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분된 열기가 생을 힘껏 지지하던 무더운 여름이 지나가고 마지막 한 학기만을 남겨 두고 있었다. 버틸 힘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아 오기를 부려야 하는 날이 잦아졌다. 어떻게든 이 시간의 끝은 맺어야 했다. 진저리쳐지는 모든 날로부터 해방될 날이 머지않았건만, 달력의 숫자가 바뀔 때마다 초조함은 더해갔다. 아카데미 수료를 마치고 2학기에는 데뷔를 해보려 안간힘을 썼지만 부푼 희망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는 않았다. 페이지를 넘기는 화려한 이력도 가능성을 비출 패기도 모두 내 것은 아니었다. 운수 좋은 지난날들이 머나먼 어제의 일처럼 과거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잘 될 거라는 상투적인 응원이 머릿속을 맴돌았지만 그럴수록 힘은 더 빠져만 갔다. 절망이 소리 없이 스미는 가을을 맞으며 운명의 시간에게 그냥 나를 맡기는 수밖에 없었다. 졸업 시험의 부담도 나를 짓눌러 몸과 마음은 점점 더 쇠해져 갔다.
띠를 넘는 친구들의 체력도 바닥이 나고 있었다. 한 번도 결석한 적이 없던 친구들도 수업에 빠지기 시작했다. 으쌰으쌰 서로를 북돋워 함께 어깨동무하며 나아가고 싶었지만 누구에게도 그럴 만한 힘이 남아있지 않았다. 수많은 신문과 연설문들이 학과 스터디 룸에 쌓여 갔고 흰머리가 희끗거리며 젊음을 되찾아 줄 것을 요구했지만 신경 쓸 여력 따위는 없었다. 수업이 끝나면 학교 식당에서 밥을 먹고 기숙사로 돌아가 뻗은 다음 지는 석양의 햇살을 받으며 다시 통역실로 돌아가는 생활이 이어졌다. 졸업 준비로 통역 부스는 빌 날이 없었고 우리의 싱그러움도 가을빛에 바랬으며 한계에 부딪힌 정신은 점점 더 날카로워져 갔다. 언성을 높이는 일은 없었지만 가능한 서로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 모두 숨을 머금고 조심스레 행동했다. 혹사(酷使)의 삶은 모두를 소진시켜 신체적 정신적 심리적 에너지를 갉아먹으며 우리를 원래의 모습에서 조금씩 메마르게 했다. 바닷바람이 패딩 점퍼를 뚫고 마음을 매섭게 하던 그 해 겨울의 끝, 우리는 마침내 졸업 시험을 치르게 되었다.
'케 세라 세라(Che sera sera)'
‘할 수 있는 일이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라면, 그저 될 대로 되도록 두는 수밖에.’
간신히 몸을 붙들고 시험을 치렀다. 시험은 크게 예상을 벗어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변수가 전혀 없었던 건 아니었다. 어찌 됐건 끝은 왔고 우리는 말없이 각자의 자리로 조용히 사라졌다. 다시는 보지 않을 사람들처럼 서로를 향한 애정의 말미도 남기지 않은 채 서로의 동굴로 뿔뿔이 흩어졌다. 깊고 긴 운신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하나의 문이 닫히면 스스로를 보상하려 가방을 꾸려 무엇에든 몸을 실었을 나였지만 그건 덜 지친 사람들이나 하는 짓이었다. 큰 차도 좋은 옷도 산해진미도 위로가 되지 않는 사망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밤낮 잠이 왔다. 밤낮 식은땀이 났다. 밤낮 먹고 자는 어린아이의 시간이 이어졌지만, 도무지 회복의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고작 동네 마트에 들르는 일이 하루 일과의 전부인 날들이 많아졌다. 생이 이토록 고달픈 것이었던가! 며칠 자고 일어나면 없던 일처럼 말끔히 회복되리라 생각지는 않았지만 회복은커녕 몸은 점점 더 추운 바닷속으로 가라앉으며 나를 끌어내렸다. 일어나 영양제를 한 움큼 삼키고 홍삼에 녹용을 넣은 보약도 먹어 보았지만 잠깐 반짝거릴 뿐, 몸은 계속 기준점을 낮춰 그곳으로 돌아가길 반복했다. 머리를 파고든 걱정에 여러 가지 검사도 해보았으나 아무 문제가 없었다. 