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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롱쌤 Jun 28. 2023

'치킨너겟' 제사상

아버지를 기억하는 막내딸의 추모방식

돌아오는 일요일은 친정아버지의 기일이다. 오빠들을 제쳐두고 엄마 아빠의 제사를 언니와 내가 번갈아 모신 지는 꽤 됐다.

딸들이 부모님 제사를 주관하면 좋은 점이 많다. 시장을 보고 음식을 준비하는 과정이 전혀 스트레스가 아니다. 왜냐고? 우리 엄마 아빠 제사니까. 음식 메뉴도 수시로 바뀐다. 처음엔 삶은 닭고기, 돼지고기 꼬치, 소고기 산적 등 구색에 맞게 차리느라 꽤나 신경을 썼다. 하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삶은 닭이 튀긴 닭으로 바뀌다가 어떤 해는 치킨 너겟을 수북이 담아낸 적도 있다.

오빠들이 우리 집에 오는 것도 좋고 내가 언니네로 가는 것도 신난다. 혹자는 제사는 옮기는 게 아니라고 하지만 우리의 철학은 확고하다. 엄마 아빠 없는 4남매는 부모님의 기일을 핑계로 얼굴 한번 보는 거에 의의를 둔다는 것!

심지어 제사 날짜를 직장 다니는 여동생들의 편의를 위해 주말로 당기기도 한다. 제기도 병풍도 없이  차린 밥상, 꼬장꼬장한 집안 어른들이 아신다면 대로할 일이지만 우린 우리 식대로 잘 해내가고 있었다.      




며칠 전 큰오빠가 전화를 했다.

“올해 아부지 제사는 그냥 넘어가자. 너무 고생스럽다. 돌아가신 지 30년이 훌쩍 넘었으니 이제 그만해도 좋을 것 같다.”

작은오빠와 성묘만 간단히 하겠다고 했다. 더운 날 음식 준비하는 여동생이 안쓰러워 한 말일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아쉽고 허전하다.      


누군가를 위해 음식을 준비한다는 것, 그 대상이 나의 부모님이라는 사실은 모든 과정에 의미가 부여되었다. 아버지가 좋아하던 북어포를 사고, 즐기시던 술을 고르며 당신을 추억했다. 고사리, 시금치, 콩나물을 데치고 볶고 무치며 어린 사 남매가 양푼이 비빔밥속으로 숟가락 들이밀던 기억도 났다. 버르장머리 없던 막내딸의 종아리를 치던 젊은 시절의 아버지도 떠올랐다. 아버지가 오래 사셨다면 우리의 삶도 바뀌었을까? 노년의 당신은 어떤 모습일까 상상해본다. 매년 나만의 방식으로 아버지와 조우해 왔는데 이제 진짜 이별인 것만 같아 서운하다.      



최근 시댁에서도 시아버지 제사문제로 소동이 있었다. 큰 형님이 시아버지 제사를 그만 지내고 싶다고 폭탄선언을 하신 것이다. 막내인 남편은 큰형수의 부담을 덜어주려 세 형제가 돌아가면서 지내는 게 어떠냐는 대안을 냈다. 형수들의 시원한 대답을 받지 않은 답답한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며칠을 끌탕하던 남편이 그런다.

“형수들이 아부지 제사 안 지내겠다면 내가 지내지 뭐. 아부지 제일 좋아하는 내가, 음식해서 형들과 절하면 돼. 형수들은 안 와도 돼. 당신도 안 해도 돼. 진심이야. 서운한 거 하나도 없어. 사실 그동안 고생 많았어.”

음~ 고지식한 경상도 사나이의 멋진 반전이다. 이런 변화 언제든 물개 박수다. 제사란 결국 자식이 부모님을 기억하는 방식이다. 첫째든 막내든, 아들이든 딸이든 그게 무슨 상관이겠나! 기도든 절이든 그게 뭐 대수겠나. 마음으로 차린 치킨너겟 한 접시도 충분하다. 세월 흐르면 그 추모식 마저 이별할 날이 올지도 모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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