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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열심히 살지 않는 노력.

by 풍또집

나는 두 아이의 엄마다.

나는 일을 하지 않는 전업주부다.



일을 밤늦게까지 하고 가정적이기도 한 나의 남편은

낮이고 밤이고 어디선가 항상 바쁘다.



그리고 전업주부이자 엄마인 나는

하루 대부분이 집에서 바쁘다.



하루 종일 종종거리며 무언가를 해도

계속해서 할 일이 있는 집안.



집이란 건 참 이상하게도

열심히 몸을 움직이면 움직인 티가 나지를 않는데

잠시 몸을 쉬면 기가 막히게 티가 나버린다.



집이라는 것과 아이라는 것을 동시에 돌봐야 하는 하루는

양손을 잡아당기는 줄다리기 줄 가운데서 이리저리 흔들리는 것과 같다.



아이를 보면 집이 엉망이고

집을 보면 아이가 엉망이다.



해서 나의 하루는


아이를 보고

밥을 해서 먹이고

집을 치우고

아이를 보고

밥을 해서 먹이고

집을 치우고


이렇게 단조롭고도 빠른 템포로 지나간다.



아이 둘을 배불리 먹이고 깨끗이 씻기고 약을 먹이고 잠자리에 눕혀 재우고 난 뒤의 어느 밤.

유난히도 아이에게 화가 나고 지치던 그날 밤.

어둠 속에 앉아있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오늘 왜 이렇게 화가 나지?'



그날은 유난히도 더 바쁘게

밀린 빨래를 하고

화장실 청소를 하고

미뤘던 전자제품 청소를 하면서도

큰 아이 밥, 둘째 아이 밥, 그리고 남편 밥과 남편 도시락까지 챙기며

바쁘게 세 남자의 밥을 든든히 먹인 날이었다.



주부란 것의 주된 일이


집을 깨끗이 청소하고

아이를 잘 돌보고

가족을 잘 먹이는 것이 아닌가.



그 자리의 책임을 다 한 보람찬 하루였음에도

보람찬 마무리가 아닌

짜증 섞인 엄마 얼굴과 울음이 묻은 아이의 얼굴로 마무리가 되었다.



생각해 보면 그런 패턴이 많이도 반복되어 왔다.



그저 몸이 지쳐서,

아이들을 챙기느라 밥을 먹지 못해서,

예민해진 탓이라 여겼다.



하지만 그날은 달랐다.

나의 밥도 든든히 잘 챙겨 먹었다.



왜 그럴까 되돌아보니 보이지 않던 원인이 보인다.



사람이란 존재가 본디

뭔가를 열심히 하고 나면 '보상심리'라는 것이 찾아오기 마련이 아닌가.



그런데 주부의 하루는 시작과 끝이 분명하지가 않고

지지부진 이어지는 듯 끊어지는 듯 이어져 간다.



그러니 보상이라 할 것이 딱히 없다.

육퇴 후 야식 혹은 새벽까지 즐기는 SNS 정도가 보상이라 할 수 있을까.

그런 건 다음 날 더 피로만 몰고 올 뿐이니 그다지 매력이 느껴지지가 않는다.



그렇게 보상심리가 채워지지 않은 채

다시 '열심히' 살아야 감당이 되는 하루가 다시 찾아오면

그저 해야 할 일을 한다.



그러다 보면 문득 그런 생각이 고개를 드는 것이다.

'매일 먹고 자는 것도 충족 안 되는 불쌍한 내 인생.'

'매일 제대로 된 대화 하나 없이 집에만 박혀 살아야 하는 불쌍한 내 인생.'



사실은 행복한 순간도 많은 매일임에도

보상심리를 채우지 않은 채 하루하루를 마무리를 해버리니

결국 행복은 지우고 자기 연민만 차오르는 삶이 되는 것이다.



그 자기 연민을 누르고 누르느라 인내심은 바닥이 나고

정작 인내심이 가장 많이 필요한 육아에 쓸 것은 남지 않는 것이라는 결론이 났다.



그래서 나는 게을러져 보기로 했다.

낮에 장을 봐야 아이가 오기 전 밥을 해둘 수 있지만

아이가 하원을 하고서야 아이와 함께 장을 보러 갔다.



장을 봐야 했던 시간엔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앉아있었다.



둘째 아이가 곤히 자던 그 시간에

가만히 앉아있는데 보이는 지저분한 거실은

가볍게 눈을 감고 말았다.



설거지 또한 눈에 밟혔으나

눈을 돌린다.



그리고 그날 저녁,

아이의 밥은 대충 생선구이를 사서 때우고



빨리 밥을 먹였으니 여유롭게 아이들과 산책을 나가본다.

그냥 집 앞 놀이터일 뿐인데

제법 따스해진 공기가 기분 좋게 뺨을 스친다.



간만에 나온 놀이터에 아이들도 신이 났다.

겁이 많은 첫째도

이제 막 걸음마를 뗀 둘째도

열심히 여기저기를 오르내리며 논다.



그 모습이 참 예뻤다.



아이가 잠에 들 무렵,

아이가 말한다.

"엄마 너-무 조아. 제-일 조아!"

"엄마도 풀이가 너무너무 좋아!"



돌연 아이가 잠시 침묵한다.

그리고는 말한다.

"어제눈 엄마가 풀이 안 사랑해짜나."



깜짝 놀랐다.

아직 세 돌이 안 된 아이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다니.

"풀아 엄마는 풀이를 언제나 항상 사랑해. 왜 그렇게 생각했어?"



"엄마가- 풀이하테- 화내짜나. 혼내짜나 풀이."



내가 누구를 위해 열심히 가족을 챙기고 집을 챙기는가.

무엇보다도 가족을 위한 일이 아닌가.

그런데 주객이 전도되어 가족을 위한 일을 하다 지친 엄마가

가족을 상처 주었다.



해서 나는 새로운 도전을 해보려 한다.

열심히 살지 않는 노력.



내 기준에 조금은 완벽하지 않아도

그 기준을 채우는 것보다는

그 기준이 존재하는 이유인 가족을 마음에 두는 노력.



나는 열심히 살지 않으려는 노력을 하는,

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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