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째 새벽 세 시면 어김없이 눈이 떠졌다. 그녀는 노트북을 켜고 책상 앞에 앉았다. 문화센터에서 신청한 에세이 강좌 때문이었다. 매일 던져지는 글감을 따라가야 했다. 처음엔 가벼웠다. 짧게 흘려 쓸 수 있는 이야기들, 한순간 상상만으로도 채워지는 주제들이었다. 그러나 강좌가 중반을 넘어서자 글감은 깊어졌다. 피할 수 없이 자기 경험을 불러내야만 하는 것들이었다.
몇 년 전, 그녀는 이미 비슷한 시도를 해본 적이 있었다. 온라인 문학 동호회에 가입해 글을 쓰고 합평을 받던 시절이었다. 처음엔 겁도 없이 나섰지만, 회차가 거듭될수록 하얀 화면 앞에서 깜박이는 커서가 두려워졌다. 그녀의 문장은 무겁고 낡았으며, 무엇보다 진심을 드러내지 못했다. 자기 검열과 억지 설정에 막혀 결국 글을 놓아버렸다. 내면의 빈약함이 발가벗겨지는 듯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더는 피하지 않겠다고, 은밀한 이야기들을 글에 쏟아내겠다고 마음을 굳혔다. 처음엔 단순한 확인을 위해서였다. 스스로를 정리하려는 고백 비슷한 글이었다. 그러나 키보드를 두드리는 순간, 기억들이 하나둘 거짓말처럼 뒤집혔다.
평생 자신을 짓눌러온 죄책감, “~때문에”라고만 해석했던 사건들이 사실은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순간마다 누군가의 손길이, 어떤 말이, 사소하지만 깊은 애정이 조용히 자신을 받쳐주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손끝이 떨렸지만, 떨림은 더 이상 절망이 아니었다. 목구멍 깊숙한 곳에서 오래 묻혀 있던 울음이 지나가자, 그 자리에 기쁨이 차올랐다.
“나는 사랑받았구나.”
그 말이 안에서 폭발하듯 퍼져나갔다.
그제야 알았다. 자신을 죄인으로 가두었던 기억들이 조금씩 풀려나고 있었다. 엄마가 제철마다 내어주던 음식, 비 오는 날 끝까지 함께 웃어주던 친구, 아버지가 들여놓은 피아노 한 대, 아이들이 서툴게 안겨주던 포옹…. 그 모든 순간들이 이제 다른 이름을 달고 다가왔다.
불안과 분노는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그것들이 더 이상 삶의 전부는 아니었다. 무너진 자리에 새로 놓여 있는 것은,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보지 못했던 은총의 편린들이었다.
그녀는 글을 쓰며 해방감을 느꼈다. 고통을 증언하는 글이 아니라, 자신을 받쳐준 이름들을 하나씩 불러내는 글이 되어 있었다. 글을 쓰는 손이 그 어느 때보다도 가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