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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디라이터 호 Apr 27. 2022

복병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나는 매일 집으로 출근한다

돛을 단 배가 대해를 가로지르며 푸른 꿈을 시작하려는 찰나, 갑작스레 날씨가 변하며 폭우가 내린다. 자비 없이 장대비가 몰아치고 세찬 파도는 갑판을 뒤흔들어 뱃머리를 부순다. 항해의 목적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뱃길이 정체된다. 할 수 있는 일은 파도가 잦아들기를 기다리는 일뿐. 배의 시동이 꺼지고 뒹구는 파편 조각들이 몸을 해칠세라 급히 선실로 이동해 몸을 피한다. 파도는 이내 약해졌지만 비가 끝난 것은 아니다. 실망과 두려움, 당위성 어린 울분이 섞이며 선실 밖 파도가 잦아들기를 애타게 기도한다. 피곤이 밀려오지만 쉽사리 잠을 청할 수는 없다. 이 선박을 지킬 사람은 나고 이 지긋지긋한 파도와의 싸움이 끝난 뒤 조타 석에 앉아야 할 사람도 나다. 좀처럼 비는 그치지 않는다. 그럼에도 시간은 어떻게든 흘러갈 것이고 나는 어떻게든 나는 살아남을 것이고 어떻게든 항해도 계속되리라. 계속되는 무기력한 시간에 졸음이 쏟아진다. 체념이 두려움을 앞서고 지루한 시간에 지친 나는 물고기 뱃속으로 들어가 듯 곤히 잠에 빠진다.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뜨기를 바라면서.


 깜빡이를 켜지 않고 들이닥치는 일들은 언제나 불쾌하기 짝이 없다. 짧지 않은 인생을 살며 수많은 일을 겪었음에도 여전히 불쾌하기 그지없는 상황들에 전혀 무뎌지지 않는 걸 보면, 나는 정말 유유히 흐르는 강물처럼 살기를 원하거나 아니면 아직도 거친 인생사를 대하는 내공이 부족한 하수가 아닌가 싶다. 여기저기 늘어진 상황들과 내 안의 불필요한 요소들을 말끔히 정리하고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역시 계획은 계획에 지나지 않고 모든 변수를 다 계수할 수는 없는 게 인생인 듯하다. 이글거리는 새해의 태양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친구가 선물한 자기 계발 저서를 줄 쳐가며 정독했고, 지나간 죽은 시간에 더는 미련을 두지 않으려 끝도 없이 질척대던 내 마음을 과거에서 탈출시켜 주행을 이어가려던 찰나, 익숙지 않은 도로에서 깜빡이를 켜지도 않은 차들이 예고 없이 튀어나왔다. 복병이 등장한 것이다. 전혀 예견하지 못한 건 아니었지만 예후는 상상에 없었다고 할까. 그러니 적잖이 당황하고 놀랄 수밖에. 모든 인생들이 가진 공통의 속성이 있다면 누구나 이런 복병을 만난다는 것이겠지만 스스로 여전히 날렵하게 이 구간을 빠져나가지 못하는 걸 보면 나는 아직 하수의 그늘에서 좀체 벗어나지 못한 듯하다. 내가 하는 작업에 온 우주가 성심을 다해 협조해야 한다고 착각하고 있으니 말이다.


작업의 속도를 좀 내보나 싶던 찰나, 원래 좋지 않았던 엄마의 무릎이 갑자기 심하게 고장 나며 급히 수술을 해야 할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예정에 없었던 건 아니지만, 급성을 외치며 수술 일정의 타임 라인이 변동되자 나는 병원과 부모님이 살고 계신 집, 그리고 아버지가 소일 삼아 하시는 농원과 나의 본집을 번갈아 가며 다중 생활을 해야 했다. 생활인으로써야 원래도 미숙하기 짝이 없지만 그중에서 가장 싫어하는 집안일 한 가지를 꼽으라면 단연 요리인데, 음식점을 오래 경영하신 부모님 덕에 솜씨가 젬병인 건 아니어도 나는 생존을 위해 스스로를 어르고 달래 요리를 할 뿐 요리 자체를 즐기지는 않는다. 반찬 두세 개가 만들어지고 나면 어느새 폭탄으로 변해버린 주방 모습이 부족한 나의 요리 사랑을 말해준다. 음식이야 정성이고 사랑이지만 내게는 좀 귀찮고 어려운 사랑이라고나 할까. 어쨌든 아버지의 끼니와 엄마의 회복을 위해 부족한 나의 사랑을 갈고 요리 장인들의 손맛을 빌어 딸 된 도리를 하려 부지런히 날랐다. 만족도가 썩 높지도 또 내 몫의 당연한 일에 불평을 늘어놓고 싶지도 않지만 모처럼 확보한 내 시간을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싹둑 잘라내야 한다고 생각하니 심장을 도려내듯 마음이 아파 왔다. 이미 나의 밤은 길었고 오랫동안 계속된 지루한 시간에 지쳐 더는 불필요한 시간을 늘어뜨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욱하고 설움이 올라왔지만 사랑은 허다한 모든 것을 덮기에 여러 날 동안 제 일을 충실히 하던 노트북을 다시 덮어두고 잠시 그 시간 속에 머무르기로 했다.


