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고백, 사소한 용기

by 미네르바의 올빼미

숨이 불어넣어지는 순간들은 그림책에서 읽은 것처럼 차곡차곡 쌓여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갔다.

생명의 기운이 온몸에 퍼지자 오래된 상처에 새살이 돋았다. 마음의 안정은 내면 깊숙이 스며들며 그녀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어둠이 걷히고 희뿌연 안개가 흩어지자 비로소 알게 된 것은, 자책을 불러오는 과거를 굳이 끌어안고 있을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책임과 의무라는 이름으로 스스로를 벌하며 그녀는 오랫동안 그 과거들에 발목이 잡혀 있기에 깨달음이 찾아왔어도 우울은 쉽게 물러가지 않았다.

의사의 처방으로 몇 알의 약을 삼켰지만, 그것들은 오히려 그녀의 기운을 앗아갔다.

결국 그녀는 약봉지를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스스로를 연민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단지 그것을 던져버릴 힘과 용기가 부족했을 뿐이었다.



용기를 낸 그녀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사직서를 내는 것이었다.

그리고 남편에게 그동안 짊어지고 있던 짐을 모두 털어놓았다.

남편은 더 이상 그녀를 탓하지 않았다. 자신이 지운 짐에 대해서도 사과하지 않았다.

다만 그녀가 당분간 쉴 수 있도록 허락해 주었다.



그렇게 가족은 미뤄둔 여행을 떠났다. 목적지는 통영이었다.

몽돌이 깔린 해변에 앉아, 그녀는 에메랄드빛 바다 위로 흩뿌려지는 황금빛 윤슬을 바라보았다.

그날따라 아이들은 싸우지 않고, 서로를 바라보며 깔깔 웃었다.

파도에 부딪힌 몽돌이 촤르륵 소리를 내며 구르자, 바다 특유의 비린내는 희미해지고 맑은 소리만이 귓가에 남았다.



그녀는 문득, 이순신 장군의 결연한 각오가 서려 있는 이 땅의 역사를 떠올렸다.

죽음을 무릅쓴 그의 비장한 결의가 바다 바람 속에서 되살아나는 듯했다.

이상하게도 그 기억은 그녀에게 위로가 되었다.

자신이 걸어온 길 또한 더는 두려움으로만 채워지지 않아도 된다고, 그 바다가 속삭여주는 듯했다.



그녀는 바다를 향해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제 괜찮아. 그동안 애썼다.’



그 순간 그녀의 삶은 새로운 막을 맞이한 듯했다. 연극 무대가 한 장을 끝내고, 막이 오르듯 말이다.

그녀는 새로운 직장에서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 갔다. 지역 문화센터에서는 어린 시절 꿈꾸던 취미를 다시 붙잡았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 또한 저마다의 연극 같은 인생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들의 고백 속에서 그녀의 이야기는 점점 작아지고, 평범해졌다.



그녀는 안도했다. 자신의 이야기를 특별하게 만들 수 있는 힘이 이제는 스스로에게 있다는 사실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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