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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엄마 내가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아?

만 3세의 고백

by 풍또집

4세 내 아들에게는 요즘 강력한 무기가 생겼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라고 했던가.


불과 두 달 전만 해도

조금이라도 싫은 소리를 들었다 하면 몸을 부들거리며 화를 내던 내 아이가

이제 엄마를 원하는 대로 주무를 수 있는 기가 막힌 방법을 찾은 것.



"엄마, 내가 얼-마나 사랑하는 주 아라?"

이제 만 3살 하고도 4개월, 또래 아이들에 비해 말을 잘하는 편임에도

정확지 않은 발음으로 이런 어엿한 말을 한다.



이 질문이 나오는 순간은 세 가지.

1. 자기 전

2. 어느 순간 엄마와의 사이가 마음에 들 때

3. 그리고 혼날 때



엄마가 인상을 찌푸리고 언성이 높아진다 싶으면

아이는 엄마 화에는 대답도 없이

돌연 사람 좋은 미소를 띠며 이 필살기를 쓰는 것이다.



처음에야 피식 웃음이 터지며 사르르 녹았지만 이내 익숙해질 줄 알았던 그 말은

여직 효과가 확실하다.



아들 둘 엄마의 화는 예고도 없이 활화산처럼 폭발적으로 터지기 마련인데

아이의 온화한 표정과 사랑이라는 단어가 합쳐지면

그 무섭던 기세가 바로 한 풀 꺾여버린다.



이제 채 4년을 채워 살지 못한 저 아이가

분위기 하나 풀어보겠다고

자신의 감정을 누르고 표정을 만들고 말을 꺼낸다는 게 참 갸륵할 뿐 아니라



아이가 몇 번을 써먹어도

도무지 아이의 사랑이라는 단어는 익숙해지지도 않고 매번 설레이게 하기 때문이겠지.


.

.

.


요즘 새로 일을 다니며

일과 나 자신과 아이들에게 온통 몰두를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핸드폰과는 거리가 멀어졌다.



그래서일까

어지럽고 자극적인 세상으로 가득하던 내 알고리즘도 함께 건강해졌다.



퇴근길에 오랜만에 켜 본 sns에서

'엄마를 용서하는 노래 가사'라는 제목의 영상이 떴고

거기서 이런 댓글을 봤다.



부모의 사랑이 절대적인 줄 알았다. 하지만 아이를 낳아 키워보니 그렇지가 않더라. 아이가 주는 사랑이야말로 조건 없이 순수하고 절대적인 사랑이다.



전적으로 공감되는 말이다.

아직 내 첫 번째 아이가 세상에 제대로 발을 들이지 않은 아기여서일까,

나는 저 말에 완전히 동의한다.



부모는 아이가 건강하기만을 바란다 하지만



아이가 건강을 얻고 나면

부모의 입맛에 맞는 얌전함이라던가

부모가 좋게 여기는 성적이라던가 열정 따위를 바란다.



아이가 부모에게 바라는 것은 두 가지뿐이다.

사랑

그리고 존중



사실 존중 정도는 빠져도

아이는 조금 입술을 삐죽일지언정 부모를 사랑하지 않는 방법을 모른다.



그리고 아이가 나를 떠나는 법을 모른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거기서 오는 자신감으로 내가 아이에게 내 기준을 들이밀며 협박이라는 것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 협박은 제대로 먹힌다.

아이는 언제나 서운한 마음을 쉽게 접고

다시금 사랑을 달라며 품에 안긴다.



상대가 어떻게 하는지에 달려있지 않고 그저 있는 올곧고 직선적인 마음.

이 얼마나 절대적이고 순수한 것인가.



나는 이 작은 생명체에게

오늘도 배운다.



감정을 조절한다는 게

능력적으로 쉽지 않은 나이임에도

엄마 하나랑 잘 지내보겠다며 감정을 조절하고 웃어 보이는 저 의지.



엄마를 마음에 품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를 이해하고 용서하는 너른 사랑.



내가 30년을 넘게 살아왔던 세상보다

더 크고 높은 세상을 보여주는 너를

엄마는 존경하고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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