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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과학자 Aug 09. 2022

질문 있습니다!

[서평] 수학이 필요한 순간

'수학'은 여전히 어렵다. 주변에 '수학의 정석'을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푸는 사람이 있다. 솔직히 경외감이 든다. '수학'은 지금도 필요하다. 범위가 한정되어 그나마 다행이다. 논문을 읽다가 수식을 접하면 긴장부터 한다. 가끔 화도 난다. 일부러 생략하고, 꼬아놓은 것들이 너무 많다. 인내심을 갖고 힘겹게 버티기는 한다. 어쨌든... 꾸역꾸역 그 끈을 놓을 수 없다. '수학'은 나에게 그런 것이다.


'수학'과 좀 친해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쉬운 교양서로 간극을 메워보고 싶었다. 김민형 교수의 '수학이 필요한 순간'이라는 책을 선택했다. 예상외로... 어려웠다. 비전공자를 대상으로 하는 교양서에 이렇게 수식을 잔뜩 적어놓아도 되는 건지... 반발심이 들었다.


저자는 독자가 수식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 자체를 안 한 것 같다. 나와 같은 반발심을 예상한 것도 같다. 그저... 수식을 몰라도, 이해가 안 돼도, 수학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생각하고, 깨닫는 그 '과정'을 전달하고 싶었던 것이다.




수학적으로 사고한다는 것은 우리가 무엇을 모르는지 정확하게 질문을 던지고, 우리가 어떤 종류의 해결점을 원하고 있는지 파악하고, 그에 필요한 정확한 프레임워크와 개념적 도구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수학이 필요한 순간, p.107 -

 

같이 일하는 박사님이 있다. 독일에서 수학을 전공하셨다. 학위과정 내내 수식만 파고들었을 거 같은데, 그렇지 않다고 했다. '철학'을 배웠다고 한다. 이게... 무슨 말인가 했다. 지금은 조금... 수긍이 간다. '철학'은 '물음'에서 시작하는 거니까...   


'어떤 질문을 던질 것인가?' 저자는 답을 찾는 것보다, 좋은 질문을 던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어떤 종류의 답을 원하는지 알고, 그 답에 다가가는 과정이 '수학'이라고 했다. 저자가 말하는 수학은 인문학에 가까운 것 같다. '수'라는 개념 안에서 생각하지 않는다. '정확한' 답이 아니라, '적당한 답의 틀'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언제나 틀릴 수 있고, 바꿀 수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그러니 이 책에서 '계산기'는 필요 없다. '수학적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이 중요할 뿐이다.


수학적 시각이란 '근사 approximation'해가는 과정이라는 걸 처음부터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완벽하게 할 수 없다고 해서 포기하기보다는, 제한적인 조건 속에서 이해할 수 있는 현상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겁니다.
- 수학이 필요한 순간, p.179 -  


수학은 완벽한 것이었다. 늘 정답이 있었다. '틀렸다'는 것은 '잘못했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부담스러웠다. 잘못하기 싫었으니까. 저자는 수학이 완벽하지 않다고 했다. 사실, 수학사에는 틀린 증명과 틀린 정리가 굉장히 많다. 당시의 조건에서 '가정'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틀린 것은 잘못이 아니다. 수많은 틀림 들을 확인하면서, 현상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저자는 수학은 '근사해가는 과정'이라고 묘사했다. 가끔 오류가 나오거나 나중에 교정한다고 해서 큰일 나지 않는다. 나중에 뒤집어지더라도 현재의 조건 안에서 이해해나가면 되는 것이다. 저자의 말이다. "근사해가는 과정이란, 항상 바꿀 수 있는 것, 그렇게 섬세하게 만들어가는 것이다." 이 표현... '참... 근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학에 대한 부담감이 확 줄어드는 느낌이다. 문제를 이리저리 서툴게 훑어봐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것이 수학적 사고라면 한번 해볼 만하다는 생각도 든다.




수학이 왜 어렵게 느껴졌을까? 선험적인 지식으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약간의 실수만 있어도 무너져버릴 것으로 오해한 것이다. '정답'에 대한 집착이 불러들인 두려움이다. 하지만 수학은 '근사해가는 과정'이라고 했다. 그래서 답을 찾는 기술 보다, '의미 있는 질문'이 중요한 것이다. 질문이 의미 있어야, 과정이 '의미 있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정답을 빨리 찾기 위해 애를 썼다. 그것이 '의미 있는 질문'인지는 전혀 가늠하지 않았다. 그러니 '의미 있는 결과'가 나오기 어려웠다. 수학적인 사고를 하지 않았었다. 당연히 호된 질책을 여럿 들었다.


분명 수학책인데, 철학책을 읽은 기분이다. '의미 있는 질문'에 대한 고민이 들기 시작했다. 참으로 적할 시기에, 참으로 수학이 필요한 순간에 이 책을 접하게 된 것 같다. 수학과 살짝 가까워진 느낌이 든다.  


'수학이 필요한 순간' 책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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