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를 많이 하면 할수록 실망도 큰 법이라 지난해의 미련은 조용히 떨구고 일상처럼 새해를 맞았다. 마음으로야 임인년 범의 기운이 크게 내려와 주길 바라는 마음이지만 변화무쌍한 운에만 기대기에는 나는 인생을 너무 많이 살지 않았나. 이제는 달아나는 운의 허리도 메어 잡아 끌어오는 나름의 저력을 시간을 통해 갖추었기에 올 한 해는 내가 한 땀 한 땀 정성스레 바느질하듯 촘촘한 마디들을 엮어나가기로 했다. 그런 마음을 눈치라도 챈 것일까. 새해 벽두 1월 1일부터 소소한 좋은 일들이 손을 맞잡고 나를 환영해주었는데, 노트북 버전을 바꿔 산뜻하게 작업을 좀 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찰나 친한 동생이 박씨를 물어다 주어 한 달여간 몸은 고달팠으나 간만의 수고스러운 노동을 하며 용돈을 겸해 약간의 목돈을 떼어둘 수 있게 되었고, 신년 인사를 겸한 사랑스러운 친구의 자기 계발 서적 선물은 내 멘털에 자양분을 더하며 정신에 탄력을 더해주었다. 거기에 쉰이 된 남편을 축하하기 위해 함께 떠난 제주도 여행에서는 모처럼 호사스러운 숙소에서 단잠을 청하며 그간의 묵었던 모든 체증들을 새해의 축복과 함께 미련 없이 털어낼 수 있었다. 지난 3년간 가시처럼 불편했던 대학원 졸업 시험을 지난해 연말 가까스로 통과했기 때문이다. 목이 말라 입 안이 바싹 마를 지경이었는데 역시 기다림의 시간들은 나를 저버리지 않고 더 큰 위복(爲福)이 되어 내 인생을 응원해준다. 순조롭고 산뜻한 출발이다.
수많은 대소사와 함께 지난 몇 년간 원치 않는 격동의 시간을 보내고 바야흐로 맞이하는 선수의 시간.
질고의 눈물을 흘리며 가까스로 버텨내 맞이하는 나만의 시간이자 떠다니는 파편들을 엮어 퍼즐을 완성해 나가야 하는 기회의 시간이다. 1월, 이제는 부업으로 밀려난 어학 캠프에 한 달여의 시간과 에너지를 쏟은 후 연이은 명절을 보내느라 거칠어진 호흡이 가만 잦아들기를 기다렸다. 생각이란 걸 도무지 할 겨를이 없던 고된 강도의 한 달여 일상이 고요한 정적과 함께 다시 제 자리를 찾기를 바라면서 일주일을 보냈다. 다행히 몸과 마음이 이전의 시간을 기억해주고 있어 반사적이지는 않았지만 자연스레 그간의 짧은 흔적을 지우며 원래의 자리로 돌아와 주었다. 일말의 지체도 허용치 않고 이제는 온전히 밑그림을 그려야 할 때. 마침내 출발 선상에 선 기분이다.
사실 내 머릿속을 차지하고 있는 모든 생각의 덩어리들은 지금이 아닌 지난해 이맘때 즈음을 기원으로 한다. 그때 나는 다른 길, 즉, 이제 내가 갈망하는 일들을 마침내 해볼 수 있는 순간이 왔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의 구상과 크게 다르지 않은 기획의 밑그림들을 이미 마음속으로 그려둔 상태였다. 그런데 무엇이 문제였을까? 내 사소한 이상향을 이루는 것이 누군가에게 해가 되기라도 하는 것일까?
몇 년 업무적 인연을 이어오며 좋은 관계를 맺고 있던 에이전시의 프로젝트를 여러 차례 호의로 도와주던 일이 뜻하지 않게 나를 수렁으로 몰아넣어 상당 기간 나는 원치 않는 일을 하며 지내야만 했다. 서로 지나친 배려를 하다 생긴 일이라 얽히고설킨 여러 사람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어 무르지도 못한 채 장기 프로젝트를 진행해야만 한 것이다. 건강이 위태로운 시기였는데, 상태를 정확히 밝히지 못하고 어영부영 떠맡은 일은 정말이지 내 생명을 위태하게 했다. 조금만 여유가 있었다라도 대체자를 구해 내 간곡한 의사를 전했을 텐데, 시작이라 코 앞이라 피해를 줄 수도 없어 울며 겨자 먹기로 일을 감행했다. 겉보기에는 호의 가득한 감사한 출발이었지만, 당시 내 몸 상태는 계속해서 사이렌을 울리며 위험 신호를 보내고 있던 터여서 허허거리다 맡은 일은 몇 번이나 나를 생사의 위기로 몰아넣었다. 우울한 사회 분위기에 내 상황이 더해져 견디기가 죽을 맛이었다. 수락과 거절의 의사를 모호히 밝히는 부류가 아닌데, 요동치던 코로나 상황은 나 또한 예외로 두지 않으며 내게도 불안과 우울을 폭탄처럼 떨구어 오판의 상황으로 나를 힘껏 밀어 넣었다. 그렇게 몇 달 울분의 시간을 보내며 내 마음은 소리 없는 눈물을 꾸역꾸역 삼켜야 했고 일이 끝난 후에도 망가지고 부서진 이곳저곳을 추스르느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간들을 겪어야 했다. 그야말로 눈물 젖은 시간이었다. 그러니 올해의 하루하루는 더더욱 맥없이 보낼 수가 없는 것이다. 가까스로 재생한 나와 함께 내 안의 남아 있는 에너지들을 끌어 모아 뒤틀리는 산고의 고통이 있다 할지라도 기필코 무언가를 생산해내야만 한다. 이것이 올해 나에 대한 당위성이다. 그렇게 천덕꾸러기 마냥 밀려난 나의 기획은 마침내 시린 윗목을 벗어나 여밤의 남은 장작이 지글거리는 뜨끈한 아랫목으로 자리하게 되었다. 이윽고, 마침내, 그리하여, 그러므로, 모든 수식어를 나열해도 모자란 나만의 시간이 필연처럼 당도한 것이다.
