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7
탱크 빼고 다 판다는 유명한 태국 시장이 있다고 한다. 이름은 짜뚜짝 시장. 워낙 넓어서 하루 반나절을 돌아도 다 못 볼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꼭 한 번 가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짜뚜짝 시장은 토, 일 주말에만 열리는 시장이라 방콕 일정과 요일이 맞지 않아 아쉽지만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
그런대로 아쉬움을 달래보고자 짜뚜짝 시장 근처에 믹스짜뚜짝이라는 쇼핑몰로 향했다. 아들램은 원래부터 야시장 같은델 구경 가는 걸 좋아하는데, 특히 이번엔 피규어 쇼핑에 기대가 컸다.
지하철을 타고 가면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아서 그랩을 불렀다. 뒷좌석에 앉아 안전벨트를 하려고 하니 벨트를 채우는 버클이 없었다. 당황하여 얼른 파파고를 켜서 기사님께 안전벨트가 없다고 하니 "아 그거 필요 없어~" 라며 쿨하게 손짓을 했다. 불안했지만 차에 이미 탔고 출발도 했으니 도로 내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고속도로에 들어서자 속력은 130을 넘어가기 시작했고 (고속도로로 갈 줄 몰랐다...) 끔찍하게도 기사님이 어마어마한 칼치기를 선보이기 시작했다. 안전벨트도 안 맸는데 이러다가 사고 나면 살아남기 힘들겠구나 라는 생각에 비행공포증과 비슷한 증상이 시작되는 게 느껴졌다.
그렇게 40분을 달려 건물 앞에 내리니 등짝이 땀에 젖어 흥건했다. 아무 사고 없이 무사히 내린 건 다행이었는데, 눈앞의 건물을 보고 조금 당황했다. 꽤나 규모가 있다고 알고 있었던 믹스짜뚜짝은 서울의 웬만한 대형마트보다 작은 것 같았다.
실망한 마음으로 건물에 들어섰는데 밖에서 본 것보다 더 음침했다. 손님도 많고 북적거리고 물건도 많은 곳을 기대했으나 실제 분위기는 거의 터미널 지하상가 같은 느낌이었다.
이 건물이 아닌가 싶어 다시 밖으로 나와 확인하기까지 했는데, 간판에 영어로 'Mixt Chatuchak'이라고 써 있었다. 여기 맞는데... 뭔가 잘못 알아도 단단히 잘못 알고 온 모양이다.
다행히 그래도 아들램이 기대했던 피규어샵은 건재한 것 같았다. 가격이 그다지 저렴하다고 할 순 없었지만 다양한 캐릭터 피규어를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 외엔 소소한 기념품샵들이 이어졌는데 딱히 엄청 재미있거나 볼거리가 있진 않았다. 내가 사고 싶었던 꼬임 커트러리나 나무 식기류, 코코넛 그릇 같은 건 살 수 없어서 아쉬웠지만, 여기까지 온 게 아깝기도 하고 오늘 일정이 이거 하나뿐이기도 해서 꾸역꾸역 쇼핑몰을 돌아다녔다.
아들램이 피규어와 인형, 짝퉁 레고 등을 사고, 나도 티셔츠 한 벌이랑 동전지갑 등 자질구레한 것들을 사며 돌아다보니 슬슬 지쳐갔다.
- 쇼핑만 했는데 왜 이렇게 힘들지?
그 말을 들은 아들이 쓰러지듯 깔깔 웃었다.
나도 따라 웃으며 물었다.
- 왜, 뭐가 그렇게 웃겨?
- 엄마가 너무 당연한 얘기를 해서요. 쇼핑은 원래 힘든 건데!
- 왜?? 짐이 점점 많아져서인가?
-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원래 힘든거에요.
...그렇다고 한다.
믹스짜뚜짝 안의 푸드코트에서 점심을 먹고 호텔로 돌아가기로 했다. 태국의 푸드코트는 가격도 저렴하고 비교적 깔끔한 편이어서 보일 때마다 자주 이용했는데, 덕분에 경비를 아끼는 데 톡톡히 도움을 주었다.
돌아오는 길엔 결국 시간이 두 배로 걸리는 지하철을 타기로 했다. 도저히 그랩을 또 탈 자신이 없었다.
믹스짜뚜짝에서 지하철역까지는 걸어서 700미터. 그러나 도보 폭이 좁고 유동인구가 많아서 아들과 둘이서 10분 이상 걸어야 했다. 쇼핑을 마친 후 대중교통을 이용하려고 걸으니 생각보다 피로감이 가중되는 것 같았다.
