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8
늘 조인투어만 이용하다가 이번에는 처음으로 단독투어를 예약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잘한 선택이었다.
오늘 일정은 담넌사두억 수상시장과 매끌렁 기찻길. 방콕 근교 관광지 투어 상품은 조합도 다양하고, 집합 시간과 장소도 제각각이라 선택이 쉽지 않았다. 마치 채널이 너무 많아 뭘 봐야 할지 모르는 케이블 TV처럼 말이다.
결국 수많은 조인투어 상품을 포기하고 우리 일정에 맞춰주는 단독투어를 결제했다. 조인투어는 대부분 이른 아침에 출발해야 하는데, 아침 식사 후 아이를 챙겨 대중교통으로 집합 장소까지 가는 일이 만만치 않아 보였다. 그래서 숙소로 픽업·샌딩을 해주는 단독투어를 선택한 것. 다만 비용은 조금 부담스러웠다. 2인 기준 약 16만 원.
시간 맞춰 호텔로 온 픽업기사님은 "어린이가 있으니 안전 운전하겠습니다."라고 하시더니 고속도로에 들어서자 태도가 돌변하였다. 칼치기는 기본이고 깜빡이 없이 차선 변경, 차선 두 개 물고 주행하기, 안전거리 미확보 등 거의 이건 방구차게임하는 줄 알았다.
다행히 전날 비행공포증약을 먹어두어서 공황증상은 막을 수 있었는데, 오늘도 안전벨트를 쥔 손엔 땀이 났다. 가만 보니 큰 트럭을 제외한 다른 차들도 다들 그렇게 운전하고 있었다. 태국의 흔한 운전 문화인 것인가.
그렇게 한 시간 반을 달려 먼저 담넌사두억 수상시장에 도착했다. 배를 타고 강을 따라 형성된 상점을 둘러보고, 배 위에 차려진 상점에서 기념품이나 간단한 음식을 사 먹어보는 코스다. 흔히 방콕여행 사진에서 많이 보이던 그 수상시장 맞다.
오전에 일찍 도착한 편이었지만 역시나 전 세계에서 모인 관광객으로 붐비는 곳이었다. 배에서 뿜어져 나오는 매연이 심하다는 얘기를 듣고, 우리는 얼른 챙겨 온 마스크를 썼다. 우리를 데려다준 기사님은 배 타는 곳까지 간단히 안내만 해주고 같이 타지는 않았다.
'강물이 더럽다, 호객행위가 심하고 살 것도 없다, 바가지다' 이런 안 좋은 후기를 많이 읽어서 걱정이 많았던 이번 코스는 다행히(?) 정말 그랬다.
관광객을 위한 기념품샵이 대부분이었고, 간혹 배 위에서 과일이나 음식을 만들어 파는 곳도 있었는데 이 역시 현지인들이 타깃은 아닌 것 같았다. 한마디로 수상시장 자체가 그저 관광상품이었다. 호객행위는 부담스러울 정도였고 배 타는 시간도 짧게 느껴졌다.
이럴 걸 충분히 예상하고도 여기까지 온 이유는, 아이에게 한국엔 없는 새로운 걸 보여주고 싶어서였다. 비록 현재는 이렇게나 상품화되어 버렸지만, 원래 수상시장이라는 게 왜 생겨나게 된 건지, 왜 옛사람들이 강줄기를 따라서 문화를 형성했는지 같은 이야기를 직접 보면서 나누고 싶었다.
실망스러운 부분도 있었지만 그래도 사진에서 본 것처럼 수많은 배들이 강 위에 뒤엉켜 물건을 사고파는 모습은 한 번쯤 볼만한 특색 있는 경험이었다.
수상시장 구경을 마친 후 아까 그 기사님과 약속장소에서 만나 매끌렁 기찻길로 향했다. 일명 '위험한 기찻길'로 불리는 이곳은 하루 세 번, 기차가 지나가는 시간에 맞춰 기찻길 위에 형성된 시장의 가판을 잽싸게 치우는 신기한 광경으로 유명하다.
