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닭과 영자 씨

by 미네르바의 올빼미

영자 씨에게


지난밤 평안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간 밤에 천둥과 번개가 치며 세찬 비가 내렸는데, 거짓말처럼 여름의 열기가 꺾였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며 절기가 지나기 무섭게 계절이 바뀌는 것을 보면 옛 선조들의 지혜에 감탄하게 됩니다.

오늘 여름옷차림으로 출근하여 감기에 걸린 듯 목이 칼칼합니다. 영자 씨도 감기에 걸리지는 않으셨는지, 여름 내 식사는 제대로 하신 것인지 걱정스럽습니다.

수현 씨와 다투어 눈물 흘리는 일은 없으시길 바라봅니다.


저는 염려 덕분에 세 아이들을 남편과 잘 키워내고 있습니다.

사내 녀석들이라 먹성은 이미 저를 뛰어넘었습니다.

영자 씨가 아이들 밥숟가락에 반찬을 올려주면 좋아라고 먹을 듯합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영자 씨 말씀대로 까시락 진 아이였습니다.

저는 그게 왜 그렇게 싫던지.

영자 씨 마음을 헤아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영자 씨 말씀대로 어린 시절에 책으로 배운 것은 하나 소용이 없는 것 같습니다.

시대가 너무 빨리 변해 버려 그 비싼 돈을 주고 배운 대학공부는 곰팡내 나는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차라리 배움을 몰라 부대낌 없이 일찍 돈을 벌어 시집가 아이들 키우는 것을 낙으로 살았더라면 지금 우리 아이들이 더 행복했을까요?

어쩐지 양육과 교육은 제 머리에 검은 물이 든 양과는 반비례하는 것 같습니다.


며칠 전 작은 아버지께 안부 전화를 드렸습니다.

그때 영자 씨를 같이 뵈러 가자고 하시더라고요.

시집와 출가외인으로 제 살림만 꾸리느라 뵈러 오지 못해 죄송합니다.

저는 영자 씨 말씀대로 돈을 들여 키워봤자 남의 집 귀신이 될 테지요.

현실적으로 아버지를 도와드리지도 못합니다.

없는 형편에 공부시켜 놨더니 기껏 남의 집 제삿밥 차릴 맏며느리가 되어 있습니다.

역시 영자 씨 선견지명이 있으셨나 봅니다.

그때는 제가 어리석게도 그 말이 제일 싫었습니다만.


까짓것 돈 벌어 부모님 호강시켜 드리면 된다고 호기를 부렸습니다.

제 인생에 부침이 있을 게 뻔하니 영자 씨 아드님이 힘들게 번 돈이 허투루 쓰이실 줄 아셨던 겁니다.

여자 팔자, 뒤웅박 팔자라고 실감 납니다.

그래도 물심양면 도와주셔서 제가 선택한 일에 책임을 다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제법 행복하기까지 합니다.


작은 아버지께 연락드린 이유가 제 이름으로 책이 하나 나왔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영자 씨가 첫 손녀라고 거금을 주고받아오신 이름은 아닙니다.

이 또한 죄송합니다.

여전히 당신 손녀는 괘씸하게도 제 멋대로라 필명으로 냈습니다.


다음엔 영자 씨 이야기를 써 볼까 합니다.

남자들 틈바구니에서 싸움닭처럼 살아와 미처 살펴보지 못한 영자 씨 마음이 궁금해졌습니다.

친정 식구들의 기억들을 조합해 양념 좀 쳐 픽션으로 쓸 테니 영자 씨도 즐겁게 봐주시길 바랍니다.


수현 씨께 안부 대신 물어봐 주시겠습니까?

오래도록 뵙지 못해 그립다고.

수현 씨처럼 사랑해 주는 남자는 없더라고도 전해주십시오.


수게가 살이 올라 단맛이 강할 땝니다.

급랭시킨 게에 맛있는 양념으로 버무리면 평소 입맛 없어하시던 모습은 온 간데없고 한 그릇을 뚝딱 비우시던 모습이 생각이 났습니다.

그래서 어머니께 배운 양념게장을 해 왔습니다.

수현 씨와 함께 드시고 평안하게 영면하시길 바라봅니다.


손녀딸 올림




그녀는 정성스럽게 손으로 쓴 편지를 금박 장식 봉투에 넣었다.

영자 씨는 빨간색을 좋아했지만 차마 그 색을 고르지는 못했다.

봉투를 봉하며, 오래전 기억이 떠올랐다.

그녀는 늘 남자들 틈바구니에서 기죽지 않으려 싸움닭처럼 살았다.

그걸 바라보던 영자 씨는 애써 말을 아끼지 않았을 뿐이었다.

독립심 강한 손녀가 팔자가 세어 결국 자기 힘으로만 버텨야 하는 고단한 길을 걷게 될까 두려우셨던 것이다.


어린 시절 그녀는 그 뜻을 헤아리지 못했다. 억눌림으로만 받아들여 사납게 맞서던 날들이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이해 보려 한다.

그 말들이 가시 돋친 훈계가 아니라, 어떻게든 손녀의 삶을 덜 고단하게 만들고자 한 사랑의 다른 표현이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