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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설가m Oct 13. 2024

<2편> 교실을 떠날 준비

교실이 이상하다는 느낌은 남학생들의 두 달이 넘도록 서열 정리가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강하게 느껴졌다. 교실은 사회의 축소판이어서 남학생들은 서열정리가 중요한데, 유독 서열 정리가 되지 않았다. 우정이는 쉬는 시간에 혼자 빙빙 돌면서 자기만의 손동작을 구사했고 에너지가 넘치는 시우는 모든 활동에서 싸움을 만들었다. 아무리 1학년 1학기라고는 하지만 2년 전에 만났던 1학년과 너무 달랐다.


그래서 민정이는 교내 상담교사와 학부모 대면 자리를 따로 마련해서 심리검사를 받도록 제안했다. 객관적인 증거를 찾고 설명하고, 학부모님을 설득하는 것은 어려웠지만 다행히 다들 검사에 응했고 한 명 검사받으면 한 명 검사받도록 설득하는 일이 연속됐다. 18명 중에 6명이 심리검사를 받게 되다니... 나중에는 검사 권하는 멘트가 입에 착착 붙어서 이런 역량도 느는 것이구나 싶었다.


학생, 학부모보다 어려운 사람들은 동료 선생님들과 관리자였다. 기존에 이 학교에서 오랫동안 1학년을 맡았다는 40대 부장과 정년퇴직을 앞둔 60대 교사. 처음에는 젊은 사람이 고생을 많이 안 해봤냐는 식이었고 반에 사건이 생기면 "안전사고는 교사가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라는 명언을 남기기도 했다. 그 말을 한 다음 주에 그 반에 안전사고가 터지긴 했다만...  자신들의 전문성을 인정받지 못해 안달 난 사람인 것 마냥 자신들의 교육 활동을 어찌나 어필하던지 당황스러웠다. 3월에는 학부모 소통방에 학생들 급식 먹는 사진을 올리고 활동 사진을 올리는 등 자신들의 팀킬 행동을 자랑스럽게 말할 때마다 쥐구멍에 숨고 싶었다. 소위 고인 물이라고는 하지만 이 정도면 전국 1위가 아닐까 싶었다. 예전에 민정이와 1학년 같이 했던 선생님들도 그들의 행동을 전해 들을 때마다 놀랍다고 말했다.


특히 60대 선생님은 시우가 말도 참하게 잘한다며 자기 반 학생 삼고 싶다고 말했다. 그리고 시우 검사 결과가 나왔는데 ADHD였고 약물치료가 필요한 상태였다. '그래... 소아신경과적인 전문성은 의사의 몫이지'. 민정이는 단순히 올해가 학생, 학부모 문제에서 끝나는 것이 아님을 직감했다.


관리자는 더했다. 작년에도 민정이 반처럼 힘든 학생들이 몰린 반이 있어서 담임 선생님이 휴직을 하고 마음의 병이 깊어 올해까지 돌아오지 않는다고 들었다. 교감은 곧 교장으로 승진해서 떠날 것이고, 워낙 자기 안전이 중요한 사람이라고 했다. '모든 것은 자연의 순리대로 놔두면 해결된다'라는 철학이라 손 놓고 보고 있는 스타일이라며... 민정이는 '아니 저 교감은 자기가 암 걸려도 자가면역치료하고 병원 안 가겠다'라고 생각했다. 워낙 교직이 좁다 보니 여러 이야기가 들려왔는데 교감이 자기 자식만큼은 끔찍이 여기고 아들, 딸들이 다 의대생이라고 했다. 그리고 예전에 아들이 영재교육원 선발에 떨어지자 학교에 민원을 넣었다는 소문까지 들려왔다.


교장도 대단했다. 5월 체육대회에서 하준이가 달리기 시합에서 자기 혼자, 동선에 없던 기둥에 머리를 들이박고 바닥에 드러눕자 공주님 업기를 실천하며 하준이를 보건실로 인솔했다. 기둥에 그렇게 세게 박은 것도 아닌데... 보건교사는 하준이가 전혀 이상이 없다고 했다. 그리고 교장은 하준이를 휠체어에 태워 교실로 직접 데려왔다. '이 학교... 교감은 가만히 있고 교장은 오바쎄바 하는군...' 민정이는 정말 당황스러워서 주변 선생님들에게 물어봤다. "저 교장 원래 저렇게 적극적인가요?"라고 묻자 다들 아니라고 대답했다. 작년 교직의 슬픈 사건 이후로 관리자 트렌드가 교사 보호라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해도 이건 오바쎄바였다.


그리고 하준이의 검사 결과가 나왔다. 하준이는 IQ가 80대였다. 민정이는 검사 결과가 나오기 전부터 눈치챘다. 집에서 엄청나게 연습시켜서 티가 안 난다고 생각할 수는 있지만 나사 빠진 행동이 많이 보여서 지능을 의심했는데 역시나였다. 


중증자폐 지원이(여), 고기능자폐 우정이(남), ADHD 시우(남), 느린 학습자 하준이(남). 이 외에도 학생들이 집중력이 현저히 낮은 편이었고 틱이 있는 학생도 있었으며 과하게 오지랖이 많고 위험한 장난을 많이 하는 학생들이 많았다. 직업이 무속인이어서 전화 상담을 할 때 "제가 모시는 할머니 신이 선생님 건강 챙기시라고 해요"라는 어머님도 있었고... 


민정이는 매일 운동을 열심히 하고 잠들고, 주말에 맛있는 거 먹고 또 씩씩하게 학교에 나갔지만 점점 몸에서 반응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어느 날부터인가 오전 10시가 지나면 숨쉬기가 어려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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