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리오버 쿠킹(Carryover Cooking)

[팀 레터] 25년 12월호

by 한형규

안녕하세요 여러분, 어느덧 벌써 마지막 팀 레터네요.

시간이 정말 빠른데 팀 레터에 대한 개인적인 소회는 말미에 적어볼게요.


최근 넷플릭스 흑백요리사 시즌 2가 정말 인기인데, 여러분들은 요리를 좋아하시나요?

(저는 요리된 음식을 좋아하는데..)


고기를 구울 때나 라면을 끓일 때 한 번쯤은 이런 경험이 있으실 것 같아요.


'지금 약간 덜 익은 것 같지만, 지금 불을 끄면 어차피 뜨거우니까 먹을 때 딱 먹기 좋게 익겠는데?'


여러번의 요리(저의 경우 조리..) 경험에서 체득한 자잘한 실생활 팁인 것 같은데, 실제 수준 높은 요리사들은 이런 방법을 '캐리오버 쿠킹' 이라고 하여 주로 스테이크를 구울 때 많이 활용한다고 합니다.


'캐리오버 쿠킹(Carryover Cooking): 음식이 열원에서 분리된 후에도 자체 열로 인해 내부 온도가 계속 상승하거나 유지되는 현상'

즉, 요리의 완벽한 맛과 익힘을 위해 언제 불에서 떼거나 꺼야 하는지를 설명하는 용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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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먹고 싶어서 올린 사진


잘 익은 고기랑 꼬돌꼬돌한 라면을 먹고자 했던 것일 뿐인데...실제로 이런 용어와 활용법이 있다니 신기하네요 ㅎㅎ


스테이크를 레스팅(불판에서 떼어내어 상온에 두는 짧은 시간)하는 동안 캐리오버 효과로 인해 목표 온도에 도달하지 않았더라도 고기 내부는 온도가 상승하여 육즙이 퍼지고 익힘 정도가 유지된다고 합니다.

결국은 원하는 맛과 익힘 정도를 만들기 위해 적당한 때에 가열을 멈추어야 하는 것인데,


올해 저는 팀을 이끌면서 텐션 조절의 적당한 때와 가열을 잘 하였는지 돌아보게 되네요.

내가 원하는 팀의 성과와 분위기가 무엇이었을지에 대한 깊은 고민 없이 시작했다보니 그에 맞는 요리법이 있을리 만무했던 것 같고, 그로 인해 여러분들이 헷갈리고 힘들었을 수 있었을 것 같아요.


때로는 하나에 매몰되어 가열만 하던 적도 있었고, 정작 중요한 요리에는 신경쓰지 못했던 지점들도 있었던 것 같아요.

지금와서는 알 턱은 없지만 불을 조금 일찍 끄거나 늦게 꺼서 맛 자체가 뒤바뀐 경우도 있었겠습니다.


여러분들은 개인적으로 적당한 타이밍과 불의 온도를 잘 조절하고 있으신가요?


[불의 온도]

흑백요리사를 보다보면 요리를 일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즐겁게 하는 분들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올해는 모든 것에 상당한 고온으로 가열을 했던 해였습니다. 우리가 담당하던 사업의 난이도 자체가 높아 그런 경우도 있지만, 우리가 자체적으로 고온으로 가열했던 사업들도 있었습니다.

사업의 연속 수주, 운영사 평가 1등이라는 성과를 달성하였지만 그 요리를 하면서 우리가 정말 즐거웠는지, 단순히 맛만 좋았던 것은 아니었는지 무얼 위해 요리했는지 다시 생각해보고 있습니다.


[적당한 타이밍]

올해가 끝나는 지금에서도 팀을 운영함에 있어서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팀쉽이라는 것에 변동은 없는 것 같아요.

그럼 그 중요함을 알면서도 팀쉽을 만들고 유지하는 것에 내가 충실했는가? 를 돌이켜보면 어느 순간에는 '안정적이고 성과를 내는 사업 운영이 팀쉽을 해치는 일이 없을거야' 라는 생각이 더 우선이었던 것 같아요.


팀쉽에 필요한 재료는 여러가지 였던 것 같아요. 팀원들과 미션과 일정을 점검하는 주간 미팅, 정기적인 원온원, 적시적소의 회고였는데

이 3가지 재료의 공통점은 적시성이라는 시간의 개념이 들어가 있다는 것인데, 타이밍을 제가 잘 못 잡았던 것 같아요.

