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어글리 02화

어글리 02

극성편애맘

by 햇빛투게더

선호는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은호를 발견하자마자 도망치듯 퇴장하는데 등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게다가 마이크 목소리.

“안녕하세요, 여러분.”


무작정 무대 위로 오른 은호다. 아오, 저걸 그냥... 선호는 등골이 오싹해진다. 인디밴드 형들도 돌발상황에 당황스러운 기색이다. 밴드리더가 불청객을 제재하기 위에 다가가다가 두 눈이 휘둥그레진다. 때마침 은호는 볼캡을 홱 벗어 소담스러운 머리칼을 매만졌기 때문이다. 은호의 모습이 드러나자 길거리 군중이 술렁였다. 여기저기서 ‘클레어 한’을 연발했다.


“맞아요, 클레어 한입니다.”


‘알아요!’, ‘예쁘다!’ 산발적으로 들리고 폭풍 같은 환호가 한동안 이어진다. 선호는 후다닥 달려와 복화술 하듯 작게 말했다.


[야, 뭐 하는 짓이야. 빨리 나와.]

선호가 은호의 팔을 잡아 끄는데 홱 풀어내는 은호다. 은호는 다시 군중을 보며 고혹적인 미소를 보낸다.


“전.. <어글리>의 오랜 팬입니다. 팬카페 멤버이기도 하구요. 아시죠? 팬카페 가입하시고 좋댓구알?!”


군중들이 동시에 “네!!!!” 한다. 선호는 발가락까지 화끈거렸다. 저게.. 지금 나 멕이는 건가...


“귀국을 하면서 이런 상상을 했어요. 여러분이 허락하신다면 어글리와 협연을 해보고 싶다.. 어때요? 잠깐 허락해 주시겠어요?”


사람들의 박수와 함성소리가 울려 퍼졌다. 선호는 화들짝 놀라 ‘뭘 어쩌려고?’하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인디밴드 보컬에게 다가가 뭐라 뭐라 말하는 제멋대로 은호 때문에 선호는 초조해졌다. 딱히 은호에겐 악감정은 없다만, 이 일의 파장이 예상된달까. 또 얼마나 억울해지고 또 얼마나 피곤해질까.


밴드는 신나는 외국 락밴드의 노래를 시작하고 은호는 사이사이 변주를 하면서 클래식 멜로디를 끼워 넣는다. 은호는 선호에게 눈짓하며 따라오라고 하고 선호도 처음엔 심드렁히 발맞추다가 예술적 영감이 폭발해 연주한다. 마침내 은호와 선호는 눈을 맞추고 완벽한 호흡을 맞춘다.

은호의 정통 바이올린, 선호의 전자 바이올린, 밴드의 연주가 기막히게 어우러진다. 그 광경을 SNS에 올리는 관객들로 순식간에 두 남매는 이슈의 중심이 된다.


sns1> ‘클레어 한’ 깜짝 거리 공연. 이분, 완전 호감형.

sns2> 클레어 한 티켓예매 광탈 했는데 와와와 대박!

sns3> 어글리가 누구임? 가면 속에 꽃미남 있을 듯

sns4> 꽃미남이면 얼굴을 왜 가림.




봉이가 한참 식당 서빙을 하는데 미친 듯이 알림음이 울린다.

“시끄럽다, 인마. 알림 좀 끄지?”

“알았어, 아빠. 딱 2분만 나갔다 올게.”


봉이는 뒷마당으로 나와 휴대폰을 열어본다. 어글리 팬카페 가입인원이 300명 늘어있다. 입이 무릎까지 떡 벌어졌다. 드디어 내 새꾸 인정받는 건가..!!


“와오, 씨.... 가입 팬이 3백? 이누무자슥, 뭔 짓을 하고 다니는 거야. 가만 보자, 오늘 일정이... 인디밴드 협연인데..”


어글리 팬카페 게시판은 난리가 나있다. 클레어 한 협연에 관한 이야기.. 휘둥그레지는 봉이다. 대충 제목만 훑어보니 80%는 클레어 한 얘기지만 간간이 어글리에 대한 칭찬이 보였다. 봉이는 헤헷... 웃음이 번지는데..

