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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롱쌤 Jan 19. 2024

영혼의 단짝

(3) 캄보디아 여행기 세 번째

캄보디아로 출발하기 전날 가족 카톡방에 내가 물었다.

“우리 내일 몇 시 비행기야?”

잠시 뒤 아빠가 한마디 얹는다.

“나도 그게 궁금해.”     

공항에서 티켓팅을 하려고 하는데 이번엔 아빠가 묻는다.

“우리 어디로 가는 거야?”

아빤 어쩜 나랑 궁금한 게 타이밍 맞춰 그렇게 비슷하지?

옆에 있던 엄마와 언니가 기막혀 죽겠다는 표정이다.

두 달 전부터 비행기 시간 알려줬고 캄보디아 간다고 맨날 노래 불렀다고.

도대체 둘은 무슨 생각으로 여행을 가는 거냐고

따따따따 따발총처럼 쏘아댄다.  

어차피 뭐라 해도 여행지는 안 바뀔 거고

참견할 필요 뭐 있냐고 한마디 하려다 말았다.

입 다물고 따라다니면 만사 속 편하지.

저 두 여인의 단호하고 확신에 찬 결정에 딴지는 어봤자다.    

  

엄마는 프놈펜에서 친구를 만나고 너무 좋아했다.

초딩 친구라는데 뭐가 그리 좋을까.

수정이 아줌마는 자꾸 내가 이쁘단다.

엄마랑 똑같이 생겨서 그렇겠지.

성격은 완전 딴판인 걸 알면 기절초풍할 텐데.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거 하나 더.

엄마는 친구를 만나러 오면 혼자 올 것이지

왜 온 가족을 다 데리고 왔는지 도통 이해가 안 된다.

하와이 같은 고급 휴양지면 모르겠다.

이렇게 열악한 곳에 뭐 볼 게 있다고 여행을 온담.

음식도 당최 입에 안 맞다.

동남아 사람들은 맛있는 음식에 왜 온통 향신료를 쏟아붓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프놈펜 한국식당에서 수정이 아줌마가 사준 돼지갈비와

씨엠립 대박식당에서 먹은 삼겹살이 없었더라면 정말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뙤약볕 아래 땀 줄줄 흘리며 걷는 건 더 최악이었다.

프놈펜 킬링필드 유적지?

그래 백번 양보해서 광주민주항쟁의 아픔을 은 동병상련의 관점에서

시사하는 바 크다는 데 동의한다..

10분이면 충분할 코스를 별 사소한 얘깃거리로 두 시간을 걷게 하냐고.

아, 미쳐 돌아가시는 줄 알았다.

더 가관은 뚜얼슬랭인가 뭔가 하는 감옥투어였다.

묻지도 않고 언니와 엄마가 오디오 가이드를 신청해서는

이어폰과 휴대폰을 아빠와 내 목에 걸어줬다.

앞자락 10분 딱 들으니 다 알겠던데 그걸 또 40편 에피소드로 늘려놨다.

오 마이 갓!

언니와 엄마는 너무나 슬프고 심각한 표정으로

오디오 가이드에 푹 빠져 진즉에 사라졌다.

똑같은 감옥 방 두세 개 보니 볼 것 다 봤다 싶다.

다리가 아프다.

이럴 땐 그늘로 가서 못 봤던 웹툰 보는 게 최고지.

얼마나 흘렀을까.

시계를 보니 한 시간이 흘렀다.

뭐야, 나 미아 된 거야?

캄보디아서 길 잃어버리면 어떡하지?

호텔도 모르고 아무것도 모르는데, 졸졸졸 따라만 댕겼는데...

하는 순간 저 앞 벤치에 익숙한 아저씨 한 분 졸고 있다.

오~ 나의 영혼의 단짝 아빠다.

그늘에서 솔솔 부는 바람맞으며 단잠에 빠졌다.  

냉큼 아빠 옆에 가서 붙었다.

둘이 같이 있으니 한결 안심이다.

한참 뒤 엄마와 언니가 동시에 나타났다.

이럴 줄 알았다는 듯 돈이 아깝다며 뭐라 뭐라 하며 우리를 싸잡아 뭐라 했다.

더워서 좀 쉰 게 뭔 잘못이냐고 항변했지만 씨알도 안 먹혔다.     

 

씨엠립 앙코르와트는 더 힘든 일정이었다.

세계 7대 불가사의라며 호들갑을 떨다 엄마는 이틀째 몸살이 났다.

내 그럴 줄 알았다.

방학했으면 일단 좀 쉬고 움직여야지 바로 비행기 타는 저 무모함 정말 이해가 안 간다.

‘엄마 미니미’ 언니는 또 오디오 파일을 귀신처럼 찾아내서는 우리 보고 들으란다.

모르면 돌덩어리에 불과하다며.

알아도 돌덩어리는 돌덩어리다.

앙코르와트 벽을 따라 오디오 가이드를 들으며 걷는다.

아, 대단한 것 알겠고요, 근데 너무 다리 아프다고요.

나에게 제발 시원한 망고주스나 사주시라고요.

아빠도 비슷한 마음일 것이다.

언니 눈치에 장단을 맞추는 시늉 하는 애처로운 우리 아빠.

젊을 때는 안 그랬는데 50대의 아빠는 점점 불쌍해지고 있다.

엄마도 모자라 이제 언니 눈치까지 본다.

다 때려치우고 오늘 저녁 메뉴는 뭐지?

맛있는 거 먹고 그냥 숙소 가서 수영하고 편한 침대에 눕고 싶다.

1일 2잔씩 먹은 망고쥬스

그래도 입 다물고 따라 댕기면

맛있는 것도 먹고

기념품도 얻고

성질 좀만 죽이면 이것도 편한 여행 아닌가.

집에 있었으면 일주일 꼬박 굶었을 텐데 배는 부르잖아.

우리 집에 외계인 같은 엄마와 언니 말고

아빠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나의 영혼의 단짝 아빠.

세상 사람들, 애는 꼭 둘 이상 낳으셔야 합니다.

그럼 분명 한 명은 영혼의 단짝이 있을지도 몰라요.

혼자는 외로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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