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집에 가.
아이는 집에서 못하던 것들을 할머니 집에선 맘껏 했다.
엄마는 시댁 눈치에 아들 눈치를 보며
최대한 '우리 집 규칙'을 들이밀지 않으려 애를 썼다.
밥상에선 앉아서 먹기, 그리고 폭력 쓰지 않기.
이 두 가지만 예외였다.
절대 양보가 안 되는 이 두 가지를 제외하고 엄마는 애를 써서 잔소리를 참았다.
대체 몇 가지의 잔소리를 삼켰는지는 세지 않았다.
구태여 화만 돋우는 일이었기에 눈을 감았다.
애써 흐린 눈을 한 지 반나절을 조금 넘겼던 저녁 무렵.
아이를 괜히 한 번 안아보았다.
내 기분도 한 번 속여볼까 하고 가식을 섞어 말을 건넸다.
"우리 애기, 누구 닮아서 이렇게 예뻐요?"
사실은 예쁘지 않았던 우리 집 미운 네 살이 대답 없이 엄마 품을 벗어났다.
그리곤 말했다.
"엄마, 집에 가."
딩-
황당했다.
내가 못 할 말을 했는가?
내가 아이에게 싫은 말을 했는가?
나와 아이 사이에 나쁜 기류가 흘렀었는가?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은 No.
그런데 왜 이 아이는 하필이면 엄마가 한 번 더 힘을 낸 딱 그 타이밍에,
딱 그때 엄마를 밀어냈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아이도 느꼈으리라.
엄마가 이를 악 문 그 찰나를 느꼈으리라.
하지만 그 짧은 찰나에 아이의 마음을 헤아리기엔
엄마는 뒤통수를 너무 세게 얻어맞아 정신이 없었다.
"너 엄마 없이 살 수 있어?"
"엄마 그럼 울면서 집에 간다?"
"응. 살 수 이써~ 엄마 필요 업써~"
"나는 할아버지 할머니랑 살아도 대~ 엄마 가."
"울먼서 가~"
다시 한번 못을 박아버린다.
고작 4살 아이가 박은 못이 크기도 하지.
마음에 타격이 크다.
이내 아이는 해맑게 달려가며 마무리까지 확실히 했다.
"하부~ 함무~ 고모는 어디 가떠?"
살갑기 그지없다.
결국 아이는 잠까지 할머니 할아버지 곁에서 자기로 결정했고
4살 아이에겐 꽤나 늦은 시간인 새벽 무렵이 돼서야 잠에 들었다.
엄마는 둘째를 안고 방에 누워
하하 호호 문을 뚫고 들어오는 행복한 수다소리를 들었다.
문 하나를 두고 안팎에 온도가 사뭇 다르다.
부글부글. 부글부글.
엄마는 잠들기 직전까지도 열을 내고 나서야 잠에 들었다.
그리고 아침에 눈을 떠서도 그 맘이 식지를 않았더란다.
어른이 돼서 어른스럽지가 못했다.
방 문 밖으로 나가니 아이가 말을 걸어왔다.
엄마의 못난 맘은 숨어있질 못하고 말로 삐져나오고야 만다.
"엄마 필요 없다며? 할아버지 할머니한테 가서 말해~"
하지만 상대는 오기 빼면 시체인 4살 남자아이.
엄마 투정이 먹힐 리가 없다.
미련 없이 휑 돌아서 할머니에게로 달려갔다.
아버님은 아이를 낳은 직후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며느리, 아들과 싸워오시는 것이 있다.
바로 인기투표.
엄마 아빠보다도, 그리고 할머니 보다도
손주에게는 할아버지가 최우선이기를 바라며 넌지시 아이를 떠보곤 했다.
원하는 답이 나오면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술을 드시는 날이면 풀이(가명)는 내 꺼라며 다 비키라고 메시지를 보내기도 하였다.
아이가 할아버지와 시간을 보낸 뒤 헤어질 때, 더 있겠다고 떼쓰지 않고 부모를 따라가면 서운하다고 따로 연락이 오기도 했다.
나는 그런 아버님에게 결코 지지 않는 며느리였기에
'왜 아빠 엄마를 아이에게서 떨어트려 놓으려고 하면서까지 아이 사랑을 얻으려 하는가.'에 대한 나만의 투쟁을 조용히 이어왔었다.
그래서 이 짧은 1박 2일간의 여행동안
엄마는 더욱 부아가 났다.
아이들에게 아무리 잘해줘 봐야 결정적인 순간엔 부모가 최고일 거라는 엄마의 믿음은 산산이 조각이 났고
사실 그 믿음은 금방이라도 깨질 듯 위태로운 믿음이었기에
외면하던 것이 현실이 되어 더 분했다.
이 분한 마음이 전달되어 그랬던 걸까,
'어른'이라는 사실을 어렵게 기억해 내고 남은 시간은 열심히 아이를 얼르던 엄마였음에도 불구하고
할머니 할아버지 댁을 떠난 뒤에 일이 터지고야 말았다.
To be contin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