“단체손님만 아님 이 홈마님이 빡 출동했을 건데.”

“봉이 뭐 하냐!!!”

일손이 급한 아빠의 목소리에 벌떡 일어나는 봉이다.


“가요, 가!”



그 시각, 해령은 잔뜩 부아가나 호텔 창가를 서성인다.

“이노무 기집애, 오기만 해 봐.”


그때, 스위트룸 일각에서 차대표가 다가왔다.


“차대표.... 얘 어떻게 됐어, 찾았어요?”

“홍대 앞에 있답니다.”


차대표는 휴대폰 sns를 보여준다. 영상 속의 클레어의 깜짝 공연이 보여진다. 가면 쓴 채 그 옆에 협연하는 선호의 모습을 알 리 없는 해령이다.


“얼마짜리 연주인데 하찮은 길바닥에서!!”


차대표는 해령의 속물근성에 이골이 난 표정이다.


“옆에 물건은 뭐야? 한국에 클레어 친구 있었어?”

“아드님 같은데요. 한선호 씨.”


해령의 이마에 세로주름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얘가 불러낸 거야? 감히!!!”


해령, 격노한 얼굴로 핸드백을 들고나간다. 차정민 대표는 골치 아픈 얼굴로 뒤따라가려는데 정민의 아내이자 스타일리스트 현정이 막아선다.


"지가 딸 놓쳐놓고 왜 당신한테 난리야.”

“화나도 말조심하자.”

“말조심? 매번 머슴 부리듯 한 건 저 마녀야. 듣고도 그래?”

“어쩌겠어.”

“왜 그렇게 설설 기어? 이 회사 대표는 자기야, 저 할망구가 아니고.”

“나갔다 올게. 먼저 자.”


정민도 성질이 부글거렸지만 한 번 더 삼켜내고 나간다.





선호와 은호는 밤거리를 걷는다.


“술 한잔 사주지?”

“나 일하러 가야 돼. 스텝 많을 거잖아. 걔들 불러.”

“다들 1그램 단위로 칼로리 계산 중인데 퍽이나.”

“간다.”

“어디가. 일하러?”


집요하게 따라붙는 은호다. 선호는 그러거나 말거나 다음 일정인 클럽으로 향했다. 은호는 졸졸 따라간다.

“가라고. 내일 연주회라며 이래도 돼?”

“딱 9시에 갈게. 나도 숨 좀 쉬자.”

“그러니까 가서 편히 쉬시라고. 또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알았어. 뒷짐 지고 술만 마실게.”

“세기의 바이올린 여신님이 올 만한 데가 아니야.”

“멕이냐.”

“다들 니 목격담 퍼 나를 거고 니네 엄마는 또 나한테 시비 붙이겠지.”

“아무리 그래도 ‘니네 엄마’라니... 너무하네.”

“8년 사는 동안도 난 차별만 당했고 엄마다움을 느껴본 적 없어.”

“그래도 미국 같이 가겠다고 울고불고 난리 쳤잖아.”

“버림받는 게 싫었던 ‘애’였으니까. 그리고 이젠 보시다시피 ‘애’ 아니고.”

서른을 바라보도록 연락 한 줄 없는데 ‘니네 엄마’지 뭐겠어.”


선호는 스탭 출입구로 들어서다 따라오는 은호를 막아선다.


“일반인 출입구는 저쪽이야.”

“클럽인데 이 시간에 관객이 있긴 해?”

“무슨 말이 하고 싶어? 그럼 클럽 먹여 살리는 밴드 제치고 내가 프라임 타임 뛰리?”


선호는 비상구 문을 탕 닫았다. 이 인간들은 나에 대한 예의가 없다... 짜증 나는 선호다.



무대가 시작되고 선호는 자기만의 퍼포먼스를 시전 했지만 말 그대로 사람이 몰릴 시간은 아니다. 빈자리가 대부분이고 이제 막 자리를 잡은 사람들이 간간이 보였다. 선호는 이렇게라도 허락된 무대에 대한 감사함으로 임하고 있지만 은호에게 보여지는 건 또 다른 결의 문제다. 이 일을 하면서 처음으로 묘한 수치심이 올라왔다.

