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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설가m Oct 16. 2024

<3편> 교실을 떠날 준비

민정이는 출근 시간이 8시 반이지만 늘 일찍 출근했다. 1학년 특성상 오전에 모든 에너지를 써버리기 때문에 가장 정신이 또렷한 아침에 모든 준비를 끝냈다.

그리고 학생들 등교시간은 8시 45분 이후라지만 늘 일찍 등교하는 학생들이 있었다. 엄마가 무속인인 데다가 5남매에, 신생아까지 있어서 학교에 8시 15분에 오는 연서. 그리고 자폐 진단을 받은 우정이. 아침에 일찍 오면 도서관을 보내고, 아침부터 산만한 학생들을 독서하도록 지시하다 보면 1교시 전부터 진이 빠졌다. 어찌나 생활습관 형성이 어려운지 학교에 와서 독서는커녕 돌아다니고 복도를 뛰어다니는 학생들 때문에 에너지를 끌어다가 수업을 시작했다.


  1교시 1학년 학생들의 집중 한계시간이 지나면 1교시 후반부부터는 거의 무질서였다. ADHD 시우는 조금 동적인 활동만 나오면 흥분했고 오지랖 많은 도준이는 모든 활동에 끼어들기 일수였다. 발언권을 얻고 말하는 연습, 수업 규칙을 매일 연습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그리고 1교시 쉬는 시간마다 남학생들의 다툼이 시작됐고 민정이는 끊임없이 다툼을 중재하고 기록했다. 화장실을 아지트 삼고 복도를 뛰어다니고, 민정이는 몸이 10개여도 부족했다. 그리고 2교시 수업 중반부인 10시가 되자 민정이는 숨쉬기가 어려웠다.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분명 들숨 날숨을 하는데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화한 느낌이 나는 파스를 손목에 바르고 냄새를 맡았다. 숨이 쉬어졌다. 말을 한마디 할 때마다 숨이 쉬어지지 않았고 민정이는 뭔가 큰일이 났다는 느낌을 받았다. 카페인의 영향일까 봐 커피를 먹지 않아 봤지만 여전했다. 살면서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 민정이는 급하게 심장내과를 예약했다.


심장내과에서의 검사는 꽤나 번거로웠다. 초음파는 기본이고 심장작동기계를 차고 하루동안 심장 기록을 남겨야 했다. 그리고 운동검사도 했다. 러닝머신을 뛰며 심박수를 측정하는 것인데 평소에 출근 전에 러닝을 하는 민정이는 운동능력이 훌륭했다. 체력은 나의 힘이라는 생각으로 운동만큼은 꾸준히 했던 민정이.  "평소에 운동 열심히 하시나 봐요? 여자분들은 보통 이 정도에서 심박수 올라가서 운동검사 끝내는데. 다음 단계 가볼까요?"라는 말도 들었다.


검사 결과, 민정이 심장은 튼튼했다. 그다음으로 가볼 곳은 정신과였다. 그리고 서울에 정신과 예약이 이토록 어려운 것인지... 당장 정신과 예약을 하려고 했더니 최소 1주일은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세상에 마음이 아픈 사람이 많다고는 하지만 내 이야기가 되니 체감이 달랐다. 하긴... 학생들 소아정신과도 최소 2달 전에 예약을 잡아야 하는데 어른이라고 다를까 싶었다. 그리고 등장 밑이 어둡다고 민정이는 길을 걸어가다가 동네에 있는 낡은 정신과를 발견했다. 전화해 보니 대기도 필요 없다고 하고, 검색해 보니 40년대생 정신과 전문의가 운영하는 병원이었다.  


민정이는 당장 병원에 갔고 마음의 문제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급성 스트레스 반응. 연이어지는 충격에 소진됐다는 것이다. 아직 5월 말이고 1학기는 한참 남았는데 눈앞이 아득해졌다. 아무래도 지난 3개월간 일을 몰아서 겪어서 그런 것 같았다. 민정이는 잠깐의 휴식이 간절해졌고 병가를 냈다.


요즘 학교에서 병가를 내는 선생님들이 참 많다. 민정이는 이렇게 병가를 내본 적이 8년 차가 될 때까지 없었고 처음에는 두렵고 떨렸다. 그리고 마음을 잡았다. '내가 살아야 남을 도운다'라고 말이다. 이 학교에는 작년에 병휴직을 낸 선생님이 많았고 그 선생님들을 대신할 강사들도 있었다. 일단 몸을 회복하자라는 생각에 2주간 병가를 냈고 고향에 가서 바다를 보며 마음을 편하게 했다.


6월, 학교에 돌아오자 뜻밖의 소식이 들려왔다. 민정이네 반 중증자폐 학생인 지원이가 급성 폐렴에 걸려 민정이 병가 내내 학교에 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시간강사로 오신 60대 선생님은 민정이네 반 맡을 만하다는 말을 하셨다고 하는데... 이건 교실 금지어였다. 응급실에 오늘 환자 별로 없네라고 하면 위기 환자들이 들이닥치는 것처럼 이 말을 하면 교실에 사건이 일어난다. 잠잠히 있던 우정이는 또 울면서 이동을 거부했고 시간강사로 오신 선생님을 얼굴이 흙빛이 되어 몸살감기를 얻고 교실을 떠났다고 한다. 교실의 심각성을 남들이 알아야 하는데 조금 서러운 마음도 들었지만 일단 쉬었으니 남은 1학기를 잘 마무리하고자 다시 치열한 교실 생활을 했다.


사건은 7월이었다. 작년 모두가 슬퍼했던 그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주에 민정에게도 충격적인 일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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