지금 머물고 있는 숙소인 '이비스 스타일스 방콕 씰롬'은 지하철역에서 가깝다. MRT 실롬역과 BTS 살라댕역, 두 개의 역이 도보거리에 있는 '더블역세권'이다. 지하철을 이용하기 위해 역에서 호텔까지 몇 번 왕복하다 보니 길에서 많은 노점을 만날 수 있었다.
판매하는 품목도 다양했는데 복권, 잘 깎은 과일, 사원에 바치는 용도의 작은 리스(꽃으로 만든 화관), 각종 음료와 간식거리, 껌과 볼펜 등이었다. 그중엔 그래도 가판이 그럴싸해 보이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그냥 판때기에 펼쳐놓고 파는 수준이었다.
관광객과 현지인이 섞여 유동인구가 많은 곳이라 지나다니는 사람은 많아도 그 물품에 관심을 갖는 이는 그다지 많지 않아 보였다. 장사가 잘 되는 것 같지 않아 보이는데... 저분들은 저거를 팔아서 생계를 유지하시는 걸까 생각 중이었는데 마침 아들도 그게 의아했나 보다.
- 엄마, 태국사람들은 길거리에서 뭘 많이 파네요?
- 어어 그런 것 같애. 노점상이 많네.
- 그런데 잘 안 팔리는 것 같아요. 그래서 조금 불쌍해 보여요.
음. 이걸 뭐라고 얘기해줘야 할까. 아들이 느끼는 건 측은지심이나 염려일까. 그런 감정이 나쁜 것이 아니지만 그걸로 인해 섣불리 판단 내리고 사람을 무시하는 마음을 갖는 건 곤란하다.
- 엄마가 책에서 읽었는데, 태국은 불교문화가 깊어서 윤회사상이라는 게 있대. 생이 돌고 돈다는 뜻이야. 죽으면 또 다른 모습으로 태어난다고 믿으니까 이번 생을 주어진 대로 살아가며 그 안에서 행복을 찾으려 한대. 물론 모두가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라고 말했는데... 모르겠다. 노점상도 있었지만 사실 거리엔 구걸하는 사람도, 노숙자도 많았다. 내가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한 치의 의심 없이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라는 가치관을 갖고 있었다면 아이에게 어떤 말을 해줄 수 있었을까.
저녁은 숙소에서 걸어서 13분 거리의 한국인들에게 유명한 식당, 노스이스트에 갔다. 6시 이전에 도착했더니 웨이팅 없이 바로 입장할 수 있었다. 평이 워낙 좋아서 기대를 많이 한 곳이었다.
나는 '뿌팟퐁커리 소프트쉘 크랩'을 시켰고 아들은 '항정살튀김'. 한국의 태국음식점에서 이미 접해본 요리라 자신감을 갖고 시켰는데 본토의 향신료가 킥으로 가미되어서 그런지 맛있게 먹었다.
소프트쉘 크랩이기 때문에 요리할 때도 껍질까지 통째로 요리하고 먹을 때도 껍질까지 아그작 (안 딱딱하다) 씹어 먹으면 된다.
잘 튀겨진 게 1/4마리를 한 입에 와앙 넣은 뒤, 커리와 흰밥을 조금 떠서 입에 넣고 씹다가 커리에 파묻힌 양파를 찾아서 입에 넣어주면! 아삭하게 마무리되는 완벽한 한 입이 완성된다. 이 과정을 예닐곱 번쯤 반복해 주었더니 슬슬 배가 불러왔다. 절반도 못 먹었는데! 이거 2인분이었나 보다. 아까워서 배가 터지도록 먹고도 집에 싸가고 싶을 정도의 맛집이었다.
내일은 체력을 요하는 투어를 예약해 두었기 때문에 이만 숙소로 돌아가 쉬기로 했다. 호텔로 걸어가는 길은 웬 서울 도심 한복판 같은 광경이었다. 차량과 매연이 얽힌 도심.
내일도 고속고로를 타고 가야 하기 때문에 비행공포증약을 미리 먹어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새벽에 깼는데 다시 자려니 잠이 잘 오지 않았다. 속도 불편한 것 같고... 배를 살살 쓸어주며 생각해 보니, 팟타이도 조금 지겹고 뿌팟퐁커리도 맛있긴 했지만 뭔가 2% 부족한 이 느낌은... 한식이 먹고 싶은 것인가.
그러나 방콕에서 한식을 먹기엔 가격이 너무 비쌌다. 최소 5만 원 이상 잡아야 하기 때문에 고민이 되었다. 삼겹살에 미역국과 계란찜을 시켜주면 아들이 좋아하며 든든하게 먹을 것 같긴 한데.
그러다 문득, 자다가 깨서 이런 걸 고민하는 내가 웃겨서 쿡쿡거리며 다시 잠을 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