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2
파타야에서의 하루가 지나고 아침이 밝았다.
조식이 별로라는 후기를 보고 큰 기대는 안 했지만, 정말 그랬다. 가짓수도 적고 맛도 없었다. 이걸 아침이라고 아이에게 먹이려니 괜히 미안해져서 식빵에 딸기잼을 발라 건넸다. 다행히 이번 여행 중 여기가 가장 저렴한 숙소라 앞으로는 나아질 일만 남았다는 생각에 위안을 삼았다.
조식을 먹고 방으로 올라오니 에어컨에서 담배냄새가 너무 심하게 났다. 끄면 안나는 걸 보니 누군가 방 안에서 담배를 피웠고 그게 공조설비를 돌아다니는 것 같았다. 방을 바꿔달라고 할까 잠시 고민했지만, 짐을 다시 싸야 한다는 생각에 귀찮아져서 일단은 나갔다 와서 다시 생각해 보기로 했다.
오늘의 일정은 실내외 코끼리카페인 몽창카페에 다녀와서 점심은 숙소 근처 한식당에서 삼겹살을 먹고 오후엔 터미널21 쇼핑몰에 가는 거다.
어제 야시장에서 산 코끼리옷 커플룩을 맞춰 입고 착장샷을 찍으니 여행자 느낌이 물씬 났다.
호텔을 나서는데 생각보다 그렇게 덥진 않았다. 베트남 다낭 여행을 갔을 때보다는 견딜만하다고 느껴졌다.
그랩(동남아판 카카오택시)을 타고 20분 정도 달려 몽창카페에 도착했다. 매표소 앞은 단체 관광객과 일반 관람객이 섞여 혼란스러웠는데, 그랩 기사님이 우릴 데리고 카운터에 가서 이런저런 얘길 하더니 바로 표를 끊어주셨다. 어쩐지 새치기를 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렇다고 이 혜택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아서 그냥 가만히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역시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코끼리였다.
아기 코끼리는 귀여웠고 어른 코끼리는 크고 두꺼웠다. 관광객을 등에 태우는 녀석, 상아에 앉히고 사진 찍는 녀석 등 각자 맡은 역할이 다른 것 같았다. 관광객들의 요구에 따라 쉴 틈 없이 계속 일하고 있는 코끼리를 보니 어쩐지 마음이 짠했다.
몽창카페 안에서 무료로 열리는 공연 시간이 가까워졌다. 우리는 커피와 코코넛 아이스크림을 테이크아웃해 마시며 공연을 보기로 했다.
생코코넛 속을 파고 그 안을 가득 채운 코코넛 아이스크림이 나왔다. 그냥 콘에 아이스크림 한 덩이 올려주는 줄 알았는데 거대한 모습에 빵 터져버렸다.
아들은 울상. 이게 아니란다. 할 수 없이 가장 무난한 땡모반을 다시 시켰다. 그런데 이번엔 통수박이 나왔다. 웃겨 쓰러지는 줄 알았다. 이렇게 큰걸 들고 마실 수도 없고... 결국 5밧을 더 내고 테이크아웃 성공.
공연을 기다리다 그만, 동물과 사진 찍는 상술에 걸려버렸다. 10년 전 이탈리아 콜로세움 앞에서도 똑같이 당한 적이 있고, 심지어 태국여행자 커뮤니티 '태사랑'에서 미리 공부해 둔 내용이었는데!
직원 두 명이 다가와 100밧이라며 사진을 찍고는 각자 따로 돈을 요구하는 수법. 알고도 당했다.
화려하게 치장하고 엄청나게 높은 힐을 신은 직원이 미소를 띠며 다가오는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아들 목엔 이미 뱀이 감겨 있었다.
땀을 줄줄 흘리면서도 웃으면서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니 냉큼 치우라고 할 수가 없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기분 좋게 사진이나 잘 찍어보자 했다. 알고도 당한 강매.
잠시 뒤 다른 사람이 오더니 토끼를 만져보란다. 사진 안 찍을 거니 살짝 쓰다듬기만 했는데 돈을 내란다. 와, 이건 선 넘었지, 사진을 찍은 것도 아닌데 한 번 쓰다듬었다고 돈을 내라니, 더는 못 당한다!
