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有朋自遠方來, 不 亦樂乎!
유붕자원방래 불 역락호
해석
벗이 먼 지방으로부터 찾아온다면 즐겁지 않겠는가!
― 『논어』 (현대지성클래식 23 / 소준섭 옮김)
‘붕(朋)’이란 누구를 말하는 걸까?
해석에 ‘벗’이라고만 되어 있지만, 단순한 친구나 동료로 보기엔 어딘가 부족하다.
공자가 말하는 ‘붕(朋)’, 곧 그 ‘벗’은 학문을 교류하며, 마음이 통하는 이를 말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이 사회는
자유와 인권, 평등 위에 세워진 법과 제도로 유지된다.
이런 시대에는 이 구절은
‘도덕책에 나올 법한 말’, 혹은 ‘꼰대의 말’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공자가 살던 춘추전국시대의 맥락에서 이 구절을 다시 들여다보면,
그 말이 담고 있는 깊이와 진정성은 사람과 사람사이의 울림이 된다.
앞서 말했듯, 춘추전국시대는
기존 체제가 무너지고 새로운 틀이 형성되던 시기였다.
당시 ‘학문을 교류한다’는 것은 보통 같은 계급 안에서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벗이 먼 지방에서 온다’니.
그건, 계급도, 신분도, 심지어 적대적 관계조차 뛰어넘을 수 있음을 말한다.
공자에게 ‘붕’은
함께 공부하고, 마음을 나누고, 뜻을 주고받을 수 있는 이들이었다.
누구든, 어떤 배경이든, 결국 중요한 것은
오롯이 마음이 통하는가였다.
공자는 끝내 권력의 중심에서 밀려났다.
천하를 떠돌았고,
이상(理想)을 펼 수 없음을 알고
그 뜻을 이어갈 이들을 기르는 데 집중했다.
그래서 이 말은 누군가에겐
'패자의 자기 위안’처럼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새로운 세계를 꿈꾸는 내게는,
이 말이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다.
오랫동안 나는 관념적인 것, 이론적인 일에 더 끌렸다.
인간관계에는 별 흥미가 없었다.
아니다, 솔직히 말하면
관계 속에서 상처받는 일이 많았고,
그때마다 나는 숨어버렸다.
관계를 위해 에너지를 쓰는 게
점점 피로하게 느껴졌고,
그 피로함을 견디기 위해
나만의 견고한 세계를 만들고자 했다.
참으로 미성숙한 인간이었다.
내면은 성장을 멈췄고,
스스로도 이질적인 존재처럼 느껴졌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 『데미안』, 헤르만 헤세
그 알을 깬 후,
내가 새롭게 만난 사람들은
정말 ‘먼 지방에서 찾아온 벗’들이었다.
2년 넘게 함께하고 있는 독서 모임의 참석자들,
어반스케치 수업에서 만난 짝꿍,
그리고 최근 전자책 작업을 함께 한 동지들…
새로운 세계는,
스스로 알을 깨고 나올 때 비로소 시작된다.
그리고 그 문 앞에서
누군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함께여서 더 좋다.
그것이 지금,
내가 사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