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라요스 프라파판, 2022 (27th BIFF)
아논은 사뭇 예외적인 인물이다. 주변 인물들과 함께 앵글 안에 들어와도 그림체가 좀처럼 조화롭게 섞이지 않고, 같은 교복을 입고 있음에도 왠지 다르다는 인상을 풍긴다. <모범생 아논>은 이 이질적인 느낌을 전하기 위해 공을 들이는 영화다. 박박 깎은 머리에서부터 ‘나는 다르다’는 아논의 항변이 읽힌다. 그의 삭발한 머리는 오프닝 씬에서부터 도드라진다. 부감으로 잡히는 검은 머리칼의 학생들 사이, 유독 눈에 띄는 한 사람이 있다. 구령대에 올라와 모범생상을 받는 그가 아논이다.
대조적인 톤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유지된다. 왜 끝내 조화를 이루지 못할까. 내게 이 영화는 근현대적 성격이 혼재하는 태국의 비동시성을 꼬집는 영화로 보인다. 제3세계의 성장은 필연 압축적이고, 의식과 물질 사이의 상이한 성장 속도가 시공의 균열을 만든다. 이렇게 생겨난 크레바스에 알알이 박힌 것이 기회다. 허나 선택을 통해 만들어가는 경로는 결국 한 개인을 숙명으로 밀어 넣어 유폐시킨다. 이 영화의 주인공 아논 또한 비동시적인 역사의 틈 사이에서 고유성을 상실한 전형적인 인물이다.
<모범생 아논>에서 서사의 주체는 비교적 명확하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어른들은 사실상 고정된 배경으로 기능한다. 학교 교사들과 학원 강사에게는 캐릭터로서의 역동성이 부재하다. 이들은 제도에 굴종해 더 이상 움직일 수 없는 객체에 가깝다. 반면 이 영화의 카메라는 학생들의 활동성을 강조한다. 이들의 일과를 담는 쇼트는 쾌활하고 동적이다. 움직임을 가질 수 있는, 그러니까 ‘인물’로서 작동하는 자는 학생이다.
이들 학생의 행선은 크게 세 가지 선형으로 정리할 수 있다. 동(動)에서 정(靜)으로의 움직임, 정에서 동으로의 움직임, 끝으로 정에서 정으로 파고드는 움직임이다. 아논은 이 영화에서 첫 번째 유형에 속하는 거의 유일한 학생이다. <모범생 아논>의 카메라가 주목하는 건 아논의 상태다. 오프닝 씬에서 아논은 구령대에 위풍당당이 올라가는, 움직이는 존재다. 반대로 결말에 이르러 카메라는 아논이 움직임을 잃고 벤치에 주저앉는 모습을 응시한다.
서사의 전개에 맞춰 활동성을 상실해가는 아논은 이외의 학생들과 대조된다. 이들 대부분은 정에서 동으로 자기 동선을 만들어간다. 정에서 정으로 향하는 일례를 보여준다만, 이는 불가역적인 경우다. 오히려 감독은 쇼트 연결을 통해 이 무명의 학생과 아논을 대조시키며 아논의 모순을 들춰내려 한다. 이름 모를 학생은 코로나로 아버지가 사망하자 교장실에 들려 자퇴서를 제출한다. 소라요스 감독은 이 씬을 아논이 친구들에게 유학 고민을 털어놓는 씬에 바로 이어 붙임으로써, 유폐됨이 아논의 자발적 선택이었음을 부각한다.
그럼으로써 아논의 유학은 일종의 망명처럼 보인다. 그러나 공항에서 흘렸던 눈물이 동참하지 못한 자의 비애로 읽히지는 않는다. 오히려 반대된 경로를 밟은 자들이 상기된다. 오프닝 씬에서 구령대 앞에 일렬종대로 서 있는 학생들은 정주한 채로 앵글에 담기기 시작한다. 진열된 사물을 전시하는 듯한 카메라 앵글이 이들을 고정된 존재로 보이게끔 비춘다. 그러나 영화가 전개되면서 이들은 자기 보폭을 통해 운동성을 획득해나간다. 와니 선생의 두발 단속과 체벌에 맞서 수업거부운동을 벌인다.
정에서 동으로의 전환이 선명해지는 순간은 시위 현수막을 내걸 때다. 시위에 동참하는 학생들이 선언을 위해 택하는 방법이 독특하다. 이들은 깃발을 세우지 않는다. 되레 이들의 현수막은 상층 복도에 달려 밑으로 펼쳐 내려진다. 영화 내내 줄곧 등장하던 상징물들의 존립 방식과 반대다. 왕궁과 동상, 벽은 모두 아래서부터 위로 향해 고정물이 된다. 반면 학생들은 상승이 아니라 하강의 움직임을 택함으로써 고정된 물성을 벗어던짐과 동시에, 줄곧 부감으로 자신들을 내리쬐던 카메라의 관점을 뒤틀기로 한다.
부산국제영화제 GV에서 소라요스 감독은 인서트된 푸티지가 실제 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시위의 촬영 영상이라고 설명했다. 이 영화에서 그 현장을 거니는 자는 아논이다. 카메라는 아논이 광장 복판을 지나가는 장면을 애써 함께 트래킹한다. 그의 동선을 따라 왕의 초상, 그리고 태국 왕궁이 비춰진다. 이윽고 시위 현장과 마주한다. 권위주의와 권위주의를 해체하려는 시도가 혼재되며 벌어지는 비동시적인 혼란이 그를 휘감는다.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영화는 아논에게 또 한 번의 선택지를 들이민다.
아논이 끝내 조화되지 못한 건 예견된 수순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트래킹 쇼트에 앞서 아논은 너무 쉽게 타협하기 때문이다. 그는 동상화된 자기를 활용할 줄 안다. 우수 학생으로서 자기 이미지의 가치를 산정하고 학원에 세일즈한다. 시위 현장 근처를 지나가기 전에도 아논은 학원에 들러 돈을 받고 대가로 학원생인 척을 했다. 자기 권위를 양분 삼는 그는 시위에 어울릴 수 없다. 정작 아논의 빈자리를 채우는 건 검은 머리를 하던 학생들이다. 검은 후드를 뒤집어쓴 채 고개를 들지 못한 건 아논의 마지막 양심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