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한 파도가 서퍼를 만든다
하와이 오하우는 서핑의 발상지로 불리고, 지금도 서핑의 성지로 유명하다. 그곳에 멋진 파도를 타는 모습을 상상하며 그곳에 가서 파도를 기다리는데 파도가 없이 계속 잔잔하다면 어떨까? 그곳은 평화로워 보이지만, 그 어떤 서퍼도 그 바다에서는 파도를 탈 수 없다.
반대로 거대한 쓰나미가 몰려오는 바다는 어떤가? 그곳은 서핑이 아니라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공포의 공간으로 변한다. 훌륭한 서퍼를 만드는 것은 '파도가 없는 바다'가 아니라,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높이의 '적당한 파도'가 있는 곳이다.
심리학에는 이 '적당한 파도'의 중요성을 과학적으로 증명한 법칙이 있다. 바로 '여키스-도슨 법칙(Yerkes-Dodson Law)'이다.
1908년 심리학자 로버트 여키스와 존 도슨은 흥미로운 실험 결과를 발표했다. 사람들은 스트레스(각성)가 전혀 없을 때 최고의 성과를 낼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휴가를 그렇게 기다리다가 막상 휴가가 되었는데 무기력하게 시간만 보내는 경우가 있다. 지루함의 늪(각성 수준이 너무 낮을 때)은 긴장감이 전혀 없는 상태다. 평온해 보이지만, 심심해하고 몸은 늘어진다. 이 구간에 머무르면 우리는 평안가 아닌 '무기력'을 경험한다. 침대에 누워 의미 없이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며 시간을 보내게 된다.
반대로 자신이 감당할 만한 수준을 넘는 일들이 겹쳐서 다가올 때, 사람은 ‘멘붕’이라는 상태를 경험한다. 공황의 늪(각성 수준이 너무 높을 때)은 감당하기 힘든 스트레스가 몰려오는 상태다. 뇌는 정보 처리를 멈추고 몸은 얼어붙는다. 운동선수가 결정적인 순간에 몸이 굳어 실수를 연발하는 것이 바로 이러한 때다.
하지만 우리에게 초인적인 활력과 능력을 발휘하게 하는 황금 지대가 있다. 바로 무기력과 공황 사이의 정점이다. 적당한 긴장감이 심장을 뛰게 하고, 뇌를 '초롱초롱한' 상태로 만든다. 이때 우리는 몰입을 경험하고, 평소보다 높은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는 말은 불안을 다루는 최고의 지혜다. 파도가 밀려올 때 도망치면 물을 먹지만, 파도의 리듬에 몸을 맡기면 앞으로 나아가는 추진력을 얻는다.
나는 운동선수는 아니지만 갑자기 그야말로 갑작스럽게 돌발적인 상황에서 문제를 해결해야 할 때가 종종 있다. 그럴 때는 나도 모르는 집중력과 다 지나고 나면 “이걸 내가 어떻게 했지?”라는 생각이 드는 능력이 발휘되기도 한다. 돌발적인 상황이 오면 당연히 가슴이 쿵쾅대고 불안한 마음이 들지만, 이제는 그 불안을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하는 족쇄가 아니라, 내 앞에 닥친 문제를 잘 해결하라는 응원으로 생각하려고 한다.
서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파도의 힘도 중요하지만, 그 위에서 균형을 잡는 '코어 근육'과 파도를 읽는 '안목'이다.
나 역시 4050세대다. 최근에 4050 세대로 가장 활발하게 일할 나이에 AI로 인해 일자리를 잃게 되지 않을지 불안이 커지고 있다. 4050세대라면 일자리에 대한 불안을 AI를 통해 경험과 안목을 극대화할 기회로 여길 필요가 있다.
4050에게 AI는 일자리를 뺏는 약탈자가 아니라, 은퇴 이후의 삶까지 풍요롭게 만들어줄 '지치지 않는 비서'가 될 수 있다. 지금 느끼는 그 두근거림을 "나를 무너뜨릴 파도"가 아닌, "나를 새로운 영역으로 데려다줄 추진력"으로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렇듯 불안이 찾아올 때, 그 불안에 대해 새롭게 해석이 필요하다.
"이 불안은 나를 무너뜨릴 파도야"라고 생각하면 공황으로 간다. 하지만 "이 불안은 나를 멀리 보내줄 파도야"라고 생각하면 기록 경신으로 이어진다.
돗이 달린 배로 바다를 건널 때, 바람이 없으면 해류에 밀려갈 뿐이다. 하지만 배가 뒤집힐 폭풍우가 아니라면, 긴장하고 불안하게 할 만한 파도는 결국 목적지인 항구에 빨리 도달하게 할 것이다.
불안이 예고 없이 찾아와 당신을 흔들고 있다면, 지금 인생 바다에 파도가 치고 있다는 증거다. 그것은 내가 무서워서 배를 출항도 못 시킨 상태가 아니라, 어딘가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항해자'라는 뜻이다.
서핑을 배우려면 잔잔한 호수를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거친 파도가 있는 바다로 가야 한다. 그 파도라는 불안과 맞서기 시작할 때, 파도 위에서의 균형 감각을 익히고, 파도를 타는 법을 배우게 된다.
오늘 나에게 찾아온 그 적당한 긴장감을 피하지 말고 즐기는 것이 결국 불안을 이기는 것이다. 그 파도 위에 올라탈 때, 비로소 서퍼가 되고, 삶은 무기력을 넘어 생동감 넘치는 모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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