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9
어제는 야외를 돌아다니느라 덥고 힘들었으니 오늘은 좀 식힐 겸 시원한 몰에서 보내기로 했다.
물론 한국에서부터 다 짜 온 일정이다. 관광과 쇼핑과 체험을 적절히 섞어 지루하지 않고 리듬 있게 보내기 위해서 오랜 기간 계획하며 머리를 많이 굴렸다.
미리 예약해야 티켓값이 저렴한 경우도 있고, 좋은 일정인데 예약이 안 되어 있어서 참여할 수 없으면 하루 종일 아쉬워하는 타입이기 때문.
그래서 오늘은 동남아 최대규모라는 씨라이프 수족관에 가는 것 외엔 별다른 일정은 없다.
호텔을 옮기는 날이라 체크아웃을 먼저 하고 로비에 캐리어를 맡긴 뒤 호텔에서 나와 10분 정도를 걸어 지상철인 BTS를 타러 갔다.
우리나라와 달리 지상철이 2층과 3층, 두 개 층에 걸쳐 지나다니고 역 주변엔 높은 건물들과 큰 광고판이 많아 서울보다 발전한 미래도시 같아 보였다.
실제로 그런가? 객관적인 근거를 찾아보지 않아 그건 잘 모르겠지만 길에서 본 홈리스들을 생각하니 이 도시도 빈부격차는 서울과 비슷한 듯싶었다.
둘 다 원래 동물을 좋아하는터라 여행 중에 동물원이나 수족관에 들르는 경우가 많다. 일본여행에선 수족관 속 개복치를 보는 게 특별한 경험이었는데 방콕의 씨라이프엔 어떤 특별한 생물이 있을지 기대가 되었다.
(아들은 왜 종종 저런 포즈로 사진을 찍는 걸까.)
블루탱이나 가든일, 도롱뇽처럼 흔히 볼 수 있는 생물들
그리고 가시가 엄청나게 긴 성게와 가시관불가사리(옥토넛에 나온다), 독화살개구리 등이 눈에 띄었다.
그중에서도 아들이 가장 좋아했던 건 역시 수족관의 꽃, 톱니상어였다.
바닥이 유리로 된 공간에 들어가면 아래쪽으로 대형 메인 수조가 보이는데, 유튜브에서만 봤던 톱니상어가 지나다니고 있었다.
아이는 한참이나 바닥에 엎드려 상어들을 구경했다.
씨라이프 구경을 마치니 늦은 점심시간이 되어 미리 봐두었던 딸링쁠링이라는 식당에 갔다.
한국의 김밥천국이라고 불리는 프랜차이즈 식당인데 메뉴 대부분이 평타는 친다는 후기를 보고 들러본 곳이다.
자리에 앉아 메뉴판을 받아 펼쳐보니 가짓수가 엄청 많았다. 어림잡아 오십 가지는 되는 것 같았다.
이 많은 걸 어떻게 다 재고관리를 할까
별 걱정을 다하며 블로그 후기에서 꼽아준 '베스트 메뉴 3'을 주문했다. 음식으로 모험하는 걸 즐기지 않는 편이라 가능하면 남들이 많이 추천하는 보통의 메뉴를 주문한다.
그러고 보니 딸링쁠링뿐만 아니라 태국의 여느 식당을 가도 늘 메뉴의 가짓수가 많았던 것 같다. 최소 20~30가지는 되는 듯한데...
왜 이렇게 메뉴가 많은지 궁금해 챗GPT에게 물어보니 국물이나 면 등의 기본베이스를 두고 추가되는 재료들에 따라 메뉴가 결정되는 구조라서 그렇단다.
또한 날씨가 덥고 가정에서 조리 환경이 잘 갖춰지지 않아 집밥보다는 외식을 많이 하는 문화이기 때문에 다양한 메뉴가 발달하게 되었다고.
궁금증을 푸는 동안 메뉴가 나왔다. 대형쇼핑몰 입점업체치고는 가격이 비싸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플레이팅에도 신경 쓴 것 같아 더욱 마음에 들었다.
아들은 돼지고기찹쌀밥을 시켜주었다. 큐브 형태로 잘린 돼지고기에 단짠양념을 해 굽고 판단잎으로 감싼 찹쌀밥을 함께 먹는 메뉴다. 같이 곁들여 나온 소스가 약간 매운데 그게 밥에 묻어버려서 밥이 맴다고 찡찡거려서 곤혹스러웠다.
나는 공심채볶음과 판단잎치킨을 시켰다. 닭고기를 향긋한 판단잎으로 감싸 쪄내는 요리인데 맛은 잘 기억나지 않는 걸 보니 그렇게 특색 있진 않았던 것 같다.
식사를 마치고 쇼핑몰을 둘러보았지만 딱히 살 게 없으니 슬슬 쇼핑몰 구경이 지겨워졌다. 아이도 그다지 흥미 없이 흐느적거리며 따라다닐 뿐이었다. 남은 일정 중 (아무리 시원해도) 대형쇼핑몰은 과감하게 빼기로 결정.
태국여행 중 네 번째 호텔인 보소텔에 체크인했다.
로비도 그렇고 객실도 그렇고 인테리어는 세련되지 않았지만 청결은 그런대로 괜찮았다. 바트 환율이 계속 올라 4성급에서 3성급으로 옮긴 바로 그 호텔이다.
후기가 많지 않아 걱정했는데 3박 4일 머무르는 동안 벌레도 없었고 무엇보다 객실이 매우 넓어서 아이와 편하게 지냈다.
가장 좋았던 건 우리 객실이 풀 액세스 룸이었다는 거다. 이런 객실에서 묵어본 적이 없고 내가 예악 한 형태가 아니라 처음엔 좀 어리둥절했는데, 베드에 누워서 바라보는 수영장뷰가 꽤 마음에 들었다. 수영장 규모가 크진 않았지만 이용객이 많지 않아 거의 우리 전용이었다.
물론 아이는 더 좋아했다! 3박을 하는 내내 일정 마치고 호텔로 돌아오면 몇 시가 됐든 바로 래시가드를 갈아입고 수영장으로 돌진하는 걸 보고 '풀 액세스 룸이란 거... 좋은 거구나.'라고 알아버렸다. 다음번 여행에서도 경비예산 조절을 잘해서 몇 박은 풀 액세스 룸을 예약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