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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에 빠지다

사춘기 두 딸과 갈등의 정점에서

by 포롱

2013년 가을, 중1, 중2 연년생 두 딸이 몸집도 커지면서 여드름도 기하급수적으로 많아지기 시작했다. 뭐 그리 특별한 말썽을 부리는 건 아닌데도 말투, 표정이 삐딱해지면서 사사건건 부딪혔다. 바쁜 주중에는 생활에 쫓겨 그런대로 지나갔지만 주말엔 전쟁이 따로 없었다. 학원만 덜렁덜렁 다니는 것 같은 저 마음에 안 드는 생활태도, 방은 폭격 맞은 전쟁터나 다름없고, 치우라고 하면 바로 쾅 닫히는 방문, 아이들도 혼란스러웠겠지만 엄마인 나도 미치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때 남편이 무심코 던진 한마디. “산이나 하루 다녀오자!” 그렇게 시작된 평범한 주부의 산과의 외도는 의외로 가정에 평화를 가져다줬다. 아이들에겐 완벽한 자유의 시간을 가져다줬고, 엄마에게는 ‘됐다 별거도 아니다’라는 무한 긍정의 마음을 선사했다.


우연히 맺은 등산과의 인연이 올해로 6년째다. 시작한 2~3년은 매주, 격주 참 열심히도 다녔다. 아이들의 반항기가 하늘을 찔러 감당이 안될 때면 산으로 피신을 갔다. 한 발 한 발 땅을 디디면서 나의 부족함을 탓하면서 직면했다. 지지고 볶는 일상이, 그리 속 끓이는 문제가 산꼭대기에서 내려다보면 아무것도 아니었음에 평온해졌다. 아이들과 우당탕탕 보냈을 그 시기를 산 덕분에 큰 탈 없이 무사히 빠져나왔고 지금도 빠져나가고 있다.


아직도 등산 가방을 쌀 때면 가슴이 뛴다. 세월이 갈수록 책임과 의무들이 하나 둘 늘어나 산으로 달려가는 날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나름의 원칙은 있다. 2주에 한 번 이상은 가자!


아이들로 부터, 현실로 부터 도피였던 산은 이제 오롯이 나의 친구가 되었다. 산이 주는 묘한 기운, 이름 없는 풀 한 포기, 들 꽃 하나에도 감동이다. 봄 산의 설렘, 여름 산의 울창함도 좋지만 가을 산의 여유와 겨울 산의 고요가 더 울림 있는 걸 보면 나도 나이가 드나 보다.


산에서 만난 인생 선후배들은 삶의 여유와 멋을 아는 좋은 사람이다. ‘인자요산’이라는 말이 그냥 생긴 말이 아님은 분명하다. 사회에서도 만나기 힘든 편한 친구들도 많이 만났다. 이젠 내 신상의 문제로 산에 가는 것보다 벗들이 사람들이 보고 싶어 가는 날도 많음을 고백한다.


영남알프스, 새벽 4시 30분 터 간월산, 신불산, 영축산을 보고 하산하니 오후 3시다. 10시간 남짓 걷고 또 걸었는데도 좋다. 아마도 억새보다 단풍보다 사람들에 취해 걷고 걸었음이 틀림없다. 내가 좀처럼 사진을 잘 안 찍는데 오늘은 이 분들에 취해서 핸드폰 카메라를 누르고 또 눌렀다.(2018.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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