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문드문 행사 소식이 들리던 가을도 별 소득 없이 지나가고 마른 가지처럼 쪼그라드는 겨울이 다가왔다. 뒤집어 놓은 모래시계처럼 타는 목구멍 사이로 시간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예정된 알갱이를 흘려보내고 있었다. 꿈은 활활 타오르지는 않았지만 잦아들지도 않았다. 다른 대안이 없었기에 딱 일 년만 시간을 연장해주리라 마음먹었다.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불굴의 생을 몫으로 사는 이는 되고 싶지 않았는데 다른 방도가 없었다. 투자한 시간이 아까워 접지 못했던 건 아니었다.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던 의지와 확신이 새겨진 숫자에도 불구하고 나를 지속하게 만들었다. 새해의 태양이 밝으면 어떻게든 해내리라 마지막으로 다짐했다. 요란스런 지난 시간의 끝을 추레하게 맺을 수는 없었다. 날은 그렇게 흘렀고 남은 미련과 희망을 보신각 종소리에 얹으며
새해 벽두를 맞았다.
성수기도 비수기도 모호한 프리랜서의 특권이라면 어느 때건 필요한 시간을 툭 잘라 재단해 쓸 수 있는 자유이리라. 이리저리 무너지느라 바빴던 그 해, 결혼 10주년을 맞았음에도 별다른 자축 행사를 치르지 못했던 남편과 나는 가까운 곳으로 잠시 여행을 다녀오기로 결정하고 설 연휴에 맞춰 비행기 표를 끊었다. 한 겨울 서릿바람에 나를 흔들어 흐리멍덩한 정신을 깨우고 싶기도 했고 일상의 모든 구질 거림으로부터 잠깐이나마 벗어나고 싶기도 했다. 가능하다면 이국의 신선한 공기를 전신으로 흡수해 새 시간 속에 뿌려대고 싶었다. 목적지는 상하이였다. 상해(上海)는 몇 해 전 여동생과 여행을 하며 과거, 현재, 미래의 여러 시간들이 거대 도시 속에서 오묘히 공존해 매력을 느꼈던 곳이었다. 그 도시가 뿜어내는 펄떡이는 에너지를 다시 맛보고 싶기도 부담 없이 비행기에 올라 식도락을 즐기며 지친 스스로를 잠시나마 위로하고 싶기도 했다. 값이 싼 항공사를 골라 4박 5일 일정으로 비행기표를 예매한 후 며칠 남지 않은 일정에 마음이 바빠져 호텔을 뒤적뒤적할 때였다. 당황스런 소식이 뉴스에서 들려왔다.
중국 우한(牛漢)의 한 재래시장에서 원인 미상의 바이러스가 급속히 퍼져 중국 도시들을 봉쇄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진원지 우한을 비롯해 상하이에서도 감염자가 생겨나며 도시는 문을 걸어 닫았으며 온 세계가 그곳을 집중하고 있었다.
아뿔싸!
운이 없다는 건 이럴 때 쓰는 말이던가! 아니 엄밀히 말해 운이 좋다고 해야 하나? 우한의 한 가축 시장에서 시작된 바이러스는 WHO(국제 보건 기구)에 의해 코로나19라는 이름을 달고 온 우주의 기류를 타고 올라 순식간에 퍼져 나갔다. 무서운 속도였다. 여행이 일주일만 빨랐어도 중국 출입자임이 기정 사실화되어 따가운 눈초리를 피할 수 없었을 텐데, 하늘이 도운 것인지 불운의 시간대를 아슬하게 비켜 간 우리는 결국 비행기에 몸을 싣지 못하고 모든 일정을 취소해야만 했다. 게으름을 피우느라 호텔을 결재하지 않은 것이 불행 중 다행이었다. 통역 스터디를 하며 에볼라나 사스 같은 바이러스들을 자료로 접하였지만, 이들은 대부분 국지적이었고 수명도 길지 않았던 데다 실제로 노출된 사람을 가까이서 본 적도 없어 상황이 곧 종결될 거라 믿었다. 여행을 못 가는 건 아쉬웠지만 봄에 다시 시간을 내면 될 일이고 다녀와 전전긍긍하느니 한편으로 다행인 상황을 위안 삼으며 텔레비전 모니터를 주시했다.
소식은 심상치 않았다. 바이러스는 수많은 입국자들을 거쳐 가까운 이의 호흡을 타고 빠르게 번져 나갔다. 불신이 이글거리는 퀭한 두 눈을 남겨둔 채 서로의 입과 코를 막느라 마스크는 동이 났으며 이로도 모자라 재앙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는 인간의 탐욕스런 욕망 덕분에 나는 급기야 해외에서 역으로 마스크를 구매해야만 했다. 상황은 잠시도 호전되지 않고 점점 더 악화되어 갔다. 계엄령이 내려진 듯 국경을 폐쇄하고 도시를 봉쇄하는 국가도 늘어갔다. 바다 건너 저 멀리 유럽에 살고 있는 한 친구는 식료품을 사기 위해 통행증을 가지고 다녀야 한다며 한숨을 쉬었다. 내가 사는 곳에서도 셔터를 내리고 불을 끄는 상점들이 늘어났다.