‘아무렴! 일들은 늘 생기기 마련이지.’


사랑의 복병이 내 뺨을 툭 건드렸고 찔끔하고 눈물이 흘렀으나 옷소매로 쓱 닦아내고는 그 자리를 지켰던 듯하다. 변수가 없는 일은 어디에도 없기에 부디 내 마음이 요동치지 말고 그 시간을 버텨 주기를 바라면서.


그렇게 겨울이 지나가고 있었다. 기침이 날 듯 말 듯 봄이 문턱에서 그림자를 내밀어 겨울 끝자락과 한참 실랑이를 벌이던 간지러운 초봄이었다. 입춘을 지나 남편과 나의 생일 주간을 맞이하여 제주로 여행을 다녀왔다. 정초에 시작한 일이 막 끝난 터라 가뿐하지 않은 컨디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다녀온 탓인지 한동안 누워 지내며 시린 겨울의 추위가 떠나가기를 기다렸다. 텔레비전을 통해 보도되는 뉴스에서는 연일 확진자가 늘어 계수의 합이 하늘 꼭대기까지 치솟았고, 생일 즈음 인사가 없어 내심 섭섭하던 지인에게는 온 가족이 코로나에 걸려 정신이 없었노라, 는 뒤늦은 소식이 들려왔다. 겨울 해가 뉘엿 지고 나면 도로 위 차들은 한산했고, 가끔 외식이라도 할라치면 그 스산한 분위기가 마음을 더 쪼그라들게 만들었다. 마스크로 가린 우리의 공중 보건이 이제는 안전한 경계를 넘어 공기를 둥둥 떠다니는 바이러스가 곧 나를 덮치겠구나 직감할 무렵이었다. 그즈음 남편은 확진자들과 동선을 같이 하거나 동석하여 회의에 참석하는 등 도저히 바이러스를 피할 수 없는 환경에 여러 번 노출되었는데 신기하게도 코로나와 매우 유사한 증상을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연이은 검사에서 계속 음성 판정을 받아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를 결과에 나는 피식거리기도 했다. 그렇게 며칠을 보내던 어느 날 저녁,


심상찮은 얼굴로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 남편은 바로 격리하는 게 좋겠다며 안방 침실을 비우고 물건을 챙겨 서재로 가서 생활하라는 묵직한 명령을 내렸다. 포근한 나의 매트리스를 떠나 잠을 청하는 일은 고역인 데다 이미 별일 없이 지나간 몇 번의 전철이 있던 터라 같이 자도 별일 없을 걸, 하고 웃으며 장난치는 나에게 남편은 여느 때와 달리 불같이 화를 내며 당장 짐을 챙겨 거실로 나가라고 했다. 뭔가 올 것이 왔다고 그도 나도 예감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한 지붕 따로 또 같이의 삶이 이어졌다.


며칠이나 지났을까. 으슬으슬 춥다 밤새 뜨거운 열감에 시달린 나는 줄줄 흐르는 콧물과 계속되는 기침 그리고 몸살 증세로 날이 밝기를 기다려 대충 외투를 걸치고는 항원 검사를 하기 위해 동네 내과로 갔다. 줄이 이미 길었고 저마다 마스크와 모자를 꾹꾹 눌러쓴 채 연신 기침을 해대는 모습이 이 몹쓸 길을 함께 가고 있구나,라고 느끼게 해 주었다. 따끔따끔 콧속에서 면봉이 여러 차례 돌려진 후 결과는 예상대로 양성이었다. 잠시 당황했지만 왠지 모를 안도감도 함께 밀려왔다.


‘비로소 올 것이 왔구나. 지나야 할 것은 지나야 하기에 오히려 잘 됐는지도 몰라.’


