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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롱쌤 Mar 24. 2024

각방 이야기1


한밤중에 깬다. 화장실을 들렀다가 한참을 뒤척이다 간신히 다시 잔다. 다시 눈을 떠보면 새벽 5시. 더 자야 해. 또 얕은 잠이 들었다 눈을 뜨니 30분 지났다. 안돼. 이불깃을 머리끝까지 올리고 깜깜한 어둠 속으로 숨는다. 그러다 결국 6시에 벌떡 일어났다.      


최근 수면의 질이 너무 나빠졌다. 갱년기 증상인지 뭔지는 잘 모르겠다. 컨디션이 안 좋으면 화장실도 더 자주 들락거리고 작은 소음에도 눈이 자꾸 떠진다. 술을 먹어보라는 주위의 권유에 몇 잔 먹어봐도 도움이 안 된다. 미국 출장길에 사 온 친구의 수면보조제도 먹어봤지만 별 소용이 없다. 머리만 대면 잠들었다 눈뜨면 아침이던 잠꾸러기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불면증 불똥은 남편에게 튀었다. 근래 부쩍 남편의 코골이가 심해졌는데 그 소리 탓에 아예 잠을 설치는 날이 잦아졌기 때문이다. 코를 비틀어보기도 하고 베개를 높여주기도 했지만 허사였다. 남편이 과음이라도 한 날이면 새벽까지 내 머리를 쥐 뜯었다.

“여보, 도저히 안 되겠어. 술 먹고 오는 날은 거실에서 자면 안 돼?”

눈이 똥그래진 남편, 황당하다는 듯 쳐다본다.

“아니 방학이면 어찌어찌 견뎌보겠는데 학기 중엔 너무 힘들어.”

당혹스러움과 서운함으로 가득 찬 남편의 표정을 모른 척했다.      


만취한 남편이 진짜 나가서 자야 하냐고 또 묻는다. 지난밤 녹음한 코골이 소리를 들려줬다.

“내가 예민한 것도 있는데 당신 소리 장난 아냐. 부탁해.”

남편은 진짜 자기가 이런 소리를 내냐며 믿을 수 없단다. 단호하다 못해 매정한 마누라의 부탁에 남편은 베개와 이불을 주섬주섬 들었다.

진짜 거실로 가?”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흥 칫 뽕! 혼자서 잘 자라.”

남편은 안방을 나서며 ‘뿡!!’ 방귀 한 대로 응사한다.

너무 어이없어 웃음이 터졌다.

25년 결혼생활 동안 늘 붙어 잤던 부부가 처음으로 떨어졌다.


술자리 약속이 잦아질수록 남편의 거실행도 자연스러워졌다.

처음엔 남편이 안쓰러웠다.

그리고 왠지 미안했다.

코골이가 사라진 잠자리에 숙면이 찾아올 줄 알았는데

사실 그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이게 은근히 편하고 좋았다.

특히 새벽에 잠이 깨면 옆사람 눈치 안 보고 일어날 수 있다.

음악 듣고 책 보는 자유도 좋았다.

이래서 다들 나이 들어 각방을 쓰는구나     


딸들도 거실 가득 울리는 코골이 소리의 정체를 확인하고는 내편을 들었다.

지금까지 어찌 참았냐고 한 술 더 뜬다.

만취한 아빠가 귀가하면 고소하다는 듯 매트리스를 미리 깔아주기도 했다.

딸들까지 아빠의 거실행을 손뼉 쳐주는 형국이 되자 남편은 기막혀했다.       


어김없이 오늘도 남편은 술을 먹고 귀가했다.

이불을 주섬주섬 챙기던 그가 한마디 한다.   

“나 요즘 불행해. 진짜로 불행해.”  


헐~

남편 코골이를 거실로 내쳤을 뿐인데 남편의 행복도 따라갔다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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