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런 갈색의 푸석한 털, 짝짝 인듯한 귀, 사람에게 먼저 다가오기보단 뒤로 한 걸음 물러서 있던 소극적인 성격이었습니다. 그 당시 동네에는'복순이', '똘이', '진순', '진돌', '독구(dog)등 이름을 갖은 개들이 많았었는데, 우리 강아지도 동네에 흔한 이름 '메리'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삼 남매였던 우리는 귀여워하며 쓰다듬긴 했지만, 그 이상 특별한 애정을 주지는 못했었습니다. 처음엔 그냥 조금 못난이처럼 보이던 강아지였으니까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메리는 집안의 '숨은 천재' 같은 면모를 드러냈습니다.
배변은 항상 집 밖에서 해결했고, 나가고 싶을 때는 앞발로 문은 톡톡 두드려 신호를 보냈습니다. 말귀도 어찌나 잘 알아듣던지, 조용히 있으면서도 우리와 눈빛으로 대화하던 아이였습니다.
마당에 개집이 따로 있었지만, 늘 우리 방문 앞에서 잠들던 녀석
어느 추운 날 아침엔, 우리가 세탁하려고 벗어둔 옷을 스스로 끌어다가 몸 위에 덮고 자고 있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이후로는 엄마가 낡은 방석을 깔아주긴 했지만, 그 장면이 왜 그렇게 마음에 남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멀리 있어도 "메리!"하고 이름을 부르면, 어디선가 총알처럼 달려왔습니다.
가끔은 정말 '호위무사'라는 말이 어울릴 만큼, 세상 그 어떤 존재보다 든든하게 제 곁으로 와주던 아이였습니다.
그러다 우리가 다른 마을로 이사한 뒤... 어느 날, 메리는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밖에 나갔다가 뭔가 이상한 걸 주워 먹은 것 같다고, 어른들이 조심스레 말해주었습니다.
우리 가족은 산에 작은 자리를 골라 메리를 묻어주었습니다.
그날 이후로도 몇 마리의 강아지를 키우긴 했지만, 이상하게 그 이상의 정은 주기 어렵더군요. 메리가 남기고 간 자리가 그만큼 컸던 거겠죠.
나중에 엄마에게 들으니, 메리는 여러 번 새끼를 낳아 그 어려운 시절 가게 살림에도 큰 도움을 주었다고 하더군요. 돌이켜보면 메리의 새끼인 강아지들을 안아주고 보듬었던 기억도 어렴풋이 있긴 합니다. 그러고 보면, 메리는 우리가 알던 것보다 훨씬 더 묵묵히 우리 곁을 지켜준 아이였습니다.
그리고 어제...
동네 뒷산을 오르는데, 한 할머니가 예쁜 강아지 한 마리를 데리고 산길을 걷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그 강아지, 앙증맞은 신발을 신고 있더군요.
희한하게도, 그 신발 하나가 오래된 기억을 건드렸습니다.
강아지를 보며 메리가 떠오른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어제는 그 작은 신발이 마음을 쿡 찌르듯 건드리더라고요
어릴 적 우리 메리는 신발은커녕 마당을 마음껏 뛰어다니던 아이였죠, 밥도 우리가 먹다 남긴 음식이 전부였고, 바람과 흙과 함께 지내던, 말 그대로 야생과 다름없는 삶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