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콕 입성. 물왕도마뱀 공원. 낭만과 매연의 툭툭이

D+6

by 아름자까

태국에 들어온 지 6일째. 운 좋게도 이제까지 모든 일정이 순조로웠다. 행자카페에서 '너어무 덥다'는 얘기를 많이 들어서 걱정했는데 생각보단 버틸만했다. 오후시간엔 쇼핑몰에 가거나 물놀이 중이어서 그랬을지도 모지만.


현지에 와보니 국내에서 검색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투어업체가 있었다. 현지업체는 당연하고 한국인이 운영하는 업체도 많이 눈에 띄었다. 한 번쯤 항공권과 호텔만 정하고 나머지 일정은 도착해서 마음 가는 대로 하는 여행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파워 J인 나에겐 그 자체가 모험 것 같다!




오늘 5성급 리조트를 떠나는 날이라 아쉬운 마음에 조식 후 (더위를 참으며) 리조트 내부를 산책하고, 근처 마트에 가서 간식거리를 샀다. 리조트 내부는 마치 정글 속 아지트라도 되는 것처럼 온갖 종류의 나무와 꽃이 있었는데 정문을 나서니 완전히 딴 세상이 펼쳐졌다.

매연 뿜뿜 오토바이, 특색 없는 회색 시멘트 건물들, 불나는 거 아닌지 걱정스럽게 얽힌 전깃줄이 여기가 도심 한복판이란 걸 알게 해 주었다. 어쩐지 빈부의 격차가 리조트 담장을 경계로 펼쳐지고 있는 것 같았다.




미리 예약해 둔 픽업차량을 타고 방콕으로 이동했다. 파타야에서 방콕은 2시간가량 소요되 고속도로를 타야 한다. 제주는 모든 도로가 시속 80km 이하로 속도제한이 있기 때문에 평소에 그 속도에 익숙해져 있던지라, 픽업차량의 시속이 100km가 넘어가니 발바닥에 땀이 나고 신경이 곤두서면서 심장이 쿵쾅쿵쾅 했다. 또다시 불안이 올라온 것이다. 이젠 비행기뿐만 아니라 차량 탑승도 무서워하게 된 것 같다.


하는 수 없이 유튜브를 틀어서 귀에 폰을 바싹 갖다 대고 말소리를 들으며 거기에 집중해 보려고 노력했으나 큰 효과는 없었다. 정신과에서 받은 '세로토닌 재흡수억제제'가 절실히 필요한 순간이었다.





안전벨트를 부여잡은 손이 땀에 절어 축축해질 때쯤 도착한 호텔 이비스 스타일스 방콕 실롬. 렇다. 또 이비스다.

이번엔 제발 조식이 괜찮길 바라며 체크인을 하고 호텔을 조금 둘러보았다. 중정형 로비엔 치 큰 카페처럼 쉴 공간이 마련되어 있고 나름 세련된 분위기가 있었다.


5성급에서 지내다가 3성급으로 넘어온 거라 간극이 너무 크게 다가오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방 크기는 반토막이지만 청결도나 직원 친절도는 큰 차이가 없는 것 같아서 다행이었다. 그러나 아들은 방에 들어서자마자 "여긴 너무 작아요. 5성급 가요, 엄마."라고 말해 나 웃음를 터트렸다.

아들, 우리 모든 일정에 5성급을 갈 수는 없어. 정해진 예산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했단다.




짐을 대충 풀고 걸어서 10분 거리의 룸피니 공원으로 갔다. 사실 이 공원에 물왕도마뱀이 출몰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일부러 공원 근처로 숙소를 잡은 것었다.


한 시간가량 물왕도마뱀을 찾으며 공원을 걸어 다녔다. 어떨 땐 보이고 어떨 땐 안 보인다고 해서 못 보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15마리 정도는 본 것 같았다. 호숫가 근처에서 한가롭게 걸어 다니거나 물속에서 수영을 하는 모습이었다.