분명 문제가 있는데 문제가 없는 몸. 처음 마주하는 나의 신체 상태였다. 증상들이 소리치며 나는 시들고 쪼그라져 가는데 전혀 문제가 없는 몸. 누군가 부연 설명이라도 해주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결과를 통보할 뿐 아무런 말도 덧붙여 주지 않았다. 나라는 인간을 통으로 돌보아줄 신과 같은 주치의가 있었으면 좋으련만, 그나마 병에는 걸리지 않았으니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나의 신체는 정상과 비정상의 간극 그 사이에서 힘겹게 사투를 벌이고 있었던 듯하다. 안도하는 기분도 잠시, 정상이라 말할 뿐 내 몸을 상세히 훑어 내지 못한 의료진들에게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나를 진료실의 객(客)이 아닌 고통스러운 한 인간으로 대해주었더라면 좋았으련만. 그럼에도 해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지 요란스런 폭죽 소리와 함께 예정된 다음 시간을 열어 주었다. 나의 주 무대는 담요가 깔린 거실 소파였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시간은 스스로 제 갈 길을 가는 듯했다. 휴학한 일 년을 더해 삼 년의 시간을 대학원에 바쳤으니 마흔을 갓 넘던 나이는 이제 어디 내놓기 민망한 나이가 되어 가고 있었다.
'이런 시절이 내게 있을 줄이야!'
상상하지 못했다. 늙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냐던 흔한 말들이 떠올랐지만 무지하게도 나는 정말이지 늙지 않을 줄 알았다. 한 번도 내가 늙을 거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만큼이나 젊음은 길었다. 동년배 친구들보다 학교 동기들과 쿵작이 더 잘 맞았으니 실로 나는 젊었던 것이다. 그래서 내가 그들과 다를 바가 없다고 착각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나의 찬란한 시절이 끝없이 이어질 거라 오판한 것이다. 담요를 타고 흐르는 눈물과 함께 후회가 밀려왔다. 어리석고 붉으나 젊고 열정 가득했던 지난날의 나를 비로소 마주하게 된 것이다. 어디로 가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도무지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차가운 겨울의 시간은 흘러만 갔다.
몇 주가 지났을까?
좀처럼 졸업 시험 결과가 들려오지 않았다. 이미 발표가 나고도 남았어야 하는 시간이었음에도 아무런 소식이 들려오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태용에게서 전화가 왔다.
“누나 말도 안 돼! 발표 봤어요? 나 다 붙었어. 여섯 과목 다 붙었어, 누나!”
“와, 대박! 태용아 축하해. 나 아직 발표 못 봤는데, 얼른 확인해 봐야겠다.”
“누나도 당연 잘했겠지. 빨리 확인해봐요. 누나!”
한껏 들뜬 태용이는 본인의 결과를 믿을 수 없다는 듯 잔뜩 상기된 목소리로 서둘러 확인해 보라고 이야기해주었다. 통대 졸업시험에서 6과목을 동시에 붙는다는 것은 소위 실력이 날고 기는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또 다른 차원의 증서 같은 거였는데, 대학원 말고도 여러 일을 동시에 했던 태용이는 불편한 몸에도 불구, 자리를 지키며 최선을 다한 덕에 올 패스라는 결과를 만들어 냈다. 놀라운 일이었다. 번역의 강점을 살리고 통역의 한계를 극복해 만들어낸 아름다운 결과였다. 오 분쯤 지났을까. 휴대폰 진동이 울리며 ‘통번역 대학원 시험 결과’라는 제목이 떴다. 절대 다 붙을 거라고 생각지는 않았지만, 수업 시간에 보인 퍼포먼스만큼의 결과는 나와주길 바라면서 떨리는 마음으로 문자 창을 열었다. 절대 두 과목 이상은 떨어지면 안 된다고 기도를 하고 또 해두어 내심 기대하는 마음으로 창을 연 순간, 나는 와르르 무너졌다. 