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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도전, 소설
24화
카페 오마카세 (6)
마음의 편지함
by
동그라미 원
Dec 4. 2025
카페 오마카세 (6)
마음의 편지함
때론 잘 보이지 않던 작은 불이 커다란 불길이 된다.
각박하고 경쟁이 치열할수록 사람들은 그 경쟁에서 지친 마음을 둘 곳이 필요하다.
5년 후. 카페 오마카세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고소한 차향과 함께 잔잔한 일상의 소음으로 가득한 작은 공간.
그곳은 또한 혁진이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된 '마음의 편지함'이 시작된 곳이었다.
카페 한편에 시작한 작은 게시판은 점점 많은 사람의 주고받는 사연들로 채워졌다.
3개월 전, K 대학 도서관
카페 오마카세를 다녀갔던 한 학생이 도서관 학생 게시판 옆에, 자기 고민을 작은 쪽지에 써서 테이프로 붙였다.
'죽을 것 같은 중간고사 압박. 나만 이렇게 힘든 건가? 모두가 여유로워 보이는데 나만 무너지는 것 같아.'
그 학생은 혁진의 카페에서 본 '마음의 편지함'을 떠올렸다.
그곳에서 느꼈던 익명성이 주는 해방감과 위로를 간절히 원했던 것이다.
다음 날, 그 쪽지 옆에 또 다른 쪽지가 붙어 있었다.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나도 똑같아. 매일 밤 도서관에서 울어.'
그 다음날, 또 다른 쪽지.
'그 압박, 지나고 나면 별거 아니더라. 힘내. 우리 같이 이겨내자.'
작은 쪽지들이 만들어 낸 거대한 연결고리였다.
공부와 경쟁에 지친 청춘들이 쏟아낸 솔직한 마음의 조각들은 도서관 벽면을 따라 조용히 번져나갔다.
2주 후, K대학 커뮤니티에 글이 올라왔다.
"도서관에 신기한 현상 발견. 익명 쪽지들이 벽에 가득함. 다들 진짜 솔직하게 고민 털어놓고 있음. 위로받음."
댓글이 쏟아졌다.
"나도 봤어. 진짜 감동적이더라."
"어제 내 고민 적었는데 오늘 답장 10개 달려 있었어. 울었음."
"이거 누가 시작한 거야? 천재 아니냐."
그리고 곧, 이 소식은 SNS로 퍼져나갔다.
근처 S 대학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시작되었고, Y대학, H대학 등 수많은 캠퍼스에 '마음의 편지함‘ 구역이 생겨났다.
물리적인 상자가 아닌, 익명과 공감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커뮤니티로 진화한 것이었다.
캠퍼스의 '마음의 편지함'은 혁진의 카페와는 또 다른 특성을 보였다.
이곳은 주로 정체성의 혼란, 취업의 불안, 관계의 어려움 등 청춘만이 겪는 심오한 고민들로 채워졌다.
"졸업 후 나의 삶이 전혀 그려지지 않아. 매일 밤 텅 빈 미래를 보는 것 같아 두려워."
"나도 그랬어. 근데 지금 회사 다니면서 깨달았어. 미래는 그려지는 게 아니라 만들어지는 거더라. 오늘 하루만 잘 살면 돼."
"내가 이 전공을 선택한 게 맞을까? 스무 살에 내 인생을 결정해야 한다는 게 너무 버거워."
"전공이 인생 결정하는 거 아니야. 나 경영학과 나왔는데 지금 디자이너 하고 있어. 너무 걱정 마."
"부모님의 기대와 나의 현실 사이에서 길을 잃었어."
"부모님 기대 충족시키려다 내 인생 망칠 뻔했어. 지금은 내가 하고 싶은 거 하면서 행복해. 용기 내."
그리고 그 고민에 대한 답변은 때로는 날카로운 조언으로, 때로는 눈물 젖은 공감으로, 때로는 기발한 유머로 그들을 감싸 안았다.
"답이 없는 게 답일 수도 있어. 그냥 오늘 하루를 견디는 너 자신이 대단한 거야."
