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베란다가 화사합니다.
이른 봄, 옷깃을 여미며 화분에 물을 주던 날들이 언제였나 싶은데
어느새 꽃들이 얼굴을 내밀었습니다.
형형색색의 작은 꽃잎들이 서로를 밀치듯 피어나는 걸 보고 있자니
문득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초록이들도 예쁘지만, 역시 꽃은 참 예쁩니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 걸까요?
예전에는 그저 '관상용'이라 부르며 지나치던 식물들이
이제는 매일 아침 인사를 건네고, 상태를 살피고, 기분을 느끼게 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중에서도 꽃은 참 묘한 힘이 있는 것 같습니다.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은 감정이 들도록 만들어주니까요
미모사라는 식물이 있습니다.
잎을 건드리면 오므라드는 아주 예민한 성질을 가지고 있지요.
과학자들은 이 식물을 대상으로 실험을 했습니다.
위험하지 않은 자극을 반복해서 주었더니
어느 순간 반응하지 않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건 식물이 "이건 해롭지 않다"라고 학습했다는 뜻입니다.
우리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익숙해짐이라는 반응이
식물에게도 가능하다는 사실, 놀랍지 않나요?
물론 사람을 기억한다거나 얼굴을 알아본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 안에서 무언가를 배우고 기억한다는 건,
식물이 단순히 뿌리내리고 광합성만 하는 존재는 아니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매일 물을 주고, 햇볕의 방향을 맞춰주고,
기분 좋게 말을 걸어준 화분은 확실히 다릅니다.
잎이 더 푸르고 탱탱하며, 꽃도 오래 피고 더 풍성하게 피어납니다.
누군가는 당연히 관리를 잘했으니까 그런 거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 정성이 단지 물리적인 효과만은 아니라고 믿습니다.
정성을 들인다는 건, 결국 마음을 건네는 일이라서
식물은 그 마음을, 그 손길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식물은 저를 기억하지 못하고, 제가 이름을 불러주어도, 오늘 하루 어땠냐고 물어도
대답은 없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말을 걸어 봅니다.
하루하루 달라지는 잎의 결, 꽃의 표정, 햇살 속에서 반짝이는 생명을 바라보며 느낍니다.
"이 아이는 오늘도 나와 함께 살아가고 있구나, 그 사실 하나로도 마음이 채워집니다.
살아있는 것과 마음을 나누는 일은 꼭 대화를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무 말 없는 그 존재 앞에서, 오히려 제 마음이 더 많이 열리기도 합니다.
식물이 나를 알아보는지는 여전히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그 아이들을 알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관계 속에서, 작지만 확실한 위로를 얻고 있습니다.
오늘도 조용히, 베란다에 있는 식물들과 눈을 맞춥니다.
꽃은 말이 없지만, 저는 그 꽃으로 하루를 이야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