우한 발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불안 속에서 요동하게 만들었던 지난해, 주식 시장과 부동산 시장의 고점이 어디인지 가늠조차 되지 않던 변혁의 소용돌이 속에서 수많은 산업들이 경쟁하듯 태동하는 것을 지켜보며 나는 나를 해방시키자고 마음먹었다. 그렇게 발동된 전환에 대한 시도는 묵묵한 생각의 시간을 거쳐 수익 창출이 가능한 프로젝트와 순수 창작 프로젝트 두 개의 큰 카테고리로 나눠졌고 이후 나는 프로젝트를 구체화하며 세부적인 계획을 세웠다. 준비가 완료되기까지 털어야 할 산과 같은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그 기다림의 시간 속에서 간절함은 배가 되었고 나약한 정신은 무장되었으며 계절의 변화와 함께 아이디어는 더 세밀해졌다. 그리하여 마침내 앞으로 진행할 나의 프로젝트가 탄생한 것이다.
우선, 첫 번째는 초보 저자 탄생기와 같은 이 글에 나의 모든 변화와 태동, 발전 과정을 담아 한 권의 책으로 엮어 낼 예정이다. 또 내가 오래 몸 담았던 영어 교육과 관련해 영문 구조에 이미지와 도식을 접목해 실용 저서를 써볼 예정이다. 물론 이 또한 출간이 목적이긴 하나 출간 자체의 목적보다 기존 어학서에 수학적, 시각적 요소를 더해 차별화시켜 분야의 새 바람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야무진 마음이 있다. 쉽사리 붓을 들지 않았기에 시시하게 꺼지고 싶은 초보의 야망쯤이라고 해도 좋다.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자유는 오롯이 내 것이기에. 그리고 마지막 계획은 온라인 건물을 짓는 것인데, 이미 많은 경제 활동의 방점이 가상 세계로 옮겨간 지금 내 생에 남은 시간 나의 노동을 대신해 줄 시스템을 온라인에 구축했으면 한다. 얼굴을 알려 유명해지겠다는 관종적 마인드는 1도 가지고 있지 않지만(나는 무명의 삶을 사랑한다), 변동 없이 지속적으로 소모될 수 있는 콘텐츠를 제작해 유튜브에 나의 건물 1호를 구축할 예정이다. 뭐 굳이 하나 더하자면, 대한민국 특정 계층 여성의 울분 어린 삶에 대한 이야기를 소설로 써보고 싶은 계획도 있고. 정해진 시간과 상황의 범위가 나를 어디까지 허용해줄지 알 수 없어 그 계획은 뒤로 물려둔다.
쓰고 보니 뜻대로 되지 않는 시간에 눈물 콧물 흘리며 기다려야만 했던 지난 시절이 영 값어치가 없지는 않은 느낌이다. 문제는 없다. 그러나 문제는 발생할 수 있다. 목표를 세웠다. 그러나 목표를 세운다고 다 이루는 것도 아니다. 그간 환경과 상황이 나를 용납해주지 않아 참고 버텨야 하는 시간을 지내왔기에 가까운 미래의 시간 또한 약간의 태클스런 상황들을 만나 흔들려야 할지도 모른다. 조금 더 완성된 모습의 나였다면 벌써 이루고도 남았을, 누군가에게는 이미 일상이 된 것들이, 지금은 나의 현재를 지탱하는 이유의 전부가 되어 가는 듯하다. 그런 이유들을 붙들고 나는 오늘도 글을 쓰고 나의 세계를 구축한다. 그럼에도 가끔 늦은 오후 맥 빠진 일상의 자리가 과연, 이라는 반복적인 자문을 내게 드리울 때, 나는 써 내려간 글을 읽고 또 읽으며 다시 붓을 들어야 할 이유를 찾고 거기서 다시 나의 방아쇠를 당긴다. 아직 가지 않은 새하얀 내 인생의 눈길 위에 선명한 흔적을 남기려 추운 날씨 외투를 껴입고 신발을 갈아 신으며 오늘도 찬 바람 부는 세상을 향해 조용히 내 안의 문을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