도서관 복도의 차가운 벽은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고 솔직한 '청춘의 숲'이 되었다.
누군가에게는 외로운 탄식이었던 쪽지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나만 힘든 게 아니구나'라는 안도감과 연대감을 주는 희망의 불빛이 되었다.
어느 날 오후, 혁진의 카페에 한 무리의 대학생들이 찾아왔다.
"사장님, 저희 K대학에서 왔어요. 사장님 뵙고 싶어서요."
혁진은 놀라 그들을 맞았다.
"어서 오세요. 저를 찾아오셨다고요?"
"네! 사장님 덕분에 저희 학교가 완전히 바뀌었어요. 다들 더 솔직해지고, 서로를 더 아끼게 됐어요."
학생들은 누군가 카페를 다녀와서 도서관에서 ’ 마음의 편지함‘을 시작하여 서로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고 있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한 여학생이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저는 사실 지난달에 학교 그만둘까 생각했어요. 너무 외롭고 힘들어서요. 근데 '마음의 편지함'에 제 고민 적었는데, 다음 날 20개 넘는 답장이 달려 있었어요. 다들 저랑 비슷한 고민 하고 있더라고요. 그때 깨달았어요. 나만 힘든 게 아니구나."
혁진은 그들에게 차를 내어주며 말했다.
"제가 한 건 정말 별거 없어요. 그냥 작은 게시판 하나 놓은 것뿐이에요."
"아니에요, 사장님. 사장님이 그 용기를 주신 거예요. 사람들에게 솔직해져도 괜찮다고, 약해도 괜찮다고 말해주신 거예요."
한 남학생이 말했다.
"사장님 덕분에 저희는 벽을 허물고, 서로의 마음을 보듬는 기적을 만들어 냈어요."
학생들이 돌아간 후, 혁진은 카페 벽면에 사연으로 채워진 ’ 마음의 편지함‘을 보았다.
오늘도 수많은 쪽지가 쌓여 있었다.
혁진은 그 쪽지들을 하나하나 읽었다.
'오늘 면접 떨어졌어. 너무 힘들어.'
'나도 작년에 10번 떨어졌어. 근데 지금 잘 다니고 있어. 힘내.'
'남자친구랑 헤어졌어. 세상이 무너진 것 같아.'
'나도 3개월 전에 헤어졌어. 처음엔 죽을 것 같았는데, 지금은 괜찮아. 시간이 약이야.'
'부모님이 실망하실까 봐 두려워. 나는 왜 이렇게 부족할까.'
'너는 부족하지 않아. 그냥 다른 길을 가고 있을 뿐이야. 부모님도 언젠가 이해하실 거야.'
혁진은 미소 지었다.
'내가 사람들에게 준 것은 단지 게시판 하나뿐이었는데. 이들은 스스로 벽을 허물고, 서로의 마음을 보듬는 기적을 만들어냈구나.'
마지막 쪽지
그날 밤, 혁진은 마지막 쪽지를 읽었다.
'사장님, 감사합니다. 이곳에서 저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언젠가 저도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혁진은 그 쪽지를 가슴에 꼭 안았다. 그리고 답장을 썼다.
'당신은 이미 누군가를 위로하고 있어요. 이 쪽지를 쓰는 것만으로도요. 고맙습니다.'
혁진은 카페 불을 끄고, 창밖을 바라봤다.
수도권 어딘가의 캠퍼스에서, 지금도 누군가 쪽지를 붙이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쪽지를 본 또 다른 누군가가 위로를 받고 있을 것이다.
혁진은 깨달았다.
자신의 작은 카페에서 시작된 익명의 공감이, 이제는 수도권 대학 캠퍼스를 넘어, 대한민국 청춘들의 가장 외로운 순간에 조용히 닿아, 그들의 삶에 따뜻한 연대의 빛을 비추고 있다는 것을.
혁진은 마지막으로 카페 문을 돌아봤다.
간판에는 여전히 '카페 오마카세'라고 쓰여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 작은 글씨로 "여기는 당신의 쉼터입니다." 쓰여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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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인생 2막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살면서 깨닫고 어려움을 극복한 마음들을 글을 통해 함께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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