격리는 그럭저럭 견딜 만했다. 어차피 입맛도 없었고 배가 심하게 고프지도 않은 데다 지루한 겨울의 끝자락이니 차라리 약이나 먹고 잠이나 자자는 태평한 생각을 했던 듯하다. 이 또한 다 지나가리라 생각했기에 양성 판정 자체가 복병은 아니었다. 오히려 예기치 못한 숨은 복병은 따로 있었다. 바로 바이러스의 후유증이었다. 들리는 소문처럼 처음 증상은 감기와 비슷했다. 잔기침과 피로, 무기력감의 여파가 좀 있다고는 했지만 그 정도는 감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내 후유 증상은 내가 예측한 모든 항목이 아니라그때까지 별로 들어본 적도 없던 브레인 포그였기 때문이다. 안갯속에 갇힌 듯 뇌가 흐리멍덩해지며 도저히 자유롭게 무언가를 꺼낼 수가 없는 그런 상태. 바로 뇌가 안갯속을 헤매는 상태가 된 것이다.


격리가 해제가 된 후에도 약을 복용하고 쉬기를 이주 넘도록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무언가 기억하고 생각하려는 내 시도에 나의 뇌 시스템이 원활히 작동하지 않으며 잡동사니를 쑤셔 넣은 상자를 뒤져 물건을 찾듯 어렵게 필요한 생각들을 떠올려야 했다. 당시 무엇을 기억하려고 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격리가 해제된 후 운전을 하며 지나던 길의 도로 이름을 떠올려 보려 안간힘을 쓰기도 했고 어제 한 일 중에 몇 가지를 떠올려 기억해보려 하기도 했다. 알고 지내던 지인의 이름을 생각하려 애를 쓰기도 했다. 모두 사소하게 흘려버릴 수 있는 것이기도 했지만 쉽사리 떠오르거나 기억이 나지 않아 뒤죽박죽 된 내 머릿속 상자 후미진 구석을 더듬어 찾아야만 했다. 지난해 이미 건강이 한바탕 파란을 일으켜 나를 돌게 한 터라(실제로 천장이 돌기도 했고) 이 작은 힌트들이 결코 예사롭지 않음을 본능적으로 직감할 수 있었다. 두려움이 밀려왔다. 치매 증상, 브레인 포그, 뇌 기능 감퇴, 코로나와 기억력, 커피와 소뇌 기능 등 미친 듯 키워드를 두드려 정보를 모으고 읽어 내려갔다. 시각 주의력마저 떨어져 화면의 글자와 정보들이 시야에서 흩어져 쉽사리 글도 읽을 수가 없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뇌가 나의 의지로 온전히 통제되고 조절되는 영역이던가! 결코 그렇지 않음을 알기에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는 것 같았다. 아직 이러기에는 너무 젊지 않은가. 받아들일 수 없는 복잡하고 거북한 감정들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어떻게 할까 고민을 하다 바로 나의 두 친구에게 기도 요청을 했다. 일거수일투족 내 모든 사정을 아는 그녀들은 언제나 내 삶의 강력한 지지대이자 버팀목이다. 살려 달라고 이럴 수는 없노라고 나도 울부짖었다. 내 생명의 모습을 이 같이 할 수는 없노라고. 머리와 뇌의 모든 기능을 온전히 되돌려 전보다 더 깨끗게 하십사 침잠한 가슴으로 매일 무릎을 꿇었다. 델타 변이가 한창 극성이던 지난해, 이미 코로나에 걸려 어려운 시간을 보낸 서울 형님이 생각나 전화를 걸었다. 그녀라면 무슨 얘기를 해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고 무사히 코로나를 지났노라는 지인의 영웅담 따위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올케, 만만하게 보면 안 돼. 안 걸려 본 사람은 감기랑 비슷하네 어쩌네 하지만, 사람마다 면역 체계가 다르고 신체의 강약이 다르기 때문에 바이러스가 어디 붙어 고생할지 몰라. 모르는 사람들이나 하는 소리지, 나도 후유증으로 폐가 안 좋아져 삼 개월이나 고생한 걸. 잘 챙겨 먹고, 조금 더 지켜보다가 신경과에 가서 검사받아 보는 게 좋지 않을까?”