내가 계속 돈을 못 준다고 하니 그는 포기하고 돌아갔다. 노 포토, 노 머니!
그런데 잠시 뒤, 공연을 보는 아들 표정이 시무룩했다. 이유를 물어보니 우리가 사기를 당한 것 같아서 기분이 안 좋단다.
- 엄마 사기당한 것 같아요.
- 아니야 괜찮아, 이미 다 알고 있었어. 멋진 사진 남길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냥 한 거야.
아까 동물과 사진 찍은 게 자기 탓인 것 같아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 마냥 애기 같아 보여도 이럴 때 보면 좀 큰 것 같기도 하고.
몽창카페에서 나와 한식을 먹으러 갔다. 아들이 가장 좋아하는 삼겹살과 계란말이를 시켰더니, 무려 고등어구이와 된장찌개가 서비스. 해외 나오면 한식은 꼭 한 번은 먹게 되는 것인가. 아이가 있으니 어쩔 수 없다.
우리는 덥다는 얘기를 하루에 딱 두 번만 하기로 했다. 나는 건물에서 나오는 순간 습관적으로 "어후, 더워."라고 해서 기회를 금방 날려버렸다. 아들이 덥다고 징징댈 것 같아서 궁여지책으로 만든 규칙이었는데 내가 더 못 지키고 있다.
오후엔 층마다 여러 나라의 랜드마크 컨셉으로 꾸며놓은 대형 쇼핑몰에 가서 쇼핑을 했다. 지금이 겨울이라도 태국은 원래 더운 나라이기 때문에, 관광은 오전에 하고 오후는 수영장에서 물놀이를 하거나 시원한 쇼핑몰에서 보내는 게 좋다는 팁을 반영해 짠 일정이었다.
쇼핑몰을 돌아도 딱히 뭐 살만한 건 없어서 나는 코끼리가 그려진 동전지갑을 샀고, 아들은 울트라맨 프라모델을 샀다. 그리고 마치 빼빼로처럼 생겼는데 '두리안맛'인 과자를 발견해 호기심에 구매해 보았다.
베트남 여행 때 처음 접한 두리안. 생김새도, 냄새도 거북스러워서 도저히 먹어볼 용기가 나지 않았는데 과자라면 한 번 시도해 볼 수 있지 않을까. '과일의 왕'이라고 하니 어디 한 번 도전을~
그러나 두리안맛 빼빼로를 한 입 먹고 토할 것 같았다. 음식에 이런 말은 나쁘다는 걸 알지만 실제로 너무 그랬다. 아들과 딱 한 입씩 먹고는 버렸다.
저녁은 쇼핑몰 안에 위치한 (말도 안 되게 저렴한) 푸드코트에서 먹었다. 나는 팟타이, 아들은 족발덮밥. 우리나라는 쇼핑몰 푸드코트라 하면 가격은 비싸고 맛은 그에 못 미치는 경우가 많은데, 태국은 푸드코트 음식이 싸고 맛있었다. 부럽다.
팟타이의 새우를 집어먹고 있는데 어떤 서양인 남성이 본인 음식을 좀 맡아달란다. 맡아달라는 건지 여기다 둬도 되냐는 건지. 어쨌든 음식을 옆테이블에 내려놓고 분주하게 이리저리 다니더니 다시 와서 고맙다며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물었다. 코리아. 너는?
본인은 영국서 왔다고 하면서 "사우스코리아, 낫 노스코리아 하하하."하고 웃었다. 영국식 개그인가 보다. 하하하 나도 따라 웃었다. 내가 영국인과 대화를 하다니. 영어공부 좀 더 열심히 할걸!!!!
식사 후에도 헛구역질을 해대던 아들은 결국 구토를 하고야 말았다. 위장에서 계속 두리안 냄새가 올라온다고 했다. 안쓰러웠다. 그래도 새로운 음식을 도전해 본 것을 칭찬했다. 원래 여행은 그런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