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딸아이가 중학생이 되고는 사춘기를 심하게 겪었다.
질풍노도답게 아이도 엄마인 나도 불안정한 감정의 변화를 거센 바람과 파도처럼 불안정한 상태에서 제대로 맞았다.
사춘기가 오기까지 큰 딸아이는 순종적이고 모범적인 아이여서 사춘기라는 호르몬 변화의 감정을 무방비 상태로 맞은 나는 중학교 3년, 고등학교 1년을 죽으라고 싸운, 서로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만 남은 전쟁 같은 시간이었다.
딸아이도 나도 갈기갈기 찢어진 관계에 다시는 회복되지 못할 사이로 끝날 줄 알았다.
그런 아이가 재수 끝에 대학에 입학을 하고 기숙사로 들어갔다. 아~ 이 홀가분이란. 나에게 드디어 선녀의 날개옷이 주어진 것 마냥, 그렇게 마냥 자유롭고 어디든 날 수 있을 것 같은 그날. 짐의 대부분이 빠진 딸아이의 방을 보며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하염없이 흐르다 못해 누가 들으면 초상이 났나 싶을 만큼 통곡을 하며 울어댔다. 심지어 나에게는 내 입의 혀 같고 봄날의 햇살 같은 둘째 딸아이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한 여름날의 그늘 같은 웬수 같은 큰딸이 기숙사로 출가한 뒤, 밀려오는 허전함과 말 못 할 그리움, 당황스러울만치 순식간에 흐르는 눈물을 본 주변인들은 나보다 더 당황해했다.
이를 본 가까운 지인들은 빈 둥지증후군 같다며 작은 일이라도 새로운 시도를 해보라 권했다.
거의 하루의 시작을 운동이나 지인들과 타타임을 즐겼는데 것도 다 귀찮고 싫었다. 아이들에게 그림을 가르치는 선생으로 있는 오후는 그나마 시간 가는 줄 모르게 흘렀지만, 이 일마저도 지치고 힘에 부쳤다.
오전에 벌릴 일을 구상하다 홀리듯 알0몬에 들어갔다. 남는 시간 파트타임으로 딴 생각도 안나고 좀 더 색다른 경험을 할까싶어서.
오전이 여야 하고, 주 2회나 3회 여야 하고, 힘쓰는 일은 안되고, 주말 시간은 당연히 안되고.
누가 보면 알바 면접이 아니라 사장 면접인 줄…
그러다 막상 조건이 맞는 곳이라도 나오면 당장 내일부터 일을 시작할 것처럼 안절부절못했다. 써줄 사람은 생각도 없는데 김칫국을 드링킹 하는 꼴이라니.
괜찮다 싶은 아르바이트 자리가 나와서 고민 끝에 이력서를 제출. 내일부터 당장 나오라면 어쩌지 하는 내 모습을 비웃기라도 하듯 당연히 연락은 한 통도 없었다. 그렇게 서너 군데 내 맘에 드는 곳으로부터의 대찬 무언의 까임을 당하고 나서야 나의 문제는 ‘나이구나…‘를 알게 되었다.
그래, 어리고 예쁜 사람들이 이리 많은데 50대 아줌마랑 누가 일하자 하겠어.
이력서를 오픈해 놓으니 죄다 연락 오는 곳은 보험 쪽이나 텔레마케팅 아니면 식당 서빙 알바인데, 난 그쪽 영역까지 넘보기에 아르바이트 자리가 그리 시급하지는 않았다.
그날도 모닝 루틴처럼 알0몬에 들어갔다가 동네에 있는 대학교 내 커피전문점에서 급하게 경력 파트타임직을 구한다는 문구와 나이대 제한 없음을 확인하고는 생각 없이 이력서를 제출했다.
그렇게 하루를 마감하고 이틀 후, 이력서를 냈는지도 잊고 지낸 그때, 카페 점장이라는 여자분의 전화를 받았다. 이번 주부터 나와서 일할 수 있냐고.
헐~ 대박! 나 알바 뽑힌 거야? 그것도 나이 50에 카페 알바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