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를 먹다가
아이의 하원 전
미리 저녁을 준비할 때도 있지만
아이 하원 후 샤워까지 시키고 나서야 저녁을 해먹일 때도 있다.
그렇게 하원 후 요리를 해서 저녁을 먹일 때면
저녁시간은 다소 늦춰지기 마련이다.
게다가 먹는 걸 좋아해 하루 종일 먹을 걸 찾는 아이.
밥을 먹고 나면 꼭 묻는다.
"엄마 이제 나 뭐 머거?"
"엄마 풀이 머그꺼 차자봐-"
아슬아슬하게 저녁 7시를 조금 넘겨 저녁식사를 시작했던 날,
밥을 다 먹고 나서도 후식을 찾기에 사과 하나를 깎아주었다.
한참 사과 먹는 걸 지켜보다가
세 조각 남은 사과를 보고 장난기가 돈 엄마가
"엄마는 하나도 못 먹었는데?"라고 시험을 한다.
그러자 마치 부처 같은,
아이가 짓기엔 다소 인위적인 인자한 미소를 띠며
순순히 사과 한 조각을 내민다.
그리고 뒤이어 자신도 한 조각 집어 들어 입에 넣는다.
이제 남은 사과는 한 조각이 됐다.
엄마가 은근한 눈빛으로 그 마지막 것을 바라보았다.
아이는 당황한 웃음을 지으며 그릇을 자신의 몸 가까이로 당긴다.
그래도 시선을 거두지 않는 엄마에게 뭐라도 말을 해야 할 것만 같았는지
머쓱해하며 말을 잇는다.
"ㅎㅎ... 마지마근(마지막은).. 내가 머그껀데..?"
흐흐.. 소리를 내며 어색한 웃음을 지어낸다.
민망함과 당황스러움을 담은 얼굴을 보며 언제 이런 감정을 느낄 정도로 컸나 싶으면서도
사과 그릇을 소중히 쥐고 있는 작은 손을 보면서는 그래 너도 아직 아기지.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다.
사과 한 알을 두고 아옹다옹 떠들고 웃다가
문득 시계를 보니 시곗바늘은 어느새 숫자 8을 지나쳤다.
8시면 째깍 잠에 들던 아이였는데
애 둘을 혼자 챙기다 보면 시간이 어찌나 빨리 가는지
취침시간은 점점 뒤로 밀리기만 한다.
(다 먹인 뒤 아이 둘을 씻기고 로션을 바르고 재우기까지 약 40분의 시간이 더 소요된다.)
"아이고.. 이거 먹고 너네 언제 자냐."
"다 머꼬 자지 멀 언제 자-"
한쪽 눈썹을 힘껏 올리며 말한다.
정말이지,
세상을 3년도 채 살지 않은 아이가 저런 말투로 저런 말을 뱉어내면
맥이 탁- 풀리며 웃음밖에 나지 않는다.
동글동글 아기 같은 얼굴에
그에 맞지 않는 또래보다 훨씬 큰 덩치와 키.
나이에 비해 잘 구사하는 어휘들 덕에
나는 가끔 이 아이가 다 큰 아이 같을 때가 있다.
형이라는 이름도 한몫한다.
그래서 다 큰 아이에게 바랄만한 것들을 바라곤 한다.
그렇지만 소중히 껴안은 사과 그릇을 볼 때
어쩌다 낮잠 자다 깨어 엄마 아빠 품에 안겨 오열하는 모습을 볼 때
그리고 어쩌다 동생 없이 엄마와 둘이만 남았을 때 안아달라 품에 쏙 안기는 신난 아이 얼굴을 볼 때면
아이의 어린 나이가 그제야 생각이 난다.
둘째 아이와 비교하면 크지만
그냥 두고 보면 작은 내 첫 번째 아기.
크게도 작게도 느껴지는 아이가
큰 건지 어린 건지 생각을 할 때면 이런 생각이 든다.
나에게 새 세상을 열어주고
진짜 사랑을 처음으로 알려주었던 작은 아기가
부모라는 세상을 살다가 언젠가는
친구라는 세상
학교라는 세상
사회라는 세상을 살게 되기까지
얼마의 시간이 남았을까 하는 그런 생각.
.
.
아이가 내 품을 떠나
세상을 살아내느라 바쁜 그의 뒷모습만 보게 되었을 때
여기저기서 받은 생채기로 가끔은 그 뒷모습이 무너져 내린 때도 있을 것이다.
세상이 아이에겐 가혹하고 잔인하여
그저 살아남느라 상처 입은 줄도 어떻게 치료하는 줄도 모를 때
가족이라는 둥지를 미처 떠올리지 못하더라도
어쩌면 지금의 어린 나이가 첫째라는 책임과 의무로 차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적인 사랑과 어리광으로 꽉 찬다면
자신이 누구인지 찾지 못해 방황할 때
갑자기 떠오른 어린 시절에 난 이렇게 사랑받는 사람이었지, 하고 고개를 들 힘이 되어주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과 하나에서 시작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잠자리에 든 아이를 세게도 꼭 안아본다.
진하게 이 품이 새겨져
십 년, 이십 년, 삼십 년 뒤에도 아이에게 온기로 남아주길 바라며.
P.S. 첫째라서 든든하고 첫째라서 안쓰러운 내 아기야.
맘껏 어리광 부리지 못하게 형아 자리를 들이밀어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