사진으로 봤던 것보다 더 크고 의외로 성격이 순했다. 지들도 더운지 그늘 좋아하는 것 같았다. 관광객이 다가가도 크게 관심 없다는 듯 끔뻑거리고만 있는 게 근히 귀여워서 한참을 구경했다.


이후 쇼핑몰에 가서 더위를 식힌 뒤, 이른 저녁을 먹고 툭툭이 야경투어 만남의 장소에 가기 위해 MRT를 타러 갔다. (태국엔 지하철인 MRT, 지상철인 BTS가 있다.) 퇴근시간 즈음이라 그런지 아님 원래가 그런지 꽤나 혼잡했다. 그래도 타는 법이 우리나라 지하철과 비슷해서 어렵지는 않았다.

깨끗하고 시원한 MRT를 타보니 태국은 개발도상국이지만 도시 한복판에서는 이미 선진국 풍경을 맛볼 수 있었다.




투어 조인 장소에서 같이 투어 할 일행을 만났는데 이번에도 아들 또래의 여학생이 있었다. '한국업체는 일부러 아이가 있는 팀끼리 붙여주나?' 하는 합리적인 의구심 들었다.


가이드와 일행들과 인사를 나누고, 걸어서 왓아룬이 잘 보이는 뷰포인트로 이동했다. 가이드는 태국인 여성이었는데 한국말을 유창하게 잘하셔서 의사소통에 전혀 문제가 없었다. 태국에선 외국인이 관광 가이드 일을 할 수 없도록 법으로 정해두었다고 한다.


가이드는 왓아룬 가는 길에 에 띄는 여러 사원들과 태국의 불교문화에 대해 설명 주었다. 태국은 종교의 자유가 있는 나라지만 95%가 불교신자이고, 남성은 생에 한 번은 스님이 되어 3개월간 사원에 머무른다고 했다. 일반인도 죽으면 화장한 뒤 사원 내의 납골당에 안치된다는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니 도심에 이렇게 사원이 많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방콕의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짜오프라야강. 그리고 가장 아름다운 사원으로 손꼽히는 '왓아룬'이 한눈에 보이는 뷰포인트에 도착했다. 불 켜진 왓아룬의 모습은 여행책에서 보았던 모습 그대, 빛나게 아름다웠다.


열심히 기념사진을 찍은 뒤 처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툭툭이'를 타러 갔다. 이 투어는 툭툭이라는 바퀴 3개짜리 오토바이 택시를 타고 도심을 돌며, 각종 어려운 이름의 사원과 라마 N세 때 지은 왕궁들을 둘러보는 투어다. 방콕에 입성한 첫날이니 이렇게 한 번 훑으며 돌아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서 예약한 거였다. 멋진 야경도 덤으로!




툭툭이 타는 것은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사방이 오픈되어 있으니 바람도 시원하고 경치를 보기에도 좋았다. 밤에도 더운 방콕 시내를 둘러보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왕궁에 들어가 보지는 못했지만, 멋지게 조명이 켜진 왕궁을 둘러보며 가이드의 설명을 듣는 것도 흥미로웠다.


200년 넘게 이어진 태국 라마 왕조는 왕이 즉위할 때마다 기존 왕궁을 손보거나 새 전각과 사원을 세워 흔적을 남겼다. 그래서 라마 N세 때 지어진 왕궁과 다리, 동상이 곳곳에 많아, 툭툭이에서 내려 설명을 듣고 사진을 찍는 순서가 계속 이어졌다. 이것이 반복되다 보니 라마 1세부터 10세까지 어느 왕의 건물인지 차츰 헷갈리고 집중력도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태국의 입헌군주제라는 제도에 대해 많이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 아들도 귀를 쫑긋하고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질문도 하는 걸 보니 대견스러웠다.




