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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아동 심리 상담을 받다(1).

미운 네 살

by 풍또집

시댁에 다녀왔다.

남편 없이 혼자 아이 둘을 데리고 가 하룻밤을 자고 오는 길이었다.



카시트에 앉히는데 4살 아이가 말했다.

"엄마 우리 어디 가는고야~? 함모니 집에 다시 가먼 조케따..~"



별것도 아닌 말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1박 2일 간 꾹꾹 눌러내던 화가 온통 뿜어 나왔다.

"넌 다시는 할머니 집에 못 가."


집에 돌아가는 차에선 차가운 침묵만 흘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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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은 다른 가정에서 평생 살아온 두 사람이 만나 하는 것.

시댁에 갈 때마다 이 사실을 뼈저리게 느낀다.



우리 집은 흔히 말하는 '츤데레' 집안.

살가운 말은 들어보기 어렵고 무심한 말이나 툭툭 오가지만 뒤돌아서는 말없이 알뜰살뜰하게도 챙긴다.



시댁은 사랑이 가득한 집안.

자식 사랑 유별나지 않다 하는 집이 얼마나 있겠냐만은

시댁은 그 사랑이 정말로 유별난 집이다.



세상에 잘난 사람 많아도 완벽한 사람은 없다.

하나를 잘하면 어떤 하나는 못하기 마련이지만 우리 시어머니 사전에 '못한다'거나 '모자라다'라는 개념은 절대 자식에게 존재하지 않는다.



남편이 어려서 의사에게 'ADHD 의심 소견이 있으니 검사를 진행해봐라.'는 말을 들었을 때

"의사가 뭘 모른다. 천재를 못 알아보네."라는 답을 했다는 일화도 있다.



자식에게도 그런 것을 손주는 오죽하겠는가.


어머님 앞에선 내 자식 흉은 그 어떤 것도 볼 수 없다.

'까분다.', '가만히 못 있는다.' 등의 말이 대표적인 예가 되겠다.

'아직은 00까진 모른다.'란 말도 포함이다.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아이기에

어떤 것이던 절대 못하게 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3년 넘게 며느리를 겪어오시며 많이 꺾어주셨고 맞춰주시지만

각별한 손주 사랑은 어디 안 간다.



밥을 앉아서 먹어도

돌아다니며 먹어도

누워서 먹어도

칭찬받는 게 손주의 삶.



어른에게 주먹을 휘두르고 발을 들어 보이고 물건을 부수고

사람 옷이나 소파 등에 마카 칠을 해도 어화둥둥 씩씩한 내 새끼일 뿐이다.

(다행히 동생이 태어나고 나서는 동생에게만큼은 손찌검을 못하게 하신다.)



그런 절대적이고도 무한한 사랑을 받고 있으면

나 같아도 어깨가 절로 으쓱하겠다.

그 사랑의 대상이 4살 남자아이니 어깨가 어디까지 올라갈지는 말 다했다.



처음 아이를 낳아 시댁에 갔을 적에는 우리 집과는 너무 다른 분위기에 솔직히 거북하기까지 했다.

갓 태어난 아이는 숨만 쉬어도 '천재다.'라는 말을 들었고,

이미 천재 피아니스트, 우주인, 사업가, 조종사 등의 엄청난 업적을 이뤄내는 멀티태스킹을 완성해내고 있었다.



결혼 생활을 이어가며 중간중간 부부 사이에 불화가 있을 때에 애먼 화살은 그런 시댁을 향하곤 했다.

"그렇게 평생을 우리 애 최고만 외치면서 키우셔가지고 남편 머릿속엔 실패란 단어는 일절 없으니 사고 치고 오면 싸 논 똥은 내가 다 치워야 되네."

이런 말도 했다.



그런데 사고치던 남편과 좀 더 살다 보니

참 시부모님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 피 튀기는 경쟁사회에서 아무 조건도 비교도 없이 내 아이 최고를 외치기가 어디 쉬운가.

그 어떤 상황에서도 그저 내 장점만 봐주는 부모가 있다는 게 아이에게 얼마나 큰 자존감의 원천이 되었겠는가.



내 남편은 참 단단하다.

그리고 콩깍지가 대단해서 12년 간 변치도 않고 사랑을 넘치도록 퍼부어주는 사람이다.



이 두 가지가 내가 남편을 평생 동반자로 택한 이유.

언젠가는 욕도 했던 시부모님의 남다른 자식사랑이, 딱 콩 심은 데 콩 난 격으로 남편에게 열매가 됐다.

나중이 돼서는 후배 엄마로서 배우고 싶어질 정도였다.



더군다나 4년이 좀 안 되는 시간 동안 며느리도 자식 범주에 조금 들어섰는지

며느리에게도 그 사랑이 조금씩 묻어나버리니

밀어내기만 하던 유별남은 별 수 없이 특별함으로 변해갔다.



해서 처음에는 기를 쓰고 시댁에서도 우리 집 규칙을 들이밀던 며느리는

'할머니 할아버지 집에선 어느 정도 허용' 팻말을 들었다.



그게 독이었을까,

시댁에 다녀온 뒤

난 아주 최악의 1주일을 보냈다.



To be contin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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