썰렁한 플로어에서 내일은 없는 듯 몸을 흔들어대는 은호가 거슬렸지만 이상하게 그 애의 모습이 짠했다.



대기실에서 무대 물품을 정리하는데 클럽직원이 호들갑 떨며 들어왔다.


“대박! 선호 씨. 핵인싸가 찾아왔어.. 어글리 팬 이래~”


은호 그 녀석이 여기까지 밀고 들어왔구나. 지는 하고 싶은 대로 하면 그뿐이지만 남겨진 나는? 가족도 뭣도 아닌 ‘클레어 한’이 미국으로 가버린 후 또 얼마나 수군댈까. 무슨 관계인지 억측하고 행여라도 이상한 가족인게 밝혀지면... 으윽.. 벌써 피로감이 밀려온다.


“뮤지션 대기실이 뭐 이렇게 허접해? 이런 대접받고 일 하니? 길바닥이야 그렇다 치고.”

“여기가 어때서. 비전공자한테 시간 내준 것만으로도 난 불만 없는데? 그냥 좀 가라.”

“오빠 니가 시키는 대로 했잖아. 얌전히 구경만 했다고, 나.”

“얌전히? 이제 이 클럽에서도 너 들락거린 거, 나 찾아온 거 다 알게 될 텐데?”


다시금 미간이 접히는 선호다.


“그냥 술 한 잔 하자 좀. 이 집에서 젤 비싼 술 주문해 놨다고.”

“뭐?”

“오빠 니 이름으로.”

“야!!!!!!!”

“말했잖아. 9시에 퇴장한다고. 안 오면 뚜껑 따고 너한테 술값 받으라 할 거야. 몇 백 쯤 나오겠네..”


은호는 제멋대로 질러버리고 가버렸다. 저걸 그냥 확...!!



프라임타임의 밴드 공연으로 클럽 안은 북새통이 되어버렸다. 선호는 2층 복도를 따라 불만 가득한 걸음으로 갔다. 복도 끝쪽 아예 클럽 내실의 문 앞에서 기다리는 은호를 보고 기가 막힌다. 그때 뭘 발견한 듯 은호의 얼굴이 하얗게 질린다. 은호는 선호의 팔을 잡고 달리기 시작한다.


“튀어.”

“뭐?”

“아이씨... 시계 보느라 휴대폰 잠깐 켜놨더니 엄마 왔어. 위치추적!!”


선호는 주변을 둘러보는데 1층 춤추는 사람들을 거칠게 헤집으며 은호를 찾는 해령이 보인다. 해령이 지나간 자리는 길이 나 버렸고 열불 난 클러버들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다. 해령 대신 연신 고개 숙여 인사하는 차대표다. 클럽의 덩치들이 불청객들을 저지하려다가 클레어 한의 이름값에 물러서는 눈치다. 아님 몇 푼 쥐어줬든지.


매의 눈으로 2층 복도까지 훑어보던 해령은 남매의 모습을 포착한다. 해령은 불도저처럼 더욱더 거칠게 클러버들을 파헤치며 2층 계단을 올랐다. 클럽과 어울리지 않는 아줌마의 등장으로 흥이 깨져버린 플로어는 원성이 터져 나왔다.



선호는 은호를 데리고 비상구로 향하고 해령은 분노의 질주로 남매를 뒤따라 달렸다. 종업원이 술병 여러 개와 유리잔 들고 비상구를 나오다 선호와 부딪혀 유리가 박살이 났다. 우당탕탕 쨍그랑 요란한 소리가 나면서 발 삐끗한 은호가 유리파편 위에 주저앉았다. 그 와중에 유리 파편들이 은호의 손가락에 살짝 스친다.

그 광경에 두 눈 휘둥그레진 해령은 괴성을 지르며 은호에게 달려온다. 해령은 털썩 내려앉아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은호의 손을 부여잡는다.


“내일이 공연인데 이를 어째..!! 차대표, 차대표...!!!!”

“엄마, 그만해 좀!! 별거 아니야. 낼 공연 아무 문제없다고.”


그러나 이미 해령의 눈은 돌아있었다. 그녀는 벌떡 일어서더니 다짜고짜 선호의 뺨을 후려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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