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동생이라는 존재가 생긴 지 어언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혼자 엄마를 독차지하던 지난 2년과는 달리
아이가 무언가를 '공유'하는 법을 배워야만 했던 1년은
순간이동이라도 한 듯
눈 깜짝하니 지나가버린 느낌이다.
아마 아이에게도 그러하지 않았을까,
아니면 살며 처음 맞닥뜨린 고난에 지쳐
억겁의 시간과도 같았을까,
그 속은 자신만 알겠지만은
그래도 어찌저찌 그 시간을 제법 형아답게 견뎌냈다.
아이가 태어나 본 인간 중 가장 작았을 인간이 우리 집에 처음 왔을 때
(어려서 거울은 보지 못했을 테니)
(아니 사실 살면서 첫째는 둘째만큼 작았던 적이 없었다.)
혹여나 자신이 아닌 다른 이에게 사랑을 나누는 엄마에게 상처받을까 걱정이 됐던
여전히 작고 여렸던 나의 아기는
걱정과는 달리
자신의 동생을 어루만지고 뽀뽀를 해주었다.
그리고 가장 아끼는 뽀로로 사탕을 나눠주며
그 작은 인간을 빠르게 품어주었다.
그렇게 형제로 함께 살아간 시간이 무려 1년,
아이 인생의 1/3을 함께 보냈다.
어느 날은 웃어주기도 하고
어느 날은 고함을 지르기도 하고
어느 날은 동생이 들어찬 엄마 품을 시기하며 보냈던 그 시간 중
아이는 감사하게도
동생을 대부분 사랑해 주었다.
엄마인 나조차도 내 아이를 온전히 사랑만 주지 못하고
화도 냈다 짜증도 냈다 미안해서 눈물을 흘리건만
아이는 엄마가 자신에게 내는 화의 반의 반도 내지 않으며
대부분의 시간을 둥글게 웃으며 동생과 함께 지내는 법을 배웠다.
(아이의 질투는 식사시간에만 도드라지게 올라왔을 뿐이다.)
그리고 이제 어느 정도 동생도 사람 짓을 해내는 지금
아이는 동생과 그저 공존하고 이해해 줄 뿐 아니라
동생을 귀여워하는 법까지 스스로 배웠다.
힘 조절이 안되어 엄마 얼굴을 종종 때리는 둘째 아이.
그런 둘째 앞에서 잉잉잉. 우는 시늉을 해 보일 때가 있었다.
그런 엄마를 눈여겨보았는지
아이가 돌연 말했다.
"엄마! 동동이하테 잉잉잉- 해바."
푸핫.
예상치도 못한 지령에 우선 한 번 호탕하게 웃어주고
아이에게 말한다.
"풀이가 해봐~"
"잉잉잉. 잉잉잉."
둘째 아이는 무슨 일이냐는 듯
연신 고개를 숙여 형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만족스런 반응이었는지 아이는 히힛- 웃으며
다시 고개를 든다.
이것이 동생과 놀아주는 10가지도 넘는 방법 중 하나이다.
또 언제는 짜증을 내며 엄마를 때리는 동생에게 엄마가 이놈- 혼을 내자
아직 말을 못 하는 동생 대신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엄마! 동동이는 아가라서 구래 아지익-"
엄마가 참으로 머쓱해지는 일침이다.
하루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동생의 오동통한 볼을 부비고 있기도 했다.
"귀여운데? 너무 귀여운데?"
두툼한 두 볼테기가 엉겨 붙어
조물조물하는 모습은
세상 그 어느 것보다도 부드럽고 말랑하고 따뜻한 것이었다.
그렇게,
마냥 아기 같던 내 아이는
자신보다 더 작은 아기가 우리 집에 오는 순간
쑤욱 자라나더니
우리 집 형아 노릇을 톡톡히 해낸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굳게 다짐했던
'첫째에게 뒤딸린 동생에 대한 책임을 묻지 말자.'
라는 생각.
너무도 의젓하게 형의 자리를 만들어가는 아이 앞에서
쉽게도 무너진다.
작디작은 손발을 가진 아이가
그 작은 것으로 그토록 의젓한 모습을 보이니 어찌 의지를 안 할 수 있을까.
작은 나의 아이에게 자꾸만 형의 역할을 요구하는 엄마가 되곤 한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사진첩을 보면
내 눈이 아닌 렌즈를 통해 본 모습 이어서일까,
카메라로 담긴 아이의 모습은 지극히 사실적이게도 그저 한 아기일 뿐이다.
이 아이의 작은 시절이
책임이 무거운 형의 시간이 아니라
엄마 아빠의 사랑을 흠뻑 받는 그저 어린 한 아이로 남을 수 있도록
애를 써서 노력해 본다.
미안함과 사랑을 담아
오늘 밤에도 아이에게 듬뿍 속삭여 준다.
"풀이를 세상에서 제일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