가이드의 설명 중 또 하나 흥미로웠던 건 태국의 학교와 관공서는 물론, 가정마다 왕의 사진이 걸려 있다는 점이다. 그게 법은 아니지만 없으면 "왜 없어??"하고 의아해하는 분위기라고. 초등학교에서는 왕조와 왕가에 대해 배우고, 왕을 존중하고 존경하는 마음을 가르친다. 물론 입헌군주제이기 때문에 총리는 따로 있으며, 4년마다 투표를 해서 뽑는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우리나라에는 없는 제도라 생소하기도 했지만, 어쨌든 태국인들이 왕과 왕가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조금은 짐작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투어가 어느 정도 무르익어갈 무렵 '끈적 국수'를 파는 유명 맛집에 들렀다. 아들은 원래 국수를 잘 먹지 않지만 투어에 포함된 거라 일단 한 그릇 받았다.


가이드와 일행들이 계속 왜 안 먹냐고 물으니, 아들은 마지못해 국물을 한 숟가락 떠 넣었다. 그런데 뜨거워서 바로 뱉어버렸다.

나와 단둘이 있었다면 "먹기 싫으면 먹지 마."라고 했을 텐데, 주변 분위기에 밀려 불편해하고 곤혹스러워하는 아들의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이럴 때 엄마가 나서서 도와주는 게 맞을까, 아니면 스스로 헤쳐 나가게 두는 게 맞을까. 아이와 함께하는 순간마다 이런 갈등과 고민이 불쑥불쑥 찾아온다.




끈적 국수는 마치 찹쌀로 반죽한 것처럼 면발이 쫀득하고 돼지고기 국물에 두부, 새우볼 등의 고명이 올라가 있었다. 후추맛이 매우 강하게 느껴져서 한국인들이 좋아할 칼칼한 맛이었다. 그러나 저녁을 이미 먹은 상태라 그다지 배가 고프지 않아서 절반정도만 먹고 일어났다.




마지막코스로 들른 곳은 콕 시청.

2시간 넘게 투어가 진행되다 보니 슬슬 머리카락이 땀에 절어 떡지기 시작하고 가이드도 한국어 발음이 부정확해지고 있는 중이었다. 이렇게 오래 다른 다라 말로 설명하고 대화하려면 집중력이 깨질 만도 할 것 같았다


방콕 시청 앞 조형물에는 방콕의 풀네임 68자가 쓰여 있었고 가이드가 본토 발음으로 읽어주었는데 정말 끝없이 길었다. 태국인이라면 학교에서 방콕의 풀네임에 대해 배우고 다들 그걸 외우고 있다고 했다. 국인은 그 이름을 다 읽지도 못하고 끄룽텝, 즉 방콕이라고 부르지만 말이다.


이 긴 이름이 어떤 의미인지 궁금해 챗 GRT를 활용해 일행들과 함께 읽어보았다. 그 뜻은 '천사의 도시, 위대한 도시, 불멸의 보석의 도시, 아유타야의 견고한 요새, 세계에서 비교할 수 없는 위대한 영역, 신들이 거주하는 도시...(중략)'였다.

수도의 이름을 왜 이렇게 길게 지었을까. 빈번한 외세의 침략과 전쟁에 맞서 지켜낸 이 도시가 소중하고 자랑스러워서 온갖 좋은 뜻은 다 붙인 게 아닐까 추측해 본다.




투어는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9시가 다 된 시각.

아들이 툭툭이를 더 타고 싶다고 해서 투어를 마친 후에도 그 툭툭이를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그런데 왕궁과 사원 근처에서는 차가 그리 많지 않아 괜찮았는데, 숙소가 위치한 방콕 한가운데로 들어갈수록 매연이 심해져 갔다. 특히 신호대기로 멈춰 있을 때는 마스크를 뚫고 들어오는 매연에 크흠, 크흠 몇 번이나 헛기침을 해야 했다. 툭툭이는 색다른 경험이긴 했지만 한 번으로 족할 것 같다.


호텔로 돌아와서는 오늘도 역시 쓰러지듯 잠이 들었다.

keyword
이전 06화진리의 성전에서 찾은 것은. 호캉스 2. 룸서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