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청개구리씨 Sep 21. 2024

"오사카교회", 이념이 갈라놓지 못한 교회

새로운 화해 모색을 위한 일본 탐방

일본 기행의 마지막 날

이 행사를 준비하며 가장 기대했던 방문처 중에 하나였던 "오사카교회"에 주일 오전 예배를 참석했습니다.


1952년 "외국인등록법"으로 기존에 일본에 살고 있던 재산과 모든 것이 리셋이 되고, 남과 북중에 외국인으로 모국을 등록하라 했을 때, 당시에 많은 분들이 북한을 택했습니다. 저는 당시에 북한이 남한보다 비교적 경제적으로 더 발전한 나라여서 선택한 것으로 교과서에서 배우고 알고 있었는데, 와서 보니 많은 분들에게 당시 대한민국과 조선을 택하라 하다 보니... "조선인"이란 의식이 강했거나 이런 개념이 약했던 분들은 "한국" 또는 "대한민국"이라는 낯선 이름 대신 "조선"을 선택한 경우들도 많았다고 하더군요.


남한과 북한으로 분단된 조국을 원치 않았고 '조선인'을 고집했던 이들이 당사에는 적지 않게 있었던 거 같습니다. 현재도 일본 정부에 의해 계속 줄이고 있음에도 "조선인"으로 분류되어 있는 이가 2800명이나 된다고 하니 당시에는 그런 분들이 더 많았을 거 같습니다.


일본인 납치건으로 현재 일본정부는 조총련을 계속 누르는 정책을 펴고 있어서 조총련에서 민단, 즉 대한민국 국적으로 갈아타는 사람이 지속적으로 늘어났다고 합니다.(그래서 현재 오사카교회도 대다수의 성도들은 국적이 대한민국입니다)

그중 특별히 9만 명이 넘는 북송 자녀를 둔 부모들과 그 가족들은 일본사회에서의 생존의 문제로 국적은 대한민국을 택했지만, 북에 있는 자녀들에게 혹이라도 피해가 갈까 봐 실질고향인 한국에도 오지 못하고 마음에 응어리와 상처가 가득한 채 살아가고 계신 분들도 많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초기 재일교포들의 50%는 제주도, 40%는 경상도, 그외가 10%로 일반적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북송된 이들의 부모들의 고향은 대부분 남한인 셈이죠)


이런 아픔 가운데, 이 오사카교회는 일본에 사는 재일 조선인으로 이념을 넘어서 신앙 안에 한 성도로 살아가며 시작했고, 그 정신을 이어가고 있는 교회이기에 남과 북이 요즘과 같이 갈등이 점점 고조되어 가는 상황에서 이분들의 예배와 공동체를 조금이나마 느껴보고 싶었습니다.


지나가는 손님과 같은 제가 이분들의 상황이나 아픔, 마음을 충분히 헤아릴 수야 없겠지만, 이분들이 함께 모여 예배하고 기도하는 그곳에 함께 있고 싶었습니다.


교회는 오래된 건물만큼 건물도 의자도 많이 낡고 여러 시설은 아주 좋다고 할 건 아니었지만, 일본의 교회치고는 큰 건물을 가지고 있었고 일본어로 하는 예배와 한국어로 하는 예배로 나눠서 교회를 운영하고 계셨습니다.


요즘 재일교포 4,5세대는 다들 일본인 학교에서 일본말로 모든 것을 공부하고 자라납니다.

그리고 앞의 글들에서 언급드린 것처럼 일본에서 태어난 아이들에게는 일본 시민권을 부여해 일본인화시키고 있는 정책으로 인해, 교포의 통계수는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작은 수이지만, 신앙 안에 정치의 색채를 내려놓고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살아가고 있는 분들을 만나 함께 예배하니 참 감격스럽고 감사하고 좋았습니다.


정치적인 거창한 무엇이 아니라, 함께 웃고 울며, 함께 밥을 먹으며 살아가는 가운데 남과 북이 서로를 향해 적대하지 않고 함께 공생하며 발전해 가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한참 동안 머릿속을 맴도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런 날이 속히 와서 우리의 후대들에게 좀 더 평화스러운 나라, 서로를 향한 총부리에 많은 재정과 시간을 들이는 것이 아니라 함께 손잡고 발전을 도모하는 나라가 되어 남과 북이 함께 세계에 기여하는 나라가 되면 좋겠다는 혼자만의 생각과 상상을 하며 감격스러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코리안타운 역사자료관에서 살펴본 오사카교회의 내용
한국의 전통적인 교회 예배와 비슷한 예배였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