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21. 엉덩이 씻어.

닮은 구석

by 풍또집

사람에게는 오감이 있다.

그리고 각자마다 더 예민하게 사용하는 감각이 있다.

나는 후각이 그러하다.



나는 엘리베이터에 아는 이가 탔었다면

그 공간에 남은 채취로 그이를 알아차릴 수 있는 사람.



어떤 공간에 들어섰을 때

처음 코에 느껴지는 향이 좋게 느껴지는지 역하게 느껴지는지에 따라

순간의 기분이 달라지는 사람.



그리고 그걸 꼭 닮은 사람이 하나 있다.

바로 나의 아이.


.

.

.



우리 집에는 매일 울리는 알람이 있다.



"엄마! 동동이 응가 싸써!"

"아빠! 동동이 응가 싸써!"

"아이- 동동이 응가 냄새난다니까아-?!"



이제 막 돌이 된 동생이 기저귀에 큰 일을 보면

아이는 누구보다 먼저 냄새를 맡고 엄마 아빠에게 알린다.

누군가 바로 달려오지 않으면 재방송도 마다하지 않는다.



아이의 이런 센서는 '응가'에 그치진 않는데,


그저 어느 공간으로 흩어 사라질 방귀는

언제나 아이의 코를 지나서 가는 법이라도 있는 건지



작은 방귀던 큰 방귀던

조용한 방귀던 요란한 방귀던 상관없이

어김없이 알람이 울린다.



오늘은 내가 그 센서에 걸리고 말았다.

소리도 없이 찰나의 순간.

얼른 자리를 뜨려는데 아이가 소리를 높인다.



"엄마! 방구 껴찌!"

"엄마 냄새 나자나-"

"씨스러 가-!"



인상을 잔뜩 찌부린 채 얘기한다.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퍽 억울하다가도

그 질색하는 표정을 보니 억울할 새도 없이 박장대소가 터진다.



"아이- 웃지 말라니까?"

"엉덩이 씨서 얼른-"



엉덩이를 씻으라니!

웃지 말라는 아이의 말이 무력하게도 터진 웃음은 멈추질 않는다.



생긴 것은 아빠를 똑 닮아서는

저런 모습은 엄마를 꼭 닮았다.



자식이라는 것이 그렇다.

내 몸에서 나왔음에도 분명히 분리된 다른 개체라는 것을 알지만

여기서 툭, 저기서 툭,

엄마 아빠 모습이 튀어나온다.



그 모습은 예쁜 순간에도 미운 순간에도 있다.

예쁜 순간엔 닮아서 더 예쁘고

미운 순간엔 닮아서 더 얄밉다.



저 닮음이 유전에서 나오는 건지

학습에서 나오는 건지

영 분명치가 않지만



분명한 게 한 가지는 있다.



나로부터 시작된 저 작은 생명체가 나의 미움을 닮지 않도록

내 모습 중 그래도 좀 덜 미운 모습을 계속해서 찾게 된다는 것.



육아라는 것이 참 내 밑바닥을 보게 되는 일이지만

그 밑바닥 중에서도 나은 모습을 골라 집는 것이

그게 바로 부모가 되어가는 과정인가 보다.



나를 닮아 예쁘고 나를 닮아 미운 이 아이를

나는 많이도 사랑하나 보다.



어쩌면 숨기고팠던 그 냄새가

만천하에 드러났는데도 그저 웃음만 나는 걸 보면.

keyword
월, 수, 금 연재
이전 20화#20. 저리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