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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다 Sep 07. 2023

죄송하지만 누구시더라.

너에게 고마워. 

누구나 그런 경험이 한 번쯤은 있지 않을까.


"반갑다!!" 


갑자기 건네오는 반가운 인사에 누군지 모르지만 얼떨결에 반가운 척해본 기억.


잠시간 기억나는 척하고 나면 인사치레처럼 "다음에 밥 한 번 먹자"라는 말 한마디로 지나친 기억 말이다.


뒤돌아서서 그가 누군지 생각해 보지만 도저히 기억나지 않고 그렇게 지내다 어느 날 불현듯 ' 아! 맞다!' 하고 그 사람이 기억나는 날도 있다. 




나는 사람의 얼굴을 잘 알아보지 못한다.


흔히 말하는 안면인식장애 까지는 아니더라도 무시하기엔 그 정도가 조금 심각한데 얼굴뿐 아니라 다니던 길도 잘 못 찾는 심각한 길치인걸 보면 이건 아무래도 두뇌의 문제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어쨌든 사람을 만나면 적어도 두세 번 정도는 봐야 '어? 낯이 익는데?' 정도의 인식이 생기고 대여섯 번 보면 '아는 사람인데 이름이 뭐였더라' 상태가 된다. 그러니 꾸준히 만나는 사람정도는 되어야 이름과 얼굴이 매치되는 것이다. 그마저도 오랫동안 보지 않고 지내면 잊힌다. 마치 cctv의 오래된 녹화화면이 지워지는 것처럼. 


그래서 이따금씩 코앞에서 스쳐지나고도 모른 척을 했다며 화를 내는 사람들도 있다. 

내 입장에선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상대방의 입장에서도 이해가 되는 부분이기 때문에 그럴 때마다 되지도 않는 변명으로 사과를 하곤 한다.


"아 미안. 정신을 딴 데 팔았나 봐" 


처음에는 "저는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해요. 그러니 다음에 또 성함을 묻더라도 오해하지 말아 주세요."라고 양해를 구하기도 했지만 그것도 한두 번. 

고개를 끄덕였지만 결국 두세 번 같은 상황이 되면 이해는 서운함이라는 감정과는 별개인 모양인지 쌓아두다 서운하다 건네는 사람들도 많았다.


이제는 변명도 지치는지라 그저 미안하다며 사과를 하고 만다. 가장 간단하고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그렇게 나는 내가 제법 연기를 잘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모다 언니!!!"


신호대기 중인 차에서 창문을 열고 멍하게 앉아있을 때 길을 지나는 한 여자가 인사를 했다. 


기억나지 않는 얼굴이었는데 내 이름까지 정확히 부르며 손을 흔드니 아는 사이가 분명했다.


나 역시 반가운 척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고 있을 때 신호가 바뀌었고 그렇게 손을 흔들며 지나친 날 저녁 카톡 하나를 받았다.


-언니! 솔직히 저 기억 못 했죠? 언니 동공지진~! 


아는 이름이었다. 그녀는 심지어 나와 2주간이나 산후조리원에서 매일같이 마주치며 살갑게 굴던 아이였다.


그 익숙한 얼굴이 몇 달간 보지 않았다고 잊히다니 도대체 내 기억력은 왜 이모양인가 싶어 우울해졌다.


-아니야. 내가 널 왜 잊어.


라고 보낸 문자뒤로 답장이 바로 날아왔다.


-괜찮아요. 우리 맨날 후줄근하게 보다가 밖에서 봐서 그런가 봐요. 언니 만나서 너무너무 좋았어요.


이 한마디가 너무 고마워서 순간 눈물이 날뻔했다. 


낯선 얼굴을 마주할 때마다 기억을 떠올리려 애쓰고 아는척하고 척하는 걸 들킬까 봐 초조한 마음에 사람들을 만나는 것 자체를 꺼리던 시절도 있었다. 


그녀에게는 별것 아닌 말 한마디였겠지만 그 작은 배려가 내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는지 알고 있을까.




살다 보면 크고 작은 사고들로 상처를 입는 경우가 많다.

부러지고 까지고 베이고 쓸리고 상상만 해도 아픈 그런 상황들을 마주하면 우리는 병원에 간다.

그런데 치료하지 않고 두는 상처들이 있다. 대게는 스스로 나아지는 그런 상처들 말이다.

그렇게 가볍게 생각하고 방치하는 상처는 때때로 곪아 더 악화되기도 한다.


마음의 상처도 그러하다.

커다란 문제로 인한 의견차이는 대부분 빠르게 대화하고 해결하려 노력하지만 항상 마음이 상하고 다치는 건 사소한 문제들이다.

세상일은 무엇하나 내 마음과 꼭 같지 않아서 하나하나 따지고 들면 진짜 치사하고 쪼잔한 것들이 쌓이고 쌓여 터져 나왔을 때 큰 다툼으로 이어진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 아닐까.


상대방에 대한 사소한 배려 마음 이런 것들은 그저 그렇게 사라지고 마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에게 그 감사한 마음이 쌓이고 쌓여 태산처럼 커진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닫는다.


우리의 모든 하루는 서로와 서로의 배려 속에 존재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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