여러분들의 요청 덕에 그나마 얼렁뚱땅 해나갈 수 있었습니다.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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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요리사에 이런 명언이 있더라구요.


'요리는 삶의 축소판이다'


적어도 우리는 인스턴트 음식을 요리하지 않았습니다.


맛은 없을지언정, 정성이 없지 않았고

조금 덜 익거나 더 익었더라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선택했고

모두를 만족시키지 못했을지언정, 식탁에 요리를 올릴 수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의도치 않은 요리란 맛이나 향, 플레이팅이 아니라

어떤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졌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직접 울고 웃으며 겪은 시행착오였던 것 같아요.

(23년 회사의 캐치프레이즈인 '의도치 않은 요리'라는 키워드를 올해 여러번 해석하게 되네요 ㅎ)


25년이 끝나고 26년에 모두 새로운 역할이 기대되는 시점에서 우리는 손님에게 제공했던 식탁 위가 아니라 불판 아래를 체크해야하고

내년에는 내가 소화할 수 있는 메뉴의 가짓수를 늘리고 향상된 요리 스킬을 기대해봅니다.


내년에 저는 여러분들께는 5점 리뷰 남기러 찾아가겠습니다 ㅋㅋ(리뷰 서비스를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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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레터에 대한 짧은 소회와 안녕]


1월의 첫 레터에서 적었던 것처럼 팀 레터를 작성하는 시간은 사업에 매몰되기 바빴던 저에게 한 달에 한 번 있는 방파제 같았던 시간이었고,

지나간 일에 대해 미련과 후회 없이 회고도 잘 하지 않는 저에게 스스로를 돌이켜보게하는 장치이기도 했습니다.


여러분들보다 조금 일찍 경험했다는 그 한 가지 이유만으로도

전달드렸던 저만의 고민과 반성이 앞으로의 여러분들에게 큰 도움이 되길 바라며,


그동안 쭉 적어왔던 팀 레터의 찐 제목(?)들과 목록들, 연재하고 있는 브런치 링크를 공유해봅니다.

내년에는 팀 레터의 진정성을 위해 새로운 팀원들께만 전해보겠습니다!


저의 부족한 시도에 대해 애정을 가지고 봐주시고, 때로는 기대도 해주신 여러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드려요.


1개월 차, 팀원을 만나고 팀쉽을 꾸려나갈 때 "누구나 자신만의 바둑이 있다"


2개월 차, 팀장으로 첫 실수를 마주할 때 "드라마 등장인물의 지능은 작가의 지능을 넘을 수 없다"


3개월 차, 자꾸 내 의도대로 되지 않을 때 "성수역 에스컬레이터가 자주 고장나는 이유"


4개월 차, 팀장의 역할과 정의에 대해 고민할 때 "지우개 달린 연필"


5개월 차, 팀장의 역할과 정의를 만들어갈 때 "홈런과 안타를 맞아야 좋은 투수"


6개월 차, 팀이 외부요인으로 흔들릴 때 "맥거핀"


7개월 차, 팀으로 일한다는 걸 체감할 때 "대기업 임원들은 같은 날, 같은 비행기를 타지 않습니다"


8개월 차, 쓰기 싫은 가면을 써야할 때 "변검: 얼굴에 쓴 가면을 바꾸는 사람들"


9개월 차, 지쳐가는 시기, 합리화에 빠질 때 "저 포도는 분명 실 거야"


10개월 차, 팀장이 모든 걸 보고 다 할 수 없다고 여실히 느낄 때 "무영등(無影燈): 수술실의 그림자"


11개월 차, 팀원들에 대한 평가의 시기가 왔을 때 "운전은 가족에게 배우는 거 아니야"


12개월 차, 팀이 끝날 때 "캐리오버 쿠킹(Carryover Cooking)"


'1년차 팀장이 팀원에게 주는 편지' 브런치 주소에요!


찐 제목 속에 녹여낸 저의 시행착오들을 겪으며 헷갈림의 연속이었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팀을 만들고 유지해준 건 제가 아니라 여러분들이었습니다.


(연휴 기간에 진지하다가 만나서 또 웃으며 인사할 거 생각하니 어색하네요 ㅋㅋ)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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