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4
국내여행도 그렇지만 특히 해외여행을 갈 때 더욱 열심히 계획을 짜는 편이다. 플랜 B, C까지 준비하는 경우도 있다. 그게 안심이 되기도 하고 사실 계획을 짜는 시간이 가장 즐겁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현지에서 무엇인가가 틀어져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서 좌절하거나 화를 내지는 않는다. 다만, 당황할 수는 있다.
이번 호텔에서의 조식이 그랬다. 이비스 그룹의 호텔은 전 세계적인 체인이고, 그래도 평타는 친다는 얘기를 믿고 예약한 건데 조식이 너무 엉망이라 아침시간에 예정에 없던 '외식'을 하게 됐다.
그러나 계획성 여행의 색다른 묘미는 또 이런 데에서 슬며시 드러난다. 현지 사정에 의해 계획에 없는 선택을 하게 되었는데 의외의 럭키를 만나는 경험!
어제 갔던 그 로컬식당에 또 갔다. 이번엔 안 까먹고 달걀프라이 추가! 그리고 (한국에선 왜 비싼지 도통 모르겠는) 스프링롤도 시켜서 든든하고 만족스러운 아침식사를 마쳤다. 고급 레스토랑에 가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동네식당에서 현지식으로 맛있게 한 끼 먹으면 이 여행이 무척 성공적인 것 같은 뿌듯한 마음이 밀려온다.
플랜 A 시간표보다 늦게 출발하게 된 오늘의 일정은 농눅빌리지에서 오전시간을 보내고 점심식사도 한 뒤, 짐을 챙겨서 두 번째 호텔로 이동 후 호캉스를 보내는 거다.
농눅빌리지는 태국 여행자카페에서 '가장 좋았던 관광지'로 종종 꼽히는 곳이라 기대가 컸다. 동남아 최대 규모의 식물원인데, 테마별로 정원과 식생을 잘 꾸며놓아 사진 찍기에 좋고 체험과 공연 프로그램도 있어 아이들도 좋아한다고 들었다.
아이는 입구의 도마뱀 조형물이 마음에 들었는지 포즈를 따라 한다.
규모가 크다는 게 장점이기도 하지만 오히려 단점이 될 수도 있는 법. 날씨가 너무 더웠다. 이 더위에 그늘이 별로 없는 식물원을 걸어서 다 둘러볼 수는 없는 일이라 우리는 관람차를 타기로 했다.
정해진 위치에서 관람차를 타고 가다 정류소 같은데 멈추면 내려서 한 바퀴 돌고 다시 차를 타는 방식이었다.
큰 기대를 갖고 몇 번 타고 내리고를 해보았다.
그런데... 잘 꾸며놓긴 했는데... 우리는 구경엔 그다지 취미가 없는 것 같다. 음, 예쁘네~ 와, 멋있다~를 몇 번 하고 나니 점점 흥미가 떨어졌다. 테마가 다르다고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비슷한 포맷이 반복되기 때문인 것 같았다.
코끼리도 어제 많이 봐서 그다지...
커다랗게 잘 만들어둔 조형물을 봐도 그다지...
아들은 공룡 이미 졸업해서 이것도 그다지...
입장료가 비싼 편이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최대한 즐겨보고자 아들과 함께 노력했으나, 도무지 흥이 나거나 신기하거나 하는 부분이 없었다. (사진은 잘 나온다.)
게다가 그늘이 적어서 정오가 가까워질수록 찬음료로도 이겨내기 어려운 더위가 몰아쳤다. 결국 절반도 보지 못하고 식당으로 도망치듯 들어갔다.
농눅빌리지는 기대가 컸던 곳인데 우리에겐 별다른 감흥이 없어서 아쉬웠다.
그랩을 타고 숙소로 돌아와서 짐을 갖고 두 번째 호텔로 이동했다.
처음 가보는 5성급 리조트는 어떨까.
택시는 유튜브에서 보고 또 봐서 눈에 익은 로비 앞에 멈췄다. 곧바로 직원이 다가와 인사를 건네고 자연스럽게 트렁크에서 짐을 꺼내주셨다. 이런 서비스에 익숙지 않았지만 짐짓 늘상 있는 일인 양, 살짝 웃으며 "코쿤카~" 한마디를 수줍게 건넸다.
센타라 그랜드 미라지 리조트 파타야. 긴 이름만큼 웅장한 로비는 실내공간이 아님에도 선선한 느낌이 들었다.
체크인을 하러 갔는데, 규모가 큰 리조트라 그런지 설명해 줄 게 많은 듯했다. 1,700밧을 더 내면 업그레이드를 시켜준다고 나를 유혹했으나 이미 5성급인 걸로 충분했기 때문에 거절했다. 영어로 많은 설명을 들어서 피곤했다.
겨우 듣기 평가를 마치고 키를 받아 들고 방으로 올라갔다.
두근두근 기대를 품고 방문을 열었는데, 우리 둘 다 "와~!" 하고 탄성을 질렀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넓고 침대도 큼직했다. 인테리어도 소품도, 눈에 보이는 모든 게 마음에 들었다. 우리는 곧장 발코니로 가 보았다.
리조트 수영장과 멀리 바다가 보이는 탁 트인 뷰가 동남아에 여행 왔다는 것을 실감 나게 해 주었다. 수영장을 보자마자 아들은 얼른 물놀이하러 가자고 조르기 시작했다. 그래그래, 그러려고 여기 왔지.
평소 물놀이를 좋아하는 아들은 물 만난 고기가 되어 헤엄치기 시작했다. 리조트 내 수영장은 총 다섯 군데나 되었다. 우리는 모든 수영장을 다 가보자며 한 군데씩 차례로 몸을 담갔다.
미끄럼틀도 있고 유수풀도 있어 마치 워터파크 같은 수영장이었다. 야외임에도 물이 깨끗한 편이었고 널찍해서인지 더욱 여유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물론 한국인은 매우 많았다.
한국에선 돈 아끼느라 이용하지 않았던 선베드도 여기에선 무료로 이용할 수 있어서 좋았다. 처음으로 선베드에서 피자도 시켜 먹어보고. 해가 질 때까지 놀았다.
남편 생각이 저절로 나는 시간이었다. 같이 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이가 저렇게 즐거워하는 걸 남편도 봤어야 하는데!!
그렇게 신나게 놀고선 방에 올라와서 뻗어버렸다. 오전 일정은 망쳤지만 오후에라도 즐겁게 놀아서 다행인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