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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롱쌤 Jan 21. 2024

티팟? 시팟? 아니 소팟!

(4)캄보디아 여행기 네번째  (끝)

10년 전 동료들과 방문했던 캄보디아는 슬펐다.

인간의 힘으로 가능한 일인가 싶을 정도로

앙코르와트 유적지는 거대하고 아름다웠다.

하지만 훼손돼 방치된 유물은 안타깝고 심란했다.

당시 관광 가이드는 언제 무너져 사라질지 모르니

하루라도 빨리 보는 사람이 현명한 거라는 잔인한 농담을 했다.

독재정권에 인구의 3분의 1이 목숨을 잃은 킬링필드 땅의

어린 후손들은 지나가는 외국인들에게 달라붙어

“원달러, 원달러! 플리즈”를 외쳤다.

괴죄죄하고 꼬질꼬질한 꼬맹이들에게 초코파이와 천 원짜리를 건네는

우리의 손길이 마냥 어색하고 미안했다.

거대한 호수 위를 양동이를 타고 다니며 구걸하던 어린아이들의

큰 눈망울이 아른거려 귀국 후에도 한동안 마음이 어지러웠다.   

  

2024년 새해 다시 찾은 캄보디아는 영광의 과거와 비루한 현재,

아니 우리의 과거와 현재가 뒤엉켜 있었다.

수도 프놈펜엔 고층 건물이 생겼고 길거리 아이들도

스마트폰으로 놀고 있었다.

프놈펜 중앙시장 기념품을 파는 젊은 처자는 10년 전처럼 깎으려는 외국인에게

 ‘no! discount!’라고 단호하게 선을 그어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하지만 차를 타고 시내를 조금만 벗어나도 황톳길 위 뿌연 먼지 사이로

맨발 차림의 상인들이 음료를 팔고 생필품을 팔았다.

소가 쟁기질을 하고 디딜방아가 보이는 시골의 모습은 과거로의 여행 같았다.

흑백 그림 속 사람들은 여전히 순수하고 따뜻했다.

시원한 코코넛 음료를 팔던 노인은 이 빠진 환한 웃음으로

딸 둘이라며 한 통을 덤으로 주셨다.

한국인임을 알아보고 다가온 앙코르와트의 아저씨는

자신을 한국명 ‘강호동’이라고 소개했는데

한국인 전담 가이드로 자부심이 대단했다.

유창한 한국말을 뽐내며 사진 명소를 알려주며 손수 가족사진을 찍어줬다.

매일 아침 한 시간씩 유튜브로 한국말 공부를 한다는 그는

언젠가 한국 여행을 갈 거라는 야심 찬 계획을 밝혔다.

툰레삽 호수 맹그로브 숲 투어 때 만난 수상가옥 사람들과 에피소드는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터진다..

점심을 과식한 남편이 속이 불편했던지 사람들 눈을 피해

구석으로 몰래 가더니 방귀를 뿡~~ 뀌었던 순간,

그 언저리 어디쯤서 남편을 지켜보던 한 아저씨가 박장대소했고  

순식간에 낄낄 웃음이 도미노처럼 번졌다.

어린이 할머니 할 것 없이 주위 사람들이 빵 터졌는데

멋쩍어진 남편도 나도 눈물이 쏙 빠지도록 함께 웃었다.

언어도 통하지 않던 우리가 방귀 한 방으로 통했던 진기한 경험이었다.      

가족 나들이를 나온 캄보디아 사람들
수시로 딸과 아내 자랑을 하던 소팟.

티팟? 시팟? 아니 ‘소팟’과는 특별한 인연이었다.

6일간의 가족 여행을 안전하게 운전해준 서른셋 젊은이 시팟? ‘소팟’은

웃을 때면 유독 하얀 치아가 인상적이었다.

현대차 ‘소렌토’를 끌고 나타나 “안녕하세요.”라고 입을 연 그는

영어가 조금 되는 가이드였는데 헤어질 때까지 나는 그의 이름을

제대로 부른 적이 없다.

‘티팟’? 아아~ ‘소팟’!!

관광객들을 상대로 영어를 배웠다는 ‘시팟’? 아니 소팟은

문장이 조금만 길어도 고개를 갸우뚱했는데

영어에 능통한 딸들보다는 나와 의사소통이 제일 잘됐다.

머릿속으로 영어문장을 생각하지 않아도 돼 짧은 단어만 툭툭 던져도

귀신처럼 알아들었다.

조금이라도 복잡한 대화로 진전될 때면

그와 내가 서로 동문서답을 끊임없이 하는 모습을

식구들은 코미디 같다며 웃었다.

그는 항상 약속 시각보다 먼저 대기했 눈치 빠르게 행동했다.

새벽 4시 일정을 잡고 늦은 밤 투어를 계획해도 늘 “No problem!”을 외쳤다.      

9남매의 다섯째로 자란 그는 딸 하나를 둔 가장이었다.

부인의 고향 씨엠립으로 장가를 간 그는 프놈펜 출장 땐 늘 차에서 잠을 잔다고 했다.

힘들지 않냐고 했더니 자기는 젊고 아무 문제 없다고 웃었다.

뚝뚝이 기사를 수년간 했고 지금은 멋진 현대차를 몰며 운전 가이드를 한다.

호텔서 일하던 10살이나 어린 아내랑 3년 전쯤 결혼을 했다며

수시로 아내와 딸의 사진을 보여주며 자랑을 했다.

성격도 넉살도 좋아 남편을 ‘형님’이라고 부르면서도

내게는 꼭 ‘마담’이라고 깍듯하게 대했다.

씨엠립 ‘펍 스트리트’ 길거리 1평이 될까 말까 한 옷가게에서 만난 소팟의 아내는

아이돌급 외모로 우리를 깜짝 놀라게 했다.

소팟을 똑 닮은 귀여운 딸은 아빠를 보자 껌딱지처럼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는데

주변엔 친구들도 많아서 프놈펜의 ‘인싸’라 불러도 될 것 같았다.

식사 자리에선 늘 캄보디아 전통식 ‘아목’을 시켜

밥 한 톨 남기지 않고 싹싹 비우는 먹성을 보여 지켜보는 이들을 흐뭇하게 만들었다.

지금은 한 달 100달러짜리 단칸방서 살지만

차 할부금을 다 갚으면 언젠가 교외에 3층짜리 멋진 집을 짓고

아이들은 셋쯤 키우고 싶다는 소망을 말할 때 왠지 마음이 따뜻해졌다.      

티팟? 아니 소팟과 함께 한 마지막 일정은

씨엠립의 초등학교 방문이었다.

허름한 교실에 30~40명쯤 되는 교복 차림의 아이들이 빼곡했다.

신기한 건 나이대가 꽤 다양해 어린아이부터 성숙한 아이들이 한데 모여 있었다.

어린 티팟? 시팟? 아니 소팟들이 저마다의 꿈을 키우고 있겠지?

초롱초롱한 눈망울과 활기찬 책 읽는 소리를 듣자

갑자기 일부러 챙겨온 천 원짜리 지폐들이 부끄러워졌다.     


헤어지는 순간에서야 그의 이름을 한 번에 불러본다.  

“소팟! 다음엔 꼭 네가 한국에 와라.

그땐 내가 꼭두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라이딩 해줄게.”

캄보디아의 건강한 젊은이를 한번 꽉 안아줬다.


언제가 될진 모르지만 다음 방문 때의 이 땅의 사람들은

어떤 모습으로 나를 반겨줄까 문득 궁금해진다.

씨엠립의 한 공립 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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