아뿔싸!
전쟁과 테러와 전염병은 뉴스에서나 볼법하던 남의 나라 일이었는데 이제 내 앞의 현실이 되어 코 앞으로 닥치고 있었다. 자연으로 둘러싸인 자적한 곳에 살고 있었지만 무거운 기운은 일상을 짓누르며 정신을 암울케 했다. 각 국의 연이은 봉쇄 조치와 연일 갱신되는 확진자 수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을 배가 시켰다. 그렇게 나의 먼지 같은 시간은 우주의 강력한 시간에 압도되어 보잘것없이 흘러갔다. 정신을 차리면 억울하고 차리지 않으면 우울한, 울(鬰)의 시간 속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구경꾼이 되어 시절이 끝나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미친 듯 치솟는 주택 가격과 불안을 먹이 삼아 바닥을 까뒤집어 솟구치던 주식 시장이 잠깐의 희망이었는지도 모른다.
통역 공부를 하며 남들보다 일찍 접한 인류의 네 번째 산업 혁명은 바이러스라는 촉매와 함께 증폭되며 현실로 변해 가고 있었다. 선견(先見)이 있었더라면 난세(亂世)에 호기롭게 관망하고 앉아 시절의 기류를 낚았을 터인데 나는 제 머리 하나 깎지 못하는 범인(凡人) 아니던가! 그럼에도 두 눈을 부라려 시대의 전환을 목도하면서 시세(時勢)에 어두운 자는 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과거의 문들은 시절의 종말과 함께 하나둘씩 막을 내리고 있었다. 대신 인공 지능을 접목한 최첨단 기술과 온라인 플랫폼 중심의 새로운 시장이 변화를 감지할 새도 없이 빠르게 문을 열고 있었다. 압도된다는 건 이럴 때 쓰는 적확한 표현이리라. 지난 시간의 끈을 놓을 마음의 준비조차 채 끝내지 못한 나는 충격과 떨림에 휩싸였다.
모든 국내외 행사들도 더 이상 조명을 밝히지 않았다. 회의는 축소되고 화상으로 대체되었으며 행사 진행자를 섭외하는 공고도 더는 볼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나는 한 번의 시도도 제대로 해보지 못한 채 내 의지와 상관없이 꿈의 마지막 자락을 종결시켜야 하는 허무한 운명의 주인공이 되었다.
아뿔싸! 아뿔싸!! 아뿔싸!!!
그렇게 코로나와 함께 줄창 연습만 하던 나의 견습생 시절은 막을 내렸다. 중년에 턱을 걸친 몸이 가장 먼저 막을 내렸고, 그다음 시절이 막을 내렸고, 내 마음이 막을 내렸고, 그리고 나의 의지도 끝내는 막을 내렸다. 들리지도 않는 목소리로 세상을 향해 소리치다가 박수갈채도 없이 조용히 그러나 한편으로는 요란스레 막을 내렸다. 포기하지 않음에 이루리라는 말이 목구멍에서 맴돌았지만, 기쁨이 사라진 마음에 다시 꿈을 욱여넣어 스스로를 채근하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불굴의 정신을 가진 나도 아니지 않았던가! 설령 스스로를 겨우 무대에 세운들 오래갈 것 같지도 않았다. 어차피 파도처럼 밀려오는 수많은 젊음과 맞서야 할 테니 그 꿈은 어차피 잠깐 반짝이다 사장될 게 분명했으므로 나는 시간의 산물에 불과한 나 자신을 몸소 체험하며 눈물을 머금고 기나긴 여정의 문을 닫았다.
그렇게 생의 시간은 다시 시작되었다. 떨구어진 꽃처럼 땅에 떨어진 꿈은 짜디 짠 눈물에 절여져 내 가슴속 항아리에 담겼다. 배 아파 볼 수 조차 없던 다른 이의 무대도 이제 더는 의미가 없었다. 그럼에도 경연 프로그램을 보면 눈물이 났다. 마침내 모든 경쟁을 뚫고 서럽게 울고 있는 그를 보고 있노라면 나도 서럽게 눈물이 났다. 분노의 눈물도 좌절의 눈물도 아니었다. 간절했을 그의 시간을 투영하며 바라보는 한 줄기 희망의 눈물이었다. 그 시간을 이해하는 눈물이었고 응원하는 눈물이었고 그를 껴안듯 나를 껴안는 그런 눈물이었다. 눈물은 또 그렇게 해를 넘기고 일상에 묻히며 나와 함께 점점 옅어져 갔다.
