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23. 피곤해서 죽을 거 같아.

by 풍또집

아이의 3번째 생일을 일주일 정도 앞둔 어느 날 밤,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아이가 내게 말했다.

"피곤해서 주글꺼가태."



.

.

.



엄마 아빠의 전공이 언어 쪽이어서일까

우리 집 첫째 아이는 어휘력이 좋은 편이다.



그저 아직 어려서라고 치기에도 숫자에는 영 약한 모습이지만

단어를 잡아내는 능력은 기가 막힌다.



우리 부부는 아이에게 *유아어를 잘 쓰지 않는다.

그렇다고 어른들이 쓰는 단어에 대해 따로 설명을 해주는 편도 아니다.

*[유아-어] 유아가 말을 배우기 시작하였을 때 사용하는 유아 특유의 언어. 또는, 어른이 유아를 대할 때에 사용하는 말. 맘마·응가 등.



아이가 뜻을 물어오지는 않기에

대략적인 문맥으로 이해하고 있겠거니 여기며 여러 단어를 흘러 보내는 시간들이 지나고 나면

어느 날엔 아이 입에서 부모가 썼던 단어들이 자연스레 나온다.



그것도 단 한 번 언급했던 단어들이,

놀라울 정도로 아주 적절한 상황에 말이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엄마 이건 오르막길이야? 내리막길이 끗나서 나온고야?"

"엄마, 나는 추운데 엄마한테 양보해주께 문 여러-? 내가 양보해죠서 시언하지-?"

"엄마 저 집은 망한고야? 왜 망한고야?"

"엄마! 내가 동동이(동생) 용서해줘떠."



이런 식의 대화를 28개월 정도부터는 쭉 나눠왔으니

더더욱이 아이에게 유아어를 사용하는 일은 줄어갔고

마치 아들이 아닌 친구와 대화하는 느낌으로 말을 나눈 날이 늘어갔다.



해서 너무 편해졌던 것일까.

아이는 소위 바른말이라고 하는 것들만 입에 담아내지는 않았다.



"넌- 정말 나쁜 새끼야."

입을 다물 수 없었고 귀를 의심했다.



아이 입에서 그 말이 다시는 나오지 않기를 바라며

좋은 말이 아님을 알려주는 것이 몇 차례 오고 가는 동안

아이는 꽤나 여러 번 '새끼'라는 말을 안 좋은 감정과 섞어 내뱉었다.



물론 우리 부부가 '새끼'라는 말을 쓴 건 아니었다.

'아구, 내 새끼'라면 모를까 말이다.



아마도 아파트 단지 내에서 어린이집 야외 행사를 했던 날

단지에서 놀던 초등학생 형아들에게서 들은 건 아닐까 싶었지만

어디서 들었는지가 뭐가 중요하겠는가.



지금의 아이는 외부 생활보다도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양분을 먹고 자라는 어린 나이.



아이는 매일 마주 보는 부모 입에서 들은 말이라면

자기 입에도 기어코 담아내고야 말았다.

"아이쒸-"

"하지 말기는 뭘 하디마- 그냥 하는고지."


잔뜩 눈을 흘기는 시선마저 완벽하다.




"피곤해서 주글꺼가태."



이 말을 들은 날도

마냥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다.



그날은 어린이집을 가지 않은 날.


낮부터 사촌언니네 아이들을 만나 신나게 모래놀이를 하고

여기저기 드라이브를 하고

저녁도 거하게 외식한 뒤

하루를 함께한 할머니를 댁에 모셔드리고 집에 돌아가는 길이었다.



"풀아, 피곤하지?"

"응- 피고내-"

"피고내서 주글거가태-"

"지베 가서 얼룬 씻고 바로 자자-?"



처음에는 만 2세의 아이가 '~해서 죽을 거 같다.'라는 말을 쓰는 것이 놀랍다 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바로 뒤이어 이런 생각을 했다.

'애가 이런 말을 쓰는 게, 맞는 건가?'



어른들도 진짜 죽음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은 아니지만

어쨌든 죽음이라는 개념을 빌어다 쓰는 관용적 표현이 아닌가.



여물지도 않은 저 여린 살이

죽음이라는 개념을 빌어 이야기하는 것이 썩 유쾌하진 않더란 것이다.



아이는 부모의 거울이라고 하는 말이 한 치의 거짓이 들어가지 않은

극사실주의적 말이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말을 하지 못할 때의

지금보다도 한참 어린 아기일 때부터

아이는 부모를 흉내 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가 말을 하기 시작하고

한 번 들은 말도 잊어버리지 않기 시작하니

더더욱 그 말이 살에 와닿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0년을 넘게 그리 살아온 내 말습관과 행동들이

영 바뀌는 것이 쉽지가 않다.



고집스런 내 습관들이,

아니 내 인생들이,



마냥 맘에 들기만 하는 것은 아닌 그것들이

내 아이의 인생에 묻어버릴까.

아이를 재운 밤이면 걱정이 고개를 드는 요즘이다.



내가 내 자식에게 물려줄 것이 많지는 않지만

어디에서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기품과 인품만은 아이에게 주기 위해



내 아가야,

엄마가 노력해 볼게.



keyword
월, 수,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