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배움을 생각하다

배움이 기쁜 순간

지인들 사이에서 안부를 묻는다면

대부분 '잘 지내고 있니?'


오랜만에 소식을 전하는 안부라면

'요즘 뭐 하며 살아?'


하고 묻게 된다.


어느 날, 안부인사에도 무게감이 느껴졌다.

마치 '네 쓸모를 다 하고 있니?'라는 물음 같아서...

오랫동안 배워왔지만, 학교를 벗어나자 '배우는 사람'이라는 처지가 서글펐다.


사회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 망망대해를 떠 다니다 심해 속으로 가라앉은 무가치한 사람이 된 듯했다.



암흑기 같은 시절이 지나고

비교적 안정된 평범한 삶을 누리고 있는 현재,

그때의 나에게 위로를 건네고 싶다.

인생은 '배우고 익히고 실천하는 것의 연속'이니

지금 잘하고 있다고!




[논어]는 첫 문장부터 매력적이다.




원문


子曰: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자왈 학이시습지 불역열호


해석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배우고 때에 맞춰 이를 실천하니 이 아니 즐거운가


(논어_현대지성클래식 23_소준섭 옮김) 중...



자본주의와 패권경쟁이 삶의 속도를 재촉하는 사회에서, 나는 친구를 만들기보다

정점을 오르기 위해 쉬지 않고 달려왔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배움'이란 단어를 다시 정의해야 한다는 것을.


'나는 왜 배우고 있는가?'

'왜 배움이 공허하다고 느껴졌는가?'




[논어] 속 공자는 배움의 쓸모를 말하지 않았다. 그는 다만 배움과 실천, 그리고 그 안에서의 기쁨을 이야기했다. 그가 살던 춘추전국 시대는 철기 문명의 도입으로 부국강병과 패권 경쟁이 치열했고 정치체제는 노예사회에서 관료사회로 이행 중이었다. 학문은 관학에서 사학으로, 정신노동이 상품화되던 심화되던 시기였다.

그런 시대에 공자는 말하고 있었다. 배움은 삶의 도구가 아니라 삶 그 자체가 될 수 있다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는 생산자이거나 소비자라는 역할로 정의된다. 그런 시선으로 배움을 바라보면, 배움은 수단에 불과하다.


사회적 신분상승의 도구,

몸과 마음을 닦는 수단,

사회를 변화시키는 전략.

성공해도 실패해도 무위로 돌아갈 수 있다.


그동안 빠르게 배우고, 빠르게 써먹기를 바랐다.

온갖 자격증과 인증을 갖추기에 바빴다.


잠시 멈추고 배움으로만 얻은 기쁨을 떠올렸다.


동화책 읽기를 스스로 할 수 있게 됐을 때.

스스로 읽은 책에서 알게 된 지식이 선생님을 통해 서로 연결되고 상호보완이 됐을 때.

피아노 상점에서 당시 배우던 소곡을 쳤을 때.

도무지 풀 방법을 모르던 수학문제가 다음 날 술술 풀렸던 때.

철학 사상가들 이름 외우기 바쁘다 무심코 읽은 책으로 사상적 흐름을 깨닫게 됐을 때.

수채화를 그리니 그동안 무심했던 주변 환경을 관찰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을 때.

책모임을 꾸준히 하니 쓴 글들이 과거와 다름을 발견했을 때.



배움, 그 자체로 기쁨이 되는 순간.

그 기쁨을 기억하는 사람은 삶이 흔들릴 때, 다시 중심을 잡을 수 있다. 나도, 당신도 배우고 기쁨을 느낀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히 잘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子曰: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자왈 학이시습지 불역열호

공자가 말했다.

'배우고 때에 맞춰 이를 실천하니 이 아니 즐거운가!'


이 오래된 문장을 따라 쓰며 오늘의 모습을 비추어 본다.


'나는 배우고 때를 맞추어 실천하는, 즐거운 사람이다'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 잠시 멈추어 자신의 마음에 귀를 기울여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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