어쩌다가 위험하게 기찻길 선로 바로 옆에 시장이 들어섰는지가 궁금해 찾아보니, 원래 시장이 먼저 자리 잡고 있었고, 이후 철도가 놓이면서 상인들이 기차 시간에 맞춰 가판과 차양을 접는 방식으로 적응해 오늘날의 독특한 풍경이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시장에 도착해서 보니 정말 기찻길 선로 바로 옆에 상점이 줄지어 있었다. 가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손님들 덥지 않게 차양까지 쳐두셨는데, 기차가 들어올 때마다 매번 이걸 접었다 폈다 한다고? 대체 어떤 광경이 펼쳐질지 기대감이 한껏 부풀었다.
20분 정도 시장을 돌아다니며 구경을 하니 어디선가 경적소리가 울렸다. 그러자 상인들이 느릿느릿 가게 안에서 걸어 나와 바닥에 펼쳐둔 것들을 한쪽으로 치우기 시작했다. 좀 무게가 있는 것들은 바퀴가 달려있기도 했는데, 그런 건 그냥 가게 안 쪽으로 슥 밀었다. 그리고는 조급함이라고는 찾아볼 새 없이, 여유만만하게 차양을 걷어 올렸다.
그러는 와중에도 저 멀리서 경적소리가 간간이 울렸고, 마치 홍해가 갈라지듯 관광객들은 선로 양 옆으로 흩어졌다. 기차가 오면 위험할 텐데 하며 '빨리빨리'를 속으로 외치는 건 나뿐인 것 같았다.
아이의 손을 꼭 붙잡고 행여 다칠세라 최대한 선로에서 떨어져 저 멀리 들어오는 기차를 보니, 사람들이 왜 그렇게 여유를 부렸는지 알 것 같았다.
기차는 초등아들이 걷는 속도보다도 느린 것 같았다. 갓 면허를 딴 초보운전자가 주차할 때처럼 느릿느릿 조심스럽게 지나가는 기차가 어찌나 가까이에서 지나가는지, 손을 뻗으면 안에 탄 사람과 악수를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이 지역에서만 할 수 있는 신기한 경험이었다.
그렇게 (오늘도 역시나) 오전 중으로 투어를 마치고 아이가 좋아하는 일식으로 점심을 먹은 뒤, 오후시간은 호텔 루프탑 수영장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이비스 스타일스 방콕 실롬 호텔의 루프탑은 도심 속 공간이지만 아늑하고 프라이빗한 분위기를 풍겼다.
미끄럼틀도 유수풀도 없는 사각형 수영장 안에서 아이는 튜브 하나만 가지고도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태국에 와서 계속 같은 래시가드를 입고 놀았더니 나중엔 손목과 발목에 경계선이 생겨버렸다. 발은 양말 같고 손은 장갑 같아서 그것 좀 벗으라고 서로 놀렸다.
태국에 와서 달달하고 시원하고 향긋한 차이밀크티에 빠져 매일 한 잔 이상 마시게 되었다. 특히 차트라뮤라는 브랜드를 좋아하게 되어 눈에 보일 때마다 사서 마셨다. 당도를 조절할 수 있는 경우엔 70%로 주문했더니 입에 딱 맞았다. 가격도 50~80밧으로 저렴한 편.
담아주는 일회용 컵이 제법 두께감 있고 예뻐서 다회용으로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아 집에 챙겨가려고 몇 개 씻어뒀다.
또 매일 2만 보 이상 걷고 나선 피곤해서 야식도 안 먹고 일찍 잠들었더니 특별히 다이어트를 하지 않았는데 일주일 만에 뒷구리살이 사라지는 일이 발생했다. 가지고 간 옷과 수영복이 입기 편할 정도로 약간 낙낙해진 게 느껴져서 은근히 기분이 좋았다.
저녁은 큰맘 먹고 어젯밤 자다 깨서 입맛만 다셨던 한식을 먹으러 갔다. 항정살구이, 미역국, 계란찜을 시켰다. 밑반찬으로 나온 오이무침과 땅콩조림, 파파야무침 등에 고기를 구워서 밥 한 그릇을 뚝딱 먹으니 '역시 한국인은 한식을 먹어줘야 해.'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저녁식사 후 호텔로 돌아와 아이는 침대에 엎드려 책을 보고 나는 빨래를 시작했다. 일정을 마치고 돌아와 피곤한 몸으로 매일 나오는 2인분 빨래와 수영복까지 세탁하려니 이게 만만치가 않았다. 다음 여행 때는 아들 본인 빨래는 본인이 하게끔 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난 1인분 빨래만 하면 될 테니까 후후후.
오늘 일정은 이것으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