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불안의 그늘, 아름다운 선율이 되다

by 동그라미 원
파도1.JPG


마음에 불안의 그늘, 아름다운 선율이 되다



1988년 가을, 올림픽을 앞두고 당시 막 개관한 예술의 전당에서 ‘세계 합창제’가 열렸고, 마지막날 공연을 보러 갔는데, 마지막 순서는 모든 출연자가 함께 나와 베토벤 9번 교항곡 4악장의 ‘환희의 송가’를 함께 불렀다. 그날 심장이 터질듯한 벅찬 감동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가장 아름다운 음악은 가장 깊은 비명에서 태어난다는 말이 있다. 우리가 공연장에서 베토벤의 교향곡을 들으며 전율하고, 말러의 선율에 눈물을 흘리는 이유는 단순히 그 음악이 '아름다워서'가 아니다. 그 선율 속에 작곡가가 밤새 잠 못 이루며 치열하게 싸웠던 '불안의 진동'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음악가들에게 불안은 피하고 싶은 소음이 아니라, 위대한 걸작을 완성하기 위한 필수적인 '불협화음'이다.



루트비히 판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에게 찾아온 불안은 음악가로서 사형 선고나 다름없는 '청력 상실'이었다. 30대 초반, 귓가에서 울리는 이명과 점점 희미해지는 세상의 소리는 그를 극심한 공포와 고립감으로 몰아넣었다.

1802년, 그는 자살을 결심하고 동생들에게 유서를 남긴다. 그 글에는 죽음에 대한 공포와 자신의 처지에 대한 비관이 절절하게 흐른다. 하지만, 그는 죽음의 문턱에서 펜을 꺾는 대신 오선지 위로 돌아온다.

"나는 운명의 멱살을 잡겠다. 운명이 나를 완전히 지배하게 두지는 않겠다."

그 유명한 <운명 교향곡(교향곡 5번)>의 첫마디, '쾅-쾅-쾅-쾅' 하는 모티브는 불안이 문을 두드리는 소리였다. 베토벤은 자신을 집어삼키려는 공포를 피하지 않고, 오히려 그 불안을 웅장한 오케스트라의 에너지로 폭발시켰다. 그의 음악이 그토록 뜨거운 위로를 주는 이유는, 그가 '불안을 없앤 것'이 아니라 '불안을 이겨내는 과정' 자체를 악보에 기록했기 때문이다.



또한 그가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합창 교향곡(교향곡 9번)>을 쓸 때는 완전히 청력을 잃어 들을 수 없는 상태였다. 그러나 그는 인생에 찾아온 절망적인 상황을 모든 이에게 지그까지도 가장 큰 감동을 주는 음악으로 승화해 냈다. 베토벤의 자필 악보는 현재 ‘유네스코 세계 기록유산’으로 지정돼 있으며 4악장의 유명한 주제선율은 유럽연합(EU)의 공식 찬가로 사용되고 있다.


구스타프 말러(Gustav Mahler)는 평생을 죽음에 대한 강박과 신경증적인 불안 속에 살았던 인물이다. 심장병을 앓았던 그는 자신의 심장 박동이 언제 멈출지 모른다는 공포를 안고 있었고, 베토벤과 슈베르트가 9번 교향곡을 쓰고 죽었다는 '9번의 저주'를 두려워했다.

하지만 말러는 이 지독한 불안을 회피하는 대신, 음악을 향한 열정을 담는 그릇으로 삼았다. 그는 "교향곡은 하나의 세계와 같아야 한다. 모든 것을 다 포용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의 음악 속에는 천상의 평화뿐만 아니라, 신경질적인 행진곡, 장례식의 종소리, 그리고 죽음 직전의 고요함이 뒤섞여 있다.



특히 그의 <교향곡 9번> 마지막 악장은 죽음에 대한 불안을 넘어, 사라져 가는 모든 것에 대한 처연한 작별 인사처럼 들린다. 그는 자신의 심장 박동이 멈추는 것에 대한 공포를, 서서히 잦아들며 침묵 속으로 사라지는 현악기의 선율로 승화시켰다. 말러의 불안은 역설적이게도 듣는 이들에게 "삶의 유한함을 받아들이라"는 가장 깊은 차원의 위로를 건네고 있다.



베토벤과 말러, 그리고 수많은 예술가는 증명한다. 불안은 영혼의 불협화음이지만, 해결되는 순간 가장 아름다운 화음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우울하거나 불안할 때 슬픈 음악을 들으며 위로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100년 전, 200년 전의 누군가가 나와 똑같은 고통을 느꼈고, 그 고통을 견디며 무언가를 만들어냈다는 사실이 시공간을 넘어 울림이 된다.


누구나 살면서 예상치 않은 때에 예기치 않은 일로 인해 두려움과 좌절에 직면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그런 시간을 잘 극복하고 오히려 도약하는 사람도 있고, 그 불안과 조급함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지는 사람도 있다.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한 시점도 갑자기 실직하게 된, 어쩌면 가장 미래에 대한 불안이 엄습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 시간의 여러 가지 형태의 불안과 그것을 이겨내려는 내 마음에 도전은 자연스럽게 글의 소재가 되었다. 그리고 글을 쓰다 보면 생각이 정리되기 시작하고, 막연해서 더 커 보이던 불안도 넘을 수 없는 에베레스트산이 아니라, 조금 힘들어도 얼마든지 도전할 만한 북한산 정도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지금 내 마음속에 소란스러운 불안이 일고 있다면 그 소리를 억지로 끄려 할 필요가 없다. 그것은 인생이라는 교향곡이 클라이맥스로 향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조 바꿈'의 과정일지도 모른다.

위대한 음악이 불협화음 끝에 찬란한 해결을 맞이하듯, 나의 불안도 결국 나만의 고유한 멜로디가 되어 누군가에게 깊은 울림을 줄 날이 올 것이다.

이전 06화마음에 불안의 그늘, 빛이 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