눈을 떠야 했다. 머리는 열려 있었고 마음은 비워져 있었다. 한 번도 생에 대한 강렬한 의지를 잃은 적이 없던 부모님을 닮아서였을까, 모진 순간에도 길은 열리리라 믿었기 때문이었을까? 비워진 마음이 조금씩 가벼워지기 시작하며 새로운 일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즈음이었다. 생일을 맞은 나에게 친구는 책 한 권을 선물로 주었다. 해마다 잊지 않고 소소히 챙겨 나를 감동시키는 친구였다. 내 사정을 깊이 알 리도 없는데 멘털 관리에 대한 책을 선물로 주었다. 겨울 방학을 맞아 종일토록 수업을 해야 하는 고된 일정의 강행군이 이어졌지만 줄을 그어가며 읽은 책 덕분인지 바스러지려는 컨디션에도 쉬이 나가떨어지지 않았다. 아마도 모진 시간 속에서 키운 맷집 덕분이리라. 책은 수많은 인생의 실패 속에서 쓰러지지 않고 다시 일어난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있었다. 세상 이치가 반은 운명이라고 생각해 안이하게 보냈던 지난 시절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인생이란 실전 게임에서 계속 연습생처럼 살았던 나는 더는 시간을 허비할 수 없었다. 새로운 시절이 문을 열며 파도에 휩쓸린 조개처럼 기회들이 한껏 입을 벌리고 나를 바라보고 있는 듯했다. 다시 퍼즐을 맞추려 내 자리에 앉아 현생(現生)의 조각들을 찾아 나가야 했다. 나누어 짊어질 힘은 없었지만 스스로 일어날 힘은 충분했다. 그러니 갈 길을 찾아 어서 발걸음을 떼야했다. 패배의 기억이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었지만 굽은 강을 통과한 물살은 완만하고 안정적이 되었기에 이제는 쉬이 홍수에 떠밀릴 것 같지는 않았다. 다시 꿈을 꾸어야 했다.
꿈의 문이 닫혔거든 다시 일어나 다른 꿈을 꾸면 된다고 누군가 말해 주었다. 꾸어나 보고 하는 소리던가! 상실을 맛보고나 하는 소리던가! 다시 꿈을 꾸는 일이 얼마나 고된 일인지 알기나 하냐고 따져 묻고 싶었지만 그런다고 달라질 것도 없었다. 어차피 내 꿈은 나의 것일 뿐이었다. 마지막 청운의 꿈은 갔고 그럼에도 여전히 푸른 중년의 꿈이 다시 나를 끌어당겼다. 꺾인 날개가 안쓰러웠는지 내게로 슬며시 다가와 숨은 자락의 꽁무니를 보여 주었다. 그렇게 나는 돌고 돌아 최선과 헤어진 자리에서 차선처럼 글쓰기를 시작했다.
글이 원래부터 내 것은 아니었다. 글에게 미안한 이야기지만, 오래도록 흠모하며 흠앙하던 것도 아니었다. 뭐랄까 살면서 책 한 권 내고 싶은 바람이 없지는 않았지만 모두 커리어를 늘려 어깨에 훈장 하나 달고 싶었을 뿐, 순수한 동기가 아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시절의 열린 틈바구니에서 글을 다시 만났다. 녹여내고 싶은 이야기가 있기는 했으나 창작은 어디까지나 너에게나 해당되던 일이었는데 이제 내가 그 일이 시리도록 하고 싶어졌다.
‘아니 내가?’
‘내 까짓 게 무슨!’
‘가능한 일이긴 해?’
수많은 의문들이 나를 두드려대며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지만 언덕 너머 왠지 새로운 이야기가 나를 기다리며 어서 오기를 한참이나 바라고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다시 조용한 나의 현실을 박차고 무모한 비현실주의자가 되어 또 다른 내 꿈의 첫 줄을 뗀다. 지나간 시간을 과거 속에 묻으며 촘촘한 현재의 시간 속에서 스스로를 팽팽하게 당겨 글 사위를 이어 나간다. 더러는 설렘에 찬 동료들을 만나고 더러는 자작한 내 놀음에 홀로 취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꿈 판을 써 내리고 있다.
꿈은 무엇이었던가. 삶이고 희망이 아니었던가. 희망이 없는 삶은 죽은 자의 몫이기에 죽는 것보다 사는 것을 더 사랑한 나는 다시 꿈의 불씨를 지폈다. 위대한 작가씩이나 되려는 건 결코 아니지만 내 꿈 한 자락 말 한 자락이 누군가의 인생을 다시 지피는 불씨가 되기를 바라면서 오늘도 이렇게 써내린다.
누군가 말하지 않았던가! 성공은 그저 끝까지 해내는 자들의 것이라고. 그렇게 나는 오늘도 부족한 나의 인내와 용기와 은근과 끈기를 쥐어짜 내 생의 다음 정거장을 바라보며 걷는다. 너에게는 필요치 않을지도 모를 나만의 그릿(Grit)을 끊임없이 연마하면서 새로운 시간을 부수어 마침내 창조될 나의 시절을 그려 본다. 혹시 모르지 않는가. 내 운명의 다음 역이 해피 엔딩의 현수막을 걸고 나를 열렬히 기다리고 있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