차를 내어주자, 남자가 말했다.
"저 내일 입사 면접이에요."
"아, 그러세요?"
"네. 근데 벌써 세 번 떨어졌어요. 이번이 네 번째예요."
남자의 목소리가 떨렸다.
"첫 번째는 서류에서 떨어졌고, 두 번째는 1차 면접에서, 세 번째는 최종 면접에서 떨어졌어요. 이제 정말 마지막 기회예요. "
묻지도 않았지만 남자는 자신이 왜 ‘불안할 때 한잔’을 시키게 되었는지를 설명하지 않으면 안 되는 강박에 사로잡힌 사람처럼 자신의 차지를 혁진에게 이야기했다.
혁진은 과거 자신을 떠올렸다.
실직 후 6개월간 취업에 실패하며 느꼈던 무력감과 불안. '나는 정말 필요한 사람일까?' 끊임없이 되물었던 그 밤들.
"많이 불안하시겠어요."
"네 솔직히 자신이 없어요. 또 떨어지면 어떡하지... 그런 생각만 들어요."
남자는 차를 마시며 계속 말했다.
"부모님은 제가 좋은 회사 들어가길 바라세요. 친구들은 다 취직했는데 저만 아직이에요. 주변에서는 '넌 뭐가 문제야?'라고 물어요. 저도 모르겠어요. 뭐가 문제인지..."
혁진은 그저 조용히 들었다.
"다음엔 이렇게 해보세요."라는 조언도, "힘내세요!"라는 가벼운 격려도 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차를 더 따라주고, 남자가 스스로 감정을 정리할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한참 후, 남자가 말했다.
"저... 너무 많이 떠들었네요. 죄송해요."
"아니에요. 괜찮아요."
"근데 신기해요. 아무 말도 안 해 주셨는데, 마음이 좀 편해졌어요."
혁진은 미소 지었다.
"말이 항상 답은 아니에요. 때로는 그저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요."
남자는 차를 다 마시고 일어났다.
"감사합니다. 내일 면접 잘 보고 올게요."
"응원할게요. “
일주일 후.
그 남자가 다시 카페를 찾아왔다. 이번에는 밝은 표정으로.
"사장님! 저 붙었어요!"
혁진은 기뻐하며 말했다.
"축하드려요!"
"진짜 감사해요. 그날 여기서 차 마시고 마음이 편해져서인지, 면접도 떨지 않고 잘 봤어요."
남자는 혁진에게 고개를 깊이 숙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혁진은 세상을 다 얻은 듯한 표정으로 감사 인사를 하는 젊은 청년에게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잘하셨어요. 축하해요. "
그 이후로, 카페 오마카세는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SNS에 후기가 올라왔다.
"여기 진짜 신기한 카페예요. 메뉴가 감정이에요. 근데 진짜 위로가 돼요."
"사장님이 정말 따뜻한 분이에요. 제 이야기 들어주시고, 딱 맞는 차를 주세요."
"힘들 때 꼭 가보세요. 마음이 편해져요."
손님들이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서러움을 안고 오는 사람.
외로움에 지쳐 오는 사람.
답답함을 풀고 싶어 오는 사람.
혁진은 그들 모두에게 차 한잔과 침묵의 경청을 내어주었다.
keyword
카페
Brunch Book
새로운 도전, 소설
20
카페 오마카세 (2)
21
카페 오마카세(3)
22
카페 오마카세(4)
23
카페 오마카세(5)
24
카페 오마카세 (6)
새로운 도전, 소설
brunch book
전체 목차 보기 (총 24화)
47
댓글
2
댓글
2
댓글 더보기
브런치에 로그인하고 댓글을 입력해보세요!
동그라미 원
소속
글로다짓기
직업
에세이스트
일상의 평범함을 깨우다
저자
새로운 인생 2막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살면서 깨닫고 어려움을 극복한 마음들을 글을 통해 함께 나눕니다.
구독자
688
제안하기
구독
이전 21화
카페 오마카세(3)
카페 오마카세(5)
다음 23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