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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다 Mar 19. 2024

정말 없더라.   

실제로 보니 할 말이 없다. 

지난 주말 오랜만에 아이들과 함께 공원에 올랐다.

공원이라고는 하지만 언덕 꼭대기에 있어서 가파른 길을 헉헉대고 등산하듯 올랐다.

힘들긴 했지만 막상 도착해서 보니 오랜만에 느껴보는 숲 같은 느낌이 청량하고 기분이 좋았다.

산책도 하고 공원 한 편의 놀이터와 깊은 숲 속 같았지만 알고 보니 도로옆이었던 숲체험 놀이터도 다녀왔다.

그렇게 기분 좋게 두어 시간을 보내고 내려오는 길이었다.

가파르긴 했지만 계단도 잘 되어있었고 아이들이 다칠까 조심조심 천천히를 외치며 빠르게 걷지도 않았다.


"악!!"

나도 모르게 비명을 외치곤 주저앉아버렸다.

왼쪽발목이 안쪽으로 꺾여 접질려지며 나온 비명이었다.

웬만하면 반대발로 깽깽이를 뛰며 "괜찮아 괜찮아. " 했겠지만 주저앉아 일어나지 못할 정도의 통증은 처음이었다.

한참을 길 한가운데 주저앉아 발목을 부여잡고 있었지만 그대로 앉아있을 수는 없었다. 다행히 아직 골목으로 들어서는 차가 없긴 했지만 차가 오가는 길이었고 걱정 가득한 아이들의 눈망울이 더 이상 주저앉아 있을 수 없게 만들었다.

가까스로 일어나 절뚝이며 골목길을 마저 내려와 편의점에 들러 아이들에게 음료수 하나씩을 사주고 집에 들어왔다.


집에 와서도 통증은 서너 시간이 지나도록 가시지를 않았다. 남편은 수차례 병원에 가자고 얘기했지만 주말 오후에 문 연 병원을 찾기도 힘들었을뿐더러 그냥 접질렸을 뿐인데 괜스레 유난을 떠는 것 같았다. 

파스를 붙이고 압박붕대를 동여맸다. 저녁쯤 되자 마치 발목에서 심장이 뛰고 있는 것만 같았고 불이 나는 것 같은 통증이 올라왔다.


남편은 화를 내면서 내 겉옷을 챙겨 나를 응급실 앞에 내려놓았다.

응급실 문 앞에 섰을 때는 왼쪽발로는 땅을 디딜 수도 없을 만큼의 통증이 있었다.


응급실 접수대 앞에 서고 나니 근래 의사 업무중단 어쩌고 했던 뉴스들이 떠올랐다. 


"어떻게 오셨어요?"

응급실 접수데스크 직원이 퉁명스럽게 물었다. 


"발목을 접질렸는데 지금 진료가 될까요? "

그러자 직원은 잠시 검색하는듯하더니 전화기를 들었고 그때 마침 응급실 문이 열리며 초록색 의료복을 입은 젊은 남자가 나와서 내게 어디가 아프냐 물었고 나는 데스크 직원에게 했던 말을 다시 했다.


"발목을 접질렸어요."


의료복의 남자는 친절했다. 내가 발도 디디지 못하는 걸 보고 휠체어를 가져와 나를 앉히고 응급실로 들어갔다.

아이 때문에 몇 번 와봤던 곳인데 그때와는 다르게 모든 침대가 비어있었다.

나를 데려왔던 사람을 포함해 두어 명의 젊은 남자와 40대 후반쯤 되는 간호사가 의료복을 입고 있었다.

남자들은 젊다는 말조차 부족할 정도로 어려 보여  의사로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휠체어를 타고 가 엑스레이를 찍고 아까 보았던 간호사가 엑스레이를 보며 말했다.


"큰 골절은 안 보이지만 여기(펜으로 화면 한쪽을 동그라미 그리며) 바깥 발목... 음.... (한참을 엑스레이를 보다가) 일단 인대는 ct를 봐야 하고 미세골절은 mri를 봐야 하는데 이삼일 지나도 통증이 사라지지 않으면 촬영 가능한 병원 방문하셔서 확인하세요. 엉덩이 주사는 맞으실 거예요? "


"네? 네"


간호사는 손을 휘휘 저었고 젊은 남자들이 나를 응급실 침대에 데려다 놓았다.

아까는 없었던 젊은 간호사가 나타나 내 엉덩이에 주사를 놓았고 다시 나타난 남자들이 내 다리에 반깁스를 시작했다.

그리고 부축을 받아 다시 응급실 데스크로 나왔다. 내 손엔 한쪽신발이 든 검은 봉지와 한알씩 들어 스템플러로 집어진 약봉지가 들려있었다. 


응급실에 사람이 없으니 친절하고 신속하긴 했지만 10여 분간 엑스레이 촬영 한 번과 이도저도 아닌 간호사의 애매한 진단을 받고 어설픈 깁스를 하고 내쫓긴 기분이었다. 


그렇게 나온 진료비는 9만 원이 넘었다.


기다리고 있던 남편의 차를 타고 집으로 오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다친 게 아이들이 아니라 나라서 다행이다. 


이런 시기에 아이들이 아프거나 다치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문득 두려움이 느껴졌다. 


뉴스에 나오는 파업이야기를 들으면서 남의 나라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아직까지 나에겐 체감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고는 예고되지 않는다. 다치고 싶어서 아프고 싶어서 혹은 언제 아파야지 하고 계획을 잡고 아픈 사람은 없다. 


그래. 의사도 직업이다.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최소한의 선이라는 게 있다. 그것은 결코 넘어야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하물며 그것이 사람의 생명과 관련된 것이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최소한 직업에 대한 책임감은 있어야지. 

내 직업이 사람을 살리는 일이면 사람을 살리는 편에 서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책임이다.


살다 보면 그럴 때가 있다. 

지금 당장은 이게 정의 같아 맹목적으로 돌진해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부끄러워지는 일들. 


부디 그런 후회를 남기지 않기를 바란다. 



- 누구나 제 손톱 밑의 가시가 제일 아플 수 있어. 근데 심장이 뜯겨나가 본 사람 앞에서 아프다는 소리는 말아야지. 그건 부끄러움의 문제거든 <미스터 선샤인 이병헌 대사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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