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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다 Apr 23. 2024

쑥떡? 쑥떡!

엄마가 만드는 일 년 간식. 

해마다 봄이 오고 언 땅이 녹아 새싹이 파릇파릇 돋아나면 엄마는 이따금씩 친구분들과 약속을 잡고 어딘가를 다녀오셨다.


그때마다 평소 꺼내 입지도 않던 형형색색의 등산복을 입고 나가셨는데 평소 등산을 즐기시지 않음에도 콧노래를 부르며 나가시는 모습이 의아하곤 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한번 다녀오시면 나갈 땐 말끔한 차림이던 것이 돌아오시고 나면 온 신발과 바지 밑단에 흙이 잔뜩 묻어 현관밖에서부터 탁탁 터는 소리가 들리면 엄마가 오셨는가 보다 하고 생각했었다.


그렇게 돌아오시는 날이면 절대 빈손으로 오시는 법이 없었는데 평소 마트 같은 데서 행사로 나누어주곤 했던 천으로 된 큼지막한 장바구니를 하나 가득 배불리 채워오시는 거였다.


쑥이었다.


엄마는 그것을 몇 번이고 깨끗이 씻어 쪄서 말린 뒤 봉지에 담아 커다랗지만 가벼운 그것을 어린 내손에 들려 본인은 쌀을 담아 들고 방앗간에 가서 빻아오시곤 했다.


방앗간의 그 털털 거리는 빨간 기계가 몇 번이고 돌아 곱게 가루진 쑥과 쌀가루가 나오면 엄마는 그것을 들고 집에 돌아와 다시 콧노래를 부르며 반죽했다.


쑥떡이었다.


동그랗고 넓적하게 만들어진 반죽이 하나하나씩 비닐에 담아 착착 냉동고에 쌓아 넣어놓으면 모든 일이 끝나는 것이었다.


그렇게 냉동고 한편에 쌓인 쑥떡반죽을 한해 내내 하나하나씩 꺼내먹으며 어머니는 굉장히 행복해하셨다. 


이따금 조금씩 찢어 내 입에 넣어주실 때면 나는 마지못해 받아먹다가도 두어 번 씹고 '웩' 하고 뱉어내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엄마는 "이게 얼마나 맛있는데~" 라며 웃으셨다.


사람 입맛이라는 것이 참 이상하다.


어릴 때는 아무 맛도 모르겠던 그 쑥떡이 언젠가부터 맛있다고 느껴지기 시작했다.


30대에도 쑥을 캐러 다니던 엄마는 60이 훌쩍 넘은 지금까지도 봄철이 되면 등산복을 꺼내 입고 쑥을 캐러 나가신다.


이따금 가족나들이를 갔을 때도 인적이 드문장소에 쑥이 보이면 신나서 그 자리에 주저앉아 캐내어 오곤 하신다.


기껏 놀러 나와서는 쪼그라 앉아 쑥을 캐는 그 모습이 싫어서 몇 번 만류도 해보았지만 "내가 좋아서 하는데 왜 그러냐? 난 이게 재미야!"라고 하시는 말에 더 이상 말리지 못했다.


가볍게 말린 쑥 봉지를 들던 어린 딸이 자라 이제는 엄마대신 쌀자루를 들지만 함께 방앗간에 가는 그 길목에 자리한 추억은 그대로였다.


방앗간에 앉아 나오는 반죽가루를 기다리는 동안  인절미 한팩을 사들고 서로 입에 넣어주며 이렇다 할 주제 없는 잡담을 나누며 웃고 있노라면 어느새 방앗간에 앉아있던 다른 아줌마들도 처음 본 사이인데도 마치 항상 알고 지내던 사람들처럼 같이 웃고 떠든다.


그렇게 한참 웃고 떠들고 나면 반죽이 나오고 그 반죽을 들고 집에 돌아와 엄마와 함께 커다란 대야에 풀어 설탕과 뜨거운 물을 부어 쑥떡 반죽을 하고 냉동고에 차곡차곡 넣어놓고 나면 곳간에 일 년 곡식을 쟁여놓은 것처럼 마음이 뿌듯한 것이다.


엄마와 함께 앉아 반죽한 쑥떡을 꺼내 쪄먹으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먹성 좋은 작은 나의 아이들이 하나둘씩 함께 앉아 떡을 나눠먹고 있다. 


그렇게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어른은 어른끼리 한상에 앉아 함께 떡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다가 뜬금없이 6살짜리 둘째가 묻는다.


"엄마 이 떡 이름이 뭐야?"

"쑥떡이야."

"쑥~떠억~?"


아이는 짓궂은 얼굴로 한번 말하고는 잠시 뭘 생각하는 얼굴을 했다가 이내 생각이 났다는 듯이 손바닥을 '딱'치며 말한다.


"우리가 쑥떡쑥떡 이야기해서 쑥떡인가아?"


아이의 말장난이 귀여우면서도 그럴듯해서 어른들이 모두 웃는다.


"그러네. 엄마는 몰랐는데. 그래 우리가 쑥떡쑥떡 이야기해서 쑥떡인가 보다. 우리 아들 엄청 똑똑하네."


아이가 뿌듯한 표정으로 웃는다.


나는 냉장고를 채워 뿌듯하고 아이는 칭찬을 받아 뿌듯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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