대충 마음을 추슬렀지만, 추스른 마음처럼 머리가 원활히 작동해주지는 못했다. 여전히 몇 가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았고 머리 통은 잡동사니가 마구 뒤섞인 쓰레기통 같기도 했다. 회복하리라, 다부지게 마음먹고 쉬면서 뇌를 깨우는 여러 가지 활동들을 했던 듯하다. 창작자에게 기억 능력과 사고력은 생명과도 같기에 꼭 정상화시켜야만 했다. 이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었다. 그즈음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며 약간의 우울감마저 엄습해 단조롭던 삶에 뭔가 변화를 주어야겠다고 생각하던 찰나, 저녁에 두어 시간 짧게 진행하는 일이 잡혔다. 멍청해진 머리 때문에 온통 마음이 불안하고 복잡했는데 여러 차례 거절한 그 일에서 재차 의뢰가 들어오니 외부 활동으로 자극을 줘보는 것도 괜찮겠다 싶어 떠밀리 듯 승낙을 하고는 바로 착수했다. 단순한 일에도 두서가 서지 않고 서류 내용이 더디 읽히며 가끔 머릿속 상자에서 힘들게 기억과 생각을 꺼내고 배열하는 일이 지속되었지만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다시 시작한 일은 다행히 좋은 자극이 되었다. 매 시간 조마조마하고 불안한 마음으로 그 시간들을 버틴 것 같다. 여전히 약간의 어지러움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다른 일에 골몰해 부재인 상태를 제외하고는 생각이 안나는 일은 이제 거의 없다. 회복이 막바지에 이른 듯하다. 불안한 마음에 달려가 실시한 검사에서도 어떠한 염증도 남아 있지 않다는 의사의 소견을 들었다. 너무 다행이었지만 한 해의 삼분의 일이 날아가버린 긴 터널이었다. 시간은 죽었지만 나는 보전했고 내 전 존재의 사령탑도 다행히 구제되었다. 비로소 온전할 수 있는 순간이 왔다. 바로 나의 두 번째 복병, 코로나가 나를 스치며 만들어 낸 후유증 이야기이다.


이 복병은 나의 허점에서 출발하지도 나를 둘러싼 환경에서 시작된 것도 아니다. 예측하고 통제할 수 없는 범주의 그 무엇이다. 시대의 굴레가 나를 휘감은 매복된 적이며 존재의 사령탑을 무너뜨리려던 검은 그림자의 궤휼이다. 그 시간이 삶을 파고들어 잠시 말할 수 없는 절망으로 나를 이끌었으나, 운 좋게 나는 그 어둠의 굴레를 벗어나 걸린 발을 간신히 빼고 이제는 살아남았다. 그 시간의 길에서 도망치느라 온 몸에 힘이 빠지고 다리도 후들거리지만 그럼에도 항해의 목적을 가진 자가 아니던가. 가야 할 길이 있는 자는 다시 그 길을 가야 한다. 아픈 테두리를 만들어 자국을 남겼어도 어찌 됐건 항해는 계속되어야 한다.


이 일이 꼭 일어나야만 했는지 알 수는 없다. 그것이 운명에 기인한 것인지 온전한 숙명을 위한 필연의 사건인지 나는 결코 알 수가 없다. 다만 다이어리를 빼곡 채운 나의 계측 가능한 모든 변수들에 엑스 자를 긋고 이 시간이 허락한 항해의 휴지기에 잠시 몸을 맡길 뿐이다. 몸을 뒤흔들어 상처가 더 깊이 파이고 음습한 마음이 온몸을 휘감지 않도록 스스로를 더욱 여밀 뿐이다. 신년의 해는 이미 밝아 봄의 정점을 향해 내닫고 있다. 고장 난 다리와 머리는 다시 회복되어 춘기의 땅을 굳게 딛고 섰다. 한동안 열리는 일이 없던 고개 숙인 랩탑이 저에게도 봄빛을 내려 달라 말하고 있는 듯하다. 이제 제 일을 다시 하겠노라 말을 거는 듯하다. 달은 때가 차야 기울고 태양은 한낮이 되어야 정점에 이른다. 망망대해 위 외로이 뜬 배는 이제 다시 항해를 시작하게 될 것이다. 파도에 찢겨 부서진 나도 태양빛에 온 몸을 적시며 대해를 가로질러 나갈 것이다. 다시 시작될 이 항해에서 순조로운 날만큼이나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들을 만나겠지만 어쩔 텐가. 어느 날은 두려움에 떨며 눈물 흘리고 어느 날은 부서진  두드려 고치  어느 날은 선실로 몸을 피해 체념의 잠을 자기도 하겠지만, 그럼에도 달고 쓴 항해시간들은 나와 함께 더 여물고 단단해져 운명의  조각을 완성하 않겠는가. 마주한 생의 얼굴이 더러는 알 수 없는 난폭함으로 무심히 우리를 대할지라도 고개를 떨구지 않고 스스로를 힘껏 지켜 서로 항해를 이어 나가야 할 뿐이다. 그럼에도 해가 뜨고 훈풍이 부는 청명한 맑은 날이 우리 생을 빼곡히 채워주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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