무려 세 과목에서나 떨어진 것이다. 누구나 다 붙는 번역 두 과목을 포함해 한영 순차통역 한 과목을 제외하고 나머지 과목에서 모두 실패한 것이다. 믿을 수가 없었다. 스스로를 그토록 과대평가하고 있었단 말인가! 망치로 얻어맞은 듯 머리가 멍했다. 나는 그렇다 쳐도 삼 년을 제대로 건사받지도 못하고 뒷바라지 한 남편에게 무어라 해야 할지 미안한 마음이 앞섰다. 머릿속에서는 쉴 새 없이 징 소리가 울려대며 이게 도대체 뭐지, 라는 생각에서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가 없었다. 하늘로 올라가는 사다리가 있었다면 그날 밤 나는 밤이 새도록 그 다리를 타고 올라가 누군가의 멱살을 잡고 씨름했을지도 모른다. 이럴 수는 없다고. 최소한의 양심이 있으면 이래서는 안 된다고. 생이 내게 예의를 저버리는 순간이었다. 졸업하기 위해 다시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 구역질이 문제가 아니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치민 분노는 매일 불기운을 더해 맘 속 불덩이는 점점 더 커져만 갔다. 쇠한 몸에 분노의 감정이 얹어져 머리에서는 매일 열이 나고 심장은 터질 것만 같았다. 무례하게 구는 생에게 어떻게든 복수를 해야 하는데 도무지 방법이 떠오르지가 않았다. 앉아서 당하고만 있어야 하는 운명 앞에서 어쩔 줄을 몰라 지쳐갈 때쯤, 무기력이 찾아들며 소용없는 일에 마흔의 청춘을 바친 내가 불쌍해지기 시작했다. 부끄러워 낯을 들 수도 없었다. 가족을 만나는 일 이외에 모든 만남을 차단했다. 겸손이라고는 일도 없는 완악한 처사였지만 나 말고 다른 이를 보고 들을 여력이 없었다. 아니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칩거를 넘어 은둔의 시간이 이어지며 해를 넘기고 겨울의 끝을 맞았다.
춘삼월의 봄이 눈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널브러진 기간 동안 원망하다 지쳐 스스로를 찢어 탓하고 자책했다. 가벼운 칭찬을 풍선처럼 받아들이고 신랄한 비평을 무심히 외면하여 받게 된 지난 시간의 쓰라린 성적표 앞에 자신감은커녕 자존감마저 꼬리를 감추고 있었다. 스스로란 주제를 현미경으로 들쑤셔 보느라 서른 평 집은 생기를 잃어갔다. 겸손의 동의어는 주제 파악이었으리라. 달란트를 가졌으나 쌈짓돈처럼 보잘것없이 허송이 써버린 나태한 자의 우울한 말로를 겪으며 시간이 삼켜버린 지난날의 나 자신을 후회했다. 세월을 후회했다. 태도를 후회하고 양식을 후회하고 행동을 후회했다. 가슴골을 타고 이어진 눈물은 생에서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진정한 실패의 눈물방울들이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진정한 실패자의 눈물에는 땅을 치는 분노가 없다는 것을. 대신 심장 가득 수치심뿐이라는 것을.
추운 바람을 다 몰아내지 못한 채 삼월은 다가왔다. 한 철의 봄과 한 철의 여름과 한 철의 가을 속에서 평범한 일상을 보냈다. 달라진 것은 없었지만 다시 살아날 수 있을 것 같았다. 꿈은 소원해졌지만 몸은 다시 일어나고 있었으므로 힘을 내어 내 꿈의 마지막 시간을 연장해 주기로 마음먹었다. 장벽은 높았으나 배 아파 잠드는 시간을 더는 늘이고 싶지 않았기에 앞에 새겨진 모든 숫자를 뒤로 하고 꿈을 지펴 다시 활활 타오르게 하리라 마음먹었다. 빛이 드리워졌다. 무대 위 핀 조명이 나를 비추고 좌정한 객 속에서 나는 더 빛나고 있었다. 희망이 나를 버리지 않고 있었기에 죽을힘을 다해 다시 손을 뻗었다. 손을 내밀면 닿을 수 있을 것도 같았지만 여전히 멀게도 느껴졌다. 빛은 옅고도 붉었다. 희망은 옅었고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붉었다. 마음이 조금씩 세워지며 꿇은 두 무릎을 일으켜 다시 나를 출발선상에 세웠다.
‘그래 됐다.’
이거면 된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