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이슬아 <일간 이슬아 수필집>

스승님

by 김민기

나의 글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을 뽑으라면 가장먼저 거론될 사람의 책이다.

그렇기에 하루에 몇 편씩 나눠 읽었던 책이다.

한 번에 너무 많이 읽으면,

마음이 가득 차서 넘칠까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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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는 자꾸 무기력했다.

해야 할 일들은 산처럼 쌓여 있는데,

그 어느 것에도 손이 가지 않았다.

메일함을 열면 광고 메일만 가득했고,

그 안에 나를 부르는 문장은 없었다.

어느 날, 친구가 『일간 이슬아 수필집』을 읽고 있다고 했다.

매일 아침, 누군가가 나에게 말을 걸어주듯 메일을 보낸다고 했다.

그 말이 좋았다.

‘누군가가 나에게 말을 건다.’

그 감각이 간절했다.


사실 나도 글을 쓴다.

쓰는 걸 좋아한다고 말은 하지만,

정작 잘 쓰고 싶은 욕망에 눌려 쓰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

그런 나에게,

이슬아라는 이름은 늘 자유로워 보였다.

한 사람이 글을 매일 쓰고,

그것을 돈 받고 팔고,

사람들과 나누며 살아간다는 사실.

그게 부럽기도 하고,

왠지 모르게 위로가 되기도 했다.


책을 펼치기 전부터

이 책은 나에게 이미 말을 걸고 있었다.

‘너도 괜찮아.

매일이 아니어도,

조금씩 써도 돼.’

나는 그 말을 믿어보기로 했다.

그리고 책장을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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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가 있는 책은 아니다.

대신 매일매일의 장면이 있다.

그 장면들은 때로는 일기 같고,

어떤 날은 기도 같고,

또 어떤 때는 뜨거운 고백처럼 느껴진다.


이슬아는 이 책에서

엄마 이야기를 하고,

아빠 이야기를 하고,

가족, 친구, 연애, 글쓰기, 몸, 생리, 나이 듦,

그리고 외로움과 기대와 눈물에 대해서도 말한다.

그녀는 매일 아침 누군가의 메일함에 글을 보냈다.

정해진 독자가 있었고,

그들에게 보낸 그 하루의 문장은

다시 익명의 우리에게도 도착했다.


책은 그 글들을 엮은 것이다.

편지 같은 수필 160여 편이 묶여 있다.

글 하나하나는 짧고 가볍지만,

거기 담긴 마음은 진하고 무겁다.

그녀는 쉽게 썼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그 문장 하나하나가 품고 있는 감정은 결코 가볍지 않다.


그녀는 솔직하다.

엄마를 향한 사랑과 원망,

사랑했던 사람과의 애틋함,

몸에 대한 부끄러움과 존중,

글쓰기에 대한 욕망과 회의.

감정을 숨기지 않고 꺼내 보인다.

그래서 읽는 우리는

그녀를 통해 자신을 본다.

자신이 했던 생각,

자신이 말하지 못했던 문장,

자신도 아직 이름 붙이지 못한 감정들까지.


책은 그렇게 다정하게 다가온다.

마치 오래 알고 지낸 친구처럼.

“나도 그래”라고 말해주는 사람처럼.


/


이슬아의 글은 이상하게 위로가 된다.

속내를 다 꺼내놓는 글인데도

조언하지 않고, 가르치지 않는다.

그녀는 단지 자신의 하루를 꺼내 보여줄 뿐이다.

그 하루가 투명해서,

나의 하루도 조심스럽게 들여다보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내가 ‘사는 사람’이라는 걸 다시 알게 됐다.

감정이 있고,

생각이 있고,

쌓인 먼지 같은 기억이 있고,

때로는 어처구니없는 욕망도 있는 사람.

그걸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못했던 날들이

문득 이슬아의 문장을 통해 구멍이 났다.

숨을 쉬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가 솔직해서 좋았다.

사랑이 그리웠다고 말하고,

엄마를 원망했다고 말하고,

글쓰기가 고통스러웠다고 말하는 그 정직함.

그 정직함을 읽는 일이 나에게도 용기를 줬다.

나도 이제 조금은 말해도 될 것 같았다.

나도 조금은 보여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 문장을 따라가며 나는 나를 다시 꺼내고 있었다.


이 책은 큰 철학이나 거대한 감동을 주진 않는다.

그 대신 작고 반복되는 하루의 감정을 붙든다.

그게 왜 중요한지를

이 책은 묻지 않고 증명한다.

내 하루도 그렇게 쓸모 있고,

내 감정도 그렇게 살아 있고,

내 외로움도 그렇게 유효하다고 말해주는 책.

그래서 나는 이 책이 참 고마웠다.


이제 나는 아침에 조금 더 느리게 일어난다.

조금 더 내 기분을 들여다보고,

조금 더 사람들에게 다정해지려 한다.

